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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유희경 「이야기」 "조용히, 심지어 아름답게 무성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by 답설재 2024. 5. 23.

 

 

 

이야기

"조용히, 심지어 아름답게 무성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유희경

 

그해 여름엔 참 놀라운 일들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딱따구리와 함께 보낸 장마 기간을 잊을 수 없다 빨간 머리의 딱따구리는, 적어도 내 방에서만큼은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책장에 구멍을 내거나 구멍을 내는 소리로 나를 깨우지도 않았다 나는 더러 그가 딱따구리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했다 하지만 그는 너무나 딱따구리였다 시내 큰 서점에 가서 사 온 커다랗고 비싼 조류도감에도 한 치 다를 바 없는 그의 모습이 세밀하게 그려져 있었으니까 딱따구리가 때론 포유류의 머리를 공격해 뇌를 파먹기도 한다는 경고를 그 책에서 읽었다 아닌 게 아니라 그가 머무는 동안 나는 희미하고 끈질긴 두통에 시달렸다 그럴 때마다 머리의 이쪽저쪽을 만져보면서 딱따구리 때문이야 그렇고말고 중얼거리기도 했던 것을 이제는 후회한다 내 방에서처럼 나에게도 딱따구리는 아무 짓도 하지 않은 그 여름, 내게 찾아온 것은 그저 두통만은 아니었다 어떤 기억들이 끈질기게 희미해지다가 사라져버리기도 했던 것이다 나는 그 기억들을 영영 잃어버렸음을 직감했고 그 사실을 슬퍼해야 하는지 기뻐해야 하는지 알 수 없어 혼란스러웠다 딱따구리 네가 그런 거지 이 크고 작은 구멍들에 대해 설명해봐 딱따구리는 대답하지 않았고 나는 주먹으로 책상 위를 내리쳤다 아무것도 망가지지 않았지만 그 커다란 소리는 아주 멀리까지 들렸을 것이다 창밖에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조용히 가만히 그제야 나는 그의 강인한 부리와 단단한 발톱을 보았고 조금 겁에 질렸던 것 같다 방문을 소리 내어 닫은 그날 밤 나는 무언가 두드리는 듯한 괴롭히는 것도 같은 느낌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그것은 참으로 슬픈 소리 마침내 떠나갈 때 떠나가는 것이 내는 기척 비가 그쳐가고 있었다 부옇게 밝아오는 창밖을 보며 나는 장마가 끝났다는 것을, 다시는 딱따구리를 볼 수 없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조용히, 무성해져 갔던 여름에 있었던 일이다 많은 것을 잊었지만 딱따구리와 함께 보낸 장마 기간은 잊히지 않는다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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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크 스트랜드, 『빈방의 빛』박상미 옮김, 난다, 2016, 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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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경 1980년 서울 출생. 2008년 『조선일보』등단. 시집 『오늘 아침 단어』『당신의 자리─나무로 자라는 방법』『우리에게 잠시 신이었던』『이다음 봄에 우리는』. <현대문학상> 등 수상.

 

 

 

 

딱따구리는 아침나절마다 저 나무를 찾아왔다.

날마다 찾아와 뭘 내놓으라고 으르는 녀석처럼 귀찮고 두려웠겠지.

딱딱딱딱딱, 딱딱딱딱딱, 딱딱딱딱딱.

 

"딱따구리가 때론 포유류의 머리를 공격해 뇌를 파먹기도 한다는 경고를 그 책에서 읽었다 아닌 게 아니라 그가 머무는 동안 나는 희미하고 끈질긴 두통에 시달렸다"

 

'아닌게 아니라' 딱딱거리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내 이마를 쪼는 느낌이었다.

내 이마에 대고 저렇게 딱딱거리면 견딜 수나 있을까.

그 느낌을 쫓아버리려고 일에 집중하려고 했다.

다른 나무들을 다 두고 하필이면 피부조차 다 헐어서 온갖 벌레들이 저마다 집을 짓고 분주히 살아가는 저 '늙은 나무'를 찾아와 쪼아댔다.

 

현대문학』에서 이 시를 보았다(2022년 12월).

시인의 에세이도 읽었다(「나의 반려伴侶, 이야기」). 여기다, 싶은 두 군데를 옮겨 썼다.

이 시가 흑백사진 중 한 장이라는 이야기 같았다.

 

 

가끔 시에 대해 생각할 때면, 나는 내가 나의 이야기를 소진해가고 있다 싶다. 그럴 때는 절박해진다. 그러다 마침내 아무것도 남지 않으면 어떡하나. 실제로, 나는 백지를 대할 때마다 공포에 사로잡힌다. '할 얘기가 없어.' 그 공포를 중얼거린다. 나에게 첫 문장은 언제나 쥐어짜낸 어떤 것이다. 이럴 수가 있나 싶게 힘을 줘서 짜낸 그것은 이야기에서 짜낸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형체는 간 곳 없고 흥건해지기만 하는 어떤 것. 더러는 앙상한 것이기도 하다. 남은 것이 하나도 없는 뿌리째 뽑혀버린 죽은 나무에의 비유. 그러나 이야기는 마르지 않는다. 앞의 이야기가 뒤의 이야기를, 뒤의 이야기가 그다음의 이야기를 끌어올린다. 마침내 아무것도 남지 않을 때 나는 죽음에 이를 것이다. 죽음은 남아 있는 이야기가 없다는 뜻이다.

 

한편 나는 마지막 이야기를 상상하는 사람이다. 친구가 물었다. 너는 왜 흑백사진만 찍니. 요즘 내가 사용하는 디지털카메라는 오직 흑백만 찍히는 괴상한 물건이다. 나는 흑과 백의 묘사가 마지막 이야기의 모양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렇게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몇 번 컬러 사진을 찍어보려고 했다. 그것은 현재적이었고 너무 시시했다. 부끄럽지만 당장의 이야기는 언제나 시시하다. 맨 처음이거나 맨 마지막. 이야기의 본령은 그런 것이 아닐까. 한낮의 미몽도 한밤의 상상도 나의 처음, 나의 마지막 이야기. 그러므로 나의 시 쓰기는 언제나 바깥을 맴돈다. 태어난 적 없는 유령이며, 그러니 한恨이나 슬픔 같은 기억의 산물을 가지지 못한 채로. 더없는 허깨비의 형식으로. 안으로 들어가면 그것은 밖이며 바깥에 머물수록 수없이 많은 안이 되어주는 세계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다. 존재만으로 말썽이며 소란이다. 동시에 침묵이며, 침묵에 의해 지켜지는 비밀이다.

 

 

요즘 나는 (나로서는) 놀랍게도 내가 바로 그 딱따구리가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시를 다시 읽으면 답이 나올까, 그 생각도 했지만 그럴 필요 없이 답이 나온 것 같아서 더 한심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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