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3393 회의도 없이 운영되는 기이한 학교 (2025.8.29) 행정기관에서 근무하다가 오랜만에 학교로 돌아갔더니 살짝 두려웠다. 기회 있을 때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옳다, 저렇게 해야 한다… 했으니 당연했을 것이다. 그러나 교직원 회의 모습을 지켜보고는 금세 ‘안심’하게 되었다. 다행히(?) 오래전에 비해 전혀 달라지지 않아서 두려워할 것 하나도 없다 싶었다. 잘하고 있는 걸 더 잘해야 하는 입장이 두렵지 잘못하는 걸 보고 뭐가 두렵겠는가. 아득하긴 했다. 사회는 온갖 변화·발전을 거듭하는데 학교행정은 여전히 각종 지시·전달에 이어 교장 훈시로 마무리하던 20세기의 그 서글픈 모습을 반복하고 있다면 변화의 당위성 이야기에 앞서 우선 숨 막히는 느낌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해야 회의(會議)를 하게 될까? 회의가 뭔지 모르진 않을 것이어서 “소중한 시간을 할.. 2025. 8. 29. 이신율리 / 오늘까지만 1,900원 오늘까지가 서쪽까지란 말과 같다고 생각하십니까 셀 수 없는 방향이면 또 어떻습니까 층층 포도나무 사다리에 동전 파스를 붙였습니다 습관입니다 이럴 때 부는 바람을 편서풍이라고 불러도 되겠습니까 부추꽃이 피기 시작합니다 부추는 밤에 자랍니다 이곳엔 아무도 자라지 않습니다 아홉 번 밤을 베어내면 봄날이 가는 걸 아십니까 잘 있으란 말은 몇 번째 봄날입니까 유기농의 불편한 진실과 무농약은 생각이 같습니다 그런데 베이킹파우더와 사과 식초는 왜 다른 저녁입니까 일곱 시를 이쪽으로 옮겨 심어도 되겠습니까 붉어서 말이 없습니다 토마토를 올리브기름에 볶으면 자장면 냄새가 납니다 숲에서도 자장면 냄새가 날 때 있습니다 무알코올 칵테일이 콜라보다 낫다는 말입니다 일곱 시에 포함된 버찌가 익을 무렵입니다 한강과 저녁의 발음이.. 2025. 8. 27. 비굴하게 살기 L 시인이 만난 시인 일전에 L 시인이 어떤 사람 시를 봐주었더니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는데, 처음엔 대놓고 L 시인이 봐줘서 당선되었다고 난리를 치더니 곧 자기가 혼자 다한 것처럼 얘길 하더라면서 밥 한 끼도 얻어먹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했다. 나는 생각했다. 얻어먹었어야 좋을까, 얻어먹지 않은 것이 더 좋을까?그것도 그렇지만, 그 사람은 L 시인에게 밥을 사주어야 했을까, 결과적으로는 입 싹 닦고 말기를 잘한 것일까?나는 내 도움을 받은 사람들이 나에게 밥을 사지 않은 것에 대해 아주 기분 나빠한 사람이다. 나에게 굽신거린 선배들 요즘은 많이 달라졌지만 전에는 교감·교장으로 승진하지 못하면 어딘지 좀 미흡한 교사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았다.사실은 그런 교사 중에는 평생을 오로지 아이들 교육만 생각하며 .. 2025. 8. 25. 교육·학교·공부 우리는 에세이를 써서 지도교수에게 제출해야 했는데, 그러자면 래드클리프과학도서관에 몇 시간씩 틀어박혀 자료와 논문을 읽고 가장 중요해 보이는 것을 추려내어 흥미로우면서도 남과는 다른 방식으로 발표해야 했다.. 엄청난 시간을 들여 신경생리학을 공부하는 일은 재미있었고 심지어 짜릿하기까지 했다. 새로운 세계가 활짝 펼쳐지는 듯했다.(23) 올리버 색스의 자서전을 읽다가 생각했다.'공부에 관한 내용들을 모아두었더라면……. 학교 공부를 비판한 글 혹은 심취한 글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이런 생각도 했다.