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 심 보 선
우리는 사랑을 나눈다.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른 채.
아주 밝거나 아주 어두운 대기에 둘러싸인 채.
우리가 사랑을 나눌 때,
달빛을 받아 은회색으로 반짝이는 네 귀에 대고 나는 속삭인다.
너는 지금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너는 지금 무슨 생각에 빠져 있는가.
사랑해. 나는 너에게 연달아 세 번 고백할 수도 있다.
깔깔깔. 그때 웃음소리들은 낙석처럼 너의 표정으로부터 굴러떨어질 수도 있다.
방금 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간 미풍 한 줄기.
잠시 후 그것은 네 얼굴을 전혀 다른 손길로 쓰다듬을 수도 있다.
우리는 만났다. 우리는 여러 번 만났다.
우리는 그보다 더 여러 번 사랑을 나눴다.
지극히 평범한 감정과 초라한 욕망으로 이루어진 사랑을.
나는 안다. 우리가 새를 키웠다면,
우리는 그 새를 아주 우울한 기분으로
오늘 저녁의 창밖으로 날려 보냈을 것이다.
그리고 함께 웃었을 것이다.
깔깔깔. 그런 이상한 상상을 하면서 우리는 사랑을 나눈다.
우리는 사랑을 나눌 때 서로의 영혼을 동그란 돌처럼 가지고 논다.
하지만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정작 자기 자신의 영혼에는 그토록 진저리치면서.
사랑이 끝나면, 끝나면 너의 손은 흠뻑 젖을 것이다.
방금 태어나 한줌의 영혼도 깃들지 않은 아기의 영혼처럼.
나는 너의 손을 움켜잡는다. 나는 느낀다.
너의 손이 내 손 안에서 조금씩 야위어가는 것을.
마치 우리가 한 번도 키우지 않았던 그 자그마한 새처럼.
너는 날아갈 것이다.
날아가지 마.
너는 날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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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보선 1970년 서울 출생. 1994년 『조선일보』등단. 시집 『슬픔이 없는 십오 초』. 〈김준성문학상〉수상.
사랑을, 새 같은 사람들을 한 줄 한 줄에서 떠올리고 있었다.
어제 같은데, 『현대문학』2009년 11월호에서 봤으니까 그새 14년이나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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