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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김현 「강아지 한 마리가 천국에 가면」(전문)

by 답설재 2024. 3. 10.

 

 

 

강아지 한 마리가 천국에 가면

 

 

김 현

 

 

지상의 강아지 한 마리가 없어진다

 

때론 명백한 사실이 시적이지

 

강아지 한 마리가 천국에 가면

아침 일찍 산책 나오던 한 사람이 사라진다

 

그는 아직 누워 있다

텅 빈 그를 깨우기 위해 누구도

상냥하게 짖지 않고

침대로 폴짝 뛰어오르지 않기에

 

사람이 해줄 수 있는 일을

(짖어봐!)

사람이 해주지 않아서

(뛰어올라봐!)

사람은 다른 동물에게 바란다

오늘 사람이 잊은 일을

(사랑해주세요.)

 

강아지 한 마리가 천국에 가면

꿈의 골목에 강아지가 나타난다

 

쓰다듬을 수 있고,

냄새 맡을 수 있고,

껴안을 수 있는,

 

그의 베개는 젖고 있다

 

강아지 한 마리가 천국에 가면

천국을 믿는 사람이 한 명 더 생겨난다

 

천국이란

너와 내가 함께 갔던 곳

 

그는 우는 얼굴로 기뻐하며 눈을 뜬다

알면서도

새로운 날을 맞이하기 위하여

매일 아침 부르던 이름을 속삭인다

 

강아지 한 마리가 천국에 가면

천국의 우울한 사람이 웃게 된다

 

고양이 한 마리가 천국에 가면, 하고

생각에 빠져서

너무 깊어서

깜짝 놀라 산 고양이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강아지 한 마리가 천국에 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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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현  2009년 『작가세계』 등단. 시집 『글로리홀』『입술을 열면』『호시절』『낮의 해변에서 혼자』『다 먹을 때쯤 영원의 머리가 든 매운탕이 나온다』『장송행진곡』 등. 〈김준성문학상〉〈신동엽문학상〉 수상.

 

 

 

이미 내 느낌을 써버렸다. 무슨 이야기를 덧붙일 수가 없게 되었다. 『현대문학』 3월호에 실린 시 전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