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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육논단

어느 초등학교 교사의 일기 (2023.3.29)

by 답설재 2024. 3. 29.

그림 : 시인 이신율리

 

 

 

 

2024년 3월 4일 월요일

 

긴장 속 하루였다. 날씨가 좀 쌀쌀했는데 몸도 마음도 분주해서 그런 줄도 몰랐다. 마스크를 쓴 아이가 세 명이었다. 얼굴을 보고 싶어서 점심식사 때 잠깐씩 살펴보았다. 정겨운 아이들, 사랑스러운 내 아이들.

 

지난해엔 ‘추락한 교권’ 이야기가 참 많았다. 올해는 어떤 일이 있을까, 곤혹스러운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별일 없을 것을 확신하고 싶다. 아이들 다툼은 충분히 이해시키면 서로 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학부모와의 소통에서도 그것을 유념하면 그들도 나를 믿을 것이다. 로버트 풀검(「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은 사람의 머릿속에 든 것은 다 다르다면서 “당신은 왜 내가 보는 방식으로 보지 않나요?” 묻기보다는 “그렇게 보셨습니까? 놀랍군요!” 하고 공감해주겠다고 했다. 그들의 생각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대하면 오해를 살 일이 별로 없지 않을까 싶다.

 

가슴속으로 스며드는 귀여운 아이들, 뿌리칠 수 없는 그 사랑이 나를 지배하게 되면 나는 그들의 안내자 역할을 하는 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올 한 해가 강물처럼 흘러갈 것이다.

 

 

2024년 3월 9일 토요일

 

저녁에 함께 근무한 동료들을 만났다. 지난해를 마지막으로 교단을 떠난 K도 참석했다. 그가 나타나자 축하한다고들 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할 수가 없었다. 20여 년 세월을 함께한 친구의 명퇴(名退)가 정말 명예로운 것인지 나는 모른다. 그 퇴직이 명예로운 것이면 그럼 교단을 지키고 있는 우리는 그렇지 못한 입장이라는 걸까? 교사의 길로 들어서며 우리는 ‘천부적 교사’ 이야기로써 자부심·자존감을 키웠다. 그렇다면 이 길을 벗어나 어떤 길을 갈 것인지, 그만큼 떳떳하고 명예로운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헤어질 때 K가 다가와서 둘이서 함께 걸었다. 교단에 있는 사람들은 다들 축하한다고 했고 가족이나 친지는 위로는 해주되 축하하지는 않더라고 했다. 대체로 새로 시작할 일에 대해 많이 걱정하더라는 얘기도 했다. 나도 그를 위로하면서 더 돈독한 마음으로 떳떳하게 살아가기를 바란다고 해주었다.

 

 

2024년 3월 15일 금요일

 

어느새 둘째 주가 가고 있다. 수학 문제를 풀지 못해 우울해하던 J가 생각나는 저녁이다.

 

아이들 지도에 전념할 수 있는 세상이 오면 좋겠는데 자꾸 뒷걸음인 느낌이 있다. 훈육을 포기한 교사 (“애들이 쌍욕을 하든 난동을 부리든 그냥 둔다!”), 교사들의 63.2%가 우울 증상을 보인다는 직무 관련 정신 건강 실태조사 결과, 초등의 경우 6년간 57명의 교사가 우울증·공황장애 등으로 극단적 선택… 다 지난해 밝혀진 사례다.

 

사실은 우리 교사들만의 문제도 아니다. 미국의 어느 작가가 한국인들이 세상에서 가장 우울하다고 했다. 우수성을 향한 압박과 경쟁, 100점 아니면 실패라는 완벽주의, 가족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면 실패로 보는 유교 문화, 잔인한 교육시스템 등이 원인으로 열거되었다. 경쟁을 당연시하는 교육문화가 끔찍하다. 선동가는 학생들이 지닌 고결한 힘을 모조리 파괴하고 그 자리에 질투와 파괴적 성향, 잔인성을 심어 놓는다고 한 버트런드 러셀의 말이 떠오른다. 그런 교육자는 학생에 대한 애정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2024년 3월 20일 수요일

 

B 남매는 다문화가정의 자녀다. 둘 다 한국에서 태어났는데도 서툰 면이 많다. B의 남동생은 친구도 없는 것 같다. 마치자마자 늘 우리 교실 앞에 와서 하염없이 누나를 기다린다. 나는 마음으로부터 이들을 사랑해야 한다. 세상의 누가 그리 쉽게 그들을 소중하게 여기겠는가.

 

우리 교사들은 초중고를 막론하고 정치를 하겠다거나 행정력을 나눠달라고 요청하지 않는다. 우리의 의무, 권한 밖의 일을 간섭하거나 넘보지 않는다. 다만 우리의 할 일에 전념할 수만 있다면 그만일 것이다. 취학아동 수만 해도 그렇다. 정치가나 행정가는 급격히 줄어드는 출생아 수를 걱정하고 있다.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모든 아이를 돌보고 사랑할 수 있는 건 오직 우리 교사들만의 의무이고 특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