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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김복희 「요정 고기 손질하기」

by 답설재 2024. 6. 24.

 

 

 

요정 고기 손질하기

 

 

김복희

 

 

쌀가마니 같네

이 무게가

 

합하면

아이 여러 명 같네

 

여기서 나온 국물과 살로

먹일 입에는 좋은 일이네

 

이 생각이

쌀가마니의 쌀을 다 털어 먹도록

떠날 기색이 없어서

 

뼈를 정리했지

뼈에서 분리한 숨을 모았어

 

이게 정말 맛있는 건데

너무 가벼워 금세 사라져버린다니까

입김에 날아가 버린다니까

 

나는 숨을 죽여야 했지

 

강아지 망아지 송아지

그 모든 부드러운 혓바닥을

느꼈던 순간을 합친 것보다

더 조심스럽게

 

숨을 거둬두는 동안

 

나는 사람들을 헤아렸어

사람을 사랑해서 의사가 되는 사람도 있고

목회자가 되는 사람도, 사회운동에 투신하는 사람도 있고

건물 아래로, 다리 아래로

사람의 품으로 뛰어드는 사람도 있고

사랑이 때와 재능을 만나 사랑만 하는 사람도 있지

나는 요정을 사랑해서

요정 고기를 손질하나

 

손질할 때마다

가장 맛있는 것을 먼저 먹어서

조금 아쉬웠지

그래도 맛있다 혼자 먹기 아깝다 생각했지

 

요정이 내 뼈에서 쉬며

생각하는 걸 알고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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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희  2015년 『한국일보』 등단. 시집 『내가 사랑하는 나의 새인간』『희망은 사랑을 한다』『스미기에 좋지』. 〈현대문학상〉 수상.

 

 

 

 

요리하는 모습을 지켜본 것 같기도 하고, 그 요리사와 얘기를 나눈 것 같기도 했습니다. 그 요리사와 의사, 목회자, 사회운동가 들에 대한 얘기도 나눈 것 같았습니다.

지난달에『현대문학』에서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