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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심보선 「새」

by 답설재 2024. 3. 20.

 

 

 

심 보 선

 

 

 

우리는 사랑을 나눈다.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른 채.

아주 밝거나 아주 어두운 대기에 둘러싸인 채.

 

우리가 사랑을 나눌 때,

달빛을 받아 은회색으로 반짝이는 네 귀에 대고 나는 속삭인다.

너는 지금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너는 지금 무슨 생각에 빠져 있는가.

 

사랑해. 나는 너에게 연달아 세 번 고백할 수도 있다.

깔깔깔. 그때 웃음소리들은 낙석처럼 너의 표정으로부터 굴러떨어질 수도 있다.

방금 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간 미풍 한 줄기.

잠시 후 그것은 네 얼굴을 전혀 다른 손길로 쓰다듬을 수도 있다.

 

우리는 만났다. 우리는 여러 번 만났다.

우리는 그보다 더 여러 번 사랑을 나눴다.

지극히 평범한 감정과 초라한 욕망으로 이루어진 사랑을.

 

나는 안다. 우리가 새를 키웠다면,

우리는 그 새를 아주 우울한 기분으로

오늘 저녁의 창밖으로 날려 보냈을 것이다.

그리고 함께 웃었을 것이다.

깔깔깔. 그런 이상한 상상을 하면서 우리는 사랑을 나눈다.

 

우리는 사랑을 나눌 때 서로의 영혼을 동그란 돌처럼 가지고 논다.

하지만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정작 자기 자신의 영혼에는 그토록 진저리치면서.

 

사랑이 끝나면, 끝나면 너의 손은 흠뻑 젖을 것이다.

방금 태어나 한줌의 영혼도 깃들지 않은 아기의 영혼처럼.

나는 너의 손을 움켜잡는다. 나는 느낀다.

너의 손이 내 손 안에서 조금씩 야위어가는 것을.

마치 우리가 한 번도 키우지 않았던 그 자그마한 새처럼.

 

너는 날아갈 것이다.

날아가지 마.

너는 날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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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보선 1970년 서울 출생. 1994년 『조선일보』등단. 시집 『슬픔이 없는 십오 초』. 〈김준성문학상〉수상.

 

 

 

 

사랑을, 새 같은 사람들을 한 줄 한 줄에서 떠올리고 있었다.

어제 같은데, 『현대문학』2009년 11월호에서 봤으니까 그새 14년이나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