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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오은경 「매듭」

by 답설재 2024. 4. 22.

매듭

 

 

 

오은경

 

 

 

어제와 같은 장소에 갔는데

당신이 없었기 때문에 당신이 없다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았던 내가

돌아갑니다

 

파출소를 지나면 공원이 보이고

어제는 없던 풍선 몇 개가

떠 있습니다

사이에는 하늘이

매듭을 지어 구름을 만들었습니다

 

내가 겪어보지 못한 풍경 속을

가로지르는 새 떼처럼

먹고 잠들고 일어나 먼저 창문을 여는 것은

당신의 습관인데 볕이 내리쬐는

나는 무엇을 위해

눈을 감고 있던 걸까요?

 

낯선 풍경을 익숙하다고 느꼈던

나는 길을 잃습니다

 

내부가 보이지 않는 건물 앞에

멈춰 서 있습니다

구름이 변화를 거듭합니다

창문에 비친 세계를 이해한다고 믿었지만

나는 세계에 속해 있습니다

 

당신보다 나는 먼저 도착합니다

내가 없었기 때문에 내가 없다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았던 당신에게

나는 돌아와 있습니다.

 

 

 

――――――――――――――――――――――――――――――

오은경 1992년 광주 출생. 서울예대 문창과 졸업. 2017.6. 현대문학 신인추천작

 

 

 

 

 

 

 

『現代文學』 2017년 6월호.

 

 

 

'당신이 없다는 것을 / 염두에 두지 않았던' 나

'내가 없다는 것을 / 염두에 두지 않았던 당신'

 

애틋한 두 사람, 두 사람의 애틋함을 생각했다.

몇 번이고 생각했다.

 

2017년은 풋풋한 시절이었을까?

잊히지 않는 사람들은 서로 그렇게 살아가고 있을 것 같은 2024년 봄에 다시 읽고 다시 생각한다.

그런 생각을 하면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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