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랑
안중경
너에게 노랑을 준다.
햇빛에 부서지는 생강나무 꽃
그 노랑을 준다.
어린 시절을 겹겹이 덮고 있는 모과의
노랑을 준다.
혀 위에서 가루로 녹아 흐르는 삶은 달걀의
노랑을 준다.
코 옆에서 입술 아래로 접혀 있던 창백한
노랑을 너에게 돌려준다.
매일 밤 나를 바라보던 달의 눈동자
그 노랑을 준다.
잠자리 꼬리에서 흘러내리던 동그란 알갱이의
노랑을 준다.
소나기가 그치고 난 후 하늘에 번졌던
노랑을 준다.
지붕의 테두리를 반듯하게 금 긋던
그 노랑을 준다.
흰 밥알 사이로 스며들던 시금치 된장국의
그 노랑을 준다.
삼각형으로 조각나던 어린 새의 울음소리
그 노랑을 준다.
너에게 노랑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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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경 1972년 춘천 출생. 서울대 서양화과 및 동 대학원 졸업.
(『현대문학』 2024년 6월호)
노랑은 좋은 색이라고 생각한다.
그 노랑들을 받는 이의 마음을 생각한다.
이렇게 주어본 적이 없는 허전함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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