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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김영미 《맑고 높은 나의 이마》

by 답설재 2024. 2. 11.

김영미 《맑고 높은 나의 이마》

아침달 2019

 

 

 

 

 

 

묘비들은 이마를 높이 들고

 

 

여름엔 해가 길어 퇴근길에도 환했다 일산부터 합정까지 버스 창에 머리를 기대면 한강을 따라 물의 조각이 빛났다 겨울엔 빛의 조각을 따라 내 얼굴이 떠다녔는데 여름엔 그 얼굴이 보이지 않아 좋았다 유람선을 탄 것처럼 버스의 아래가 찰랑이고 지는 해가 물속을 향해 차선을 바꿨다 붉고 따뜻한 나의 아래

 

버스가 합정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외국인묘지가 마중 나왔다 작은 언덕에 박힌 묘비들은 이마를 높이 들고 석양을 빛냈다 가지런히 손등을 포개고 서 있는 미어캣들과 안녕, 안녕 저렇게 다소곳한 죽음의 인사라니 귀가를 알리는 표지석을 지날 때마다 나의 집은 언제나 멀어졌고 또 언제나 가까워졌다

 

그리고 그중 맑고 높은 나의 이마

수문으로 몰려드는 물 떼처럼 나는 막 어떤 생각의 앞이었다

 

 

 

시집 끝에 대담이 실려 있다. 그중 한 부분. 서윤후 시인이 물었다.

 

 

서윤후

(...) 붙잡거나 놓아주기를 영영 끝낼 수 없는 이 여정 속에 놓여 있는 시들을, 징검돌을 지나듯 건너오면서 궁금해졌어요. '있음'과 '없음'의 관계 속에 시인은 어떻게 서 있는지.

 

김영미

있음보다 없음에, 없다가 생기는 것보다 있다가 없어지는 것들에 더 오래 주목하는 것 같아요. 있음이 주는 확신보다 없음이 주는 불안이나 기대 같은 것에 더 마음이 작동하는 것 같고요. 출현보다 사라지는 것들이 주는 선명하고 아픈 이미지들이 시의 동력이 되는 것을 보면 전 아직 덜 소진된 인간인가 봅니다. 덜 상처 받았거나.

 

서윤후

상처가 충분하다고 느끼는 상태는 어쩐지 정말 슬픈 일인 것 같아요. (...)

 

 

서윤후 시인의 그 한마디가 (오히려) 위안으로 다가왔다.

김영미 시인의 대답 중엔 이런 부분도 있었다.

 

 

김영미

(...) 주인공이 자기 비밀을 앙코르와트 사원 돌기둥에 털어놓고 돌아서는 장면이 마지막이던 영화가 생각나요. 그 오래된 기둥의 구멍 속에, 차마 건넬 수 없었던 말들을, 마치 입맞춤하듯이 묻고 있던 양조위의 뒷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요. 말을 숨기는 자의 뒤가 저렇게 슬프구나 싶었어요.

 

 

김영미 시인의 대답은 간접적이어서 더 좋았다.

시를 읽고 다시 살아간다는 것을 생각하게 하는 말들이었다.

김영미 시인의 저 대답은 이렇게 이어진다.

 

 

지금도 궁금해요, 우리에겐 들리지 않던 그 말들의 정체가, 비밀을 전해 들은 기둥의 마음이. 어쩌면 그런 말들이 유물의 유물로 남아 우리를 계속 뒤돌아보게 하는 건 아닌지. 끝내 고요와 정적으로 다가와 우리를 치유하는 건 아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