학교가 일정한 연령의 아이들을 모두 학교로 부르는 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세상은 모든 사람이 다 살아가야 하는 곳이니까 학교도 당연히 아이들을 모두 불러야 하겠지. 만약 AI가 제대로 진화해서 아이들을 일일이.. 2025. 8. 22. 육사(陸史)의 따님 그 TV 프로그램에는 온갖 사람이 두루 나온다. 연예인이 많이 나오긴 하지만 '어? 이 사람을!' 할 때도 있다.나로서는 만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경우다.일전엔 이육사 시인의 따님 이옥비 여사가 나왔는데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감명 깊어서 정신을 바짝 차리고 보았다.이옥비(李沃非).진행자가 누가 지은 성함인가 묻자 다른 이가 지은 이름이 있었지만 아버지가 내 딸 이름은 내가 지어야 한다며 그리 지었다고 했다. 과연! 그분과의 대화를 지켜보는 중에 50년 전, S시 교육지원청에서 파견근무할 때의 학무과장(장학관)이 생각났다.혹 아직 생존해 있을까? 중앙에서 감사관이 내려왔다더니 곧 낯 모르는 두 젊은이가 학무과로 들어왔다. 중앙에서 내려오는 감사관은 어떤 모습일까 싶었는데 우리와 하나도 다르지 않아서 좀 .. 2025. 8. 20. 툼발랄라이카Tumbalalaika https://youtu.be/_k1x1TJG5Sg?si=X643n5f_0UE02m86 노래를 들으면 먼 나라 어느 곳 따뜻한 사람들이 떠오른다.여러 가지 얘기가 있다.눈에 띄는 대로 읽는다.소년과 소녀가 어른이 되어 어떤 삶을 살았든, 노래는 지금도 아름답게 흐른다.혹 어른이 되어버린 사람들이 어린 시절로 돌아갔더라는 노래일까?아이들은 어른이 되어야만 한다. 엊그제는 저녁 내내 이 노래가 전편에 흐르는 영화 "The Soul Keeper"를 검색했다. 노래 장면은, 세상의 시름을 예상할 수 없었을, 선생님의 연주에 따라 노래하고 연주하는 아이들의 모습이다. 심리학자 융(Carl Gustav Jung 스위스)과 사비나 스필라인(Sabina Spielrein 러시아)의 전기 영화로, 로댕의 제자·연.. 2025. 8. 18. 새들의 아침 쟤들의 저기엔 뭔가 복잡한 건 없는 줄 알았다.아무래도 그건 아닌 것 같다.그래도 우리처럼 이렇진 않겠지.해를 거듭하며 새를 닮아가는 삶이라면 좋겠다. 2025. 8. 17. 윌리엄 트레버 《그 시절의 연인들》 윌리엄 트레버 《그 시절의 연인들 Lovers of Their Time》이선혜 옮김, 《현대문학》 2025년 8월호 여행사 창구에 근무하는 노먼 브릿(40)은, 몸이 가늘고 이목구비가 뚜렷한 아내 힐다(40)가 너무 밝혀서 밤마다 자신을 녹초로 만든다는 불만을 갖고 있다.아내는 집요하다. "뭐죠? 생각이 간절한가요?" 그의 시선을 느낀 힐다가 물었다. 그녀는 소리 내어 웃으면서 윙크했다. 그녀의 여윈 , 아니 바싹 마른 얼굴에서 나오는 도발적인 목소리는 이상하게 들렸다. 그녀는 생각이 간절하냐는 둥 그가 눈곱만큼도 그러고 싶은 마음이 없을 때에도 몸이 후끈 달아오르는 걸 알겠다는 둥 언제나 뜬금없는 이야기를 했다. 노먼은 힐다가 도대체 무얼 보고 그런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노먼은 그녀가 .. 2025. 8. 15. 고추냉이와 생강식초절임을 풍부하게 곁들인 메밀국수 아내와 나는 그 건물에 수없이 다녀왔다.어제도 종일 거기에 있었다. 지하층에 내려갔을 때, 아내는 일찍 점심을 먹자고 했고 여기 식당이 골고루 있으니까 여기서 먹기로 하자고 했다. 이 사람이 왜 이렇게 단호할까 생각하며 돌아보자 이렇게 말했다."메뉴는 뭐든 좋아! 중국음식도 좋아!" 나는 당장 알아차렸다. 몰랐다면 눈치도 아니다. 1, 2십 년 살았나.모른 척하고 그럼 좋다는 표정으로 일식집으로 들어갔고, 자리에 앉자마자 '점심특선'을 주문했다. 그게 그중 좋은 메뉴이고 골고루 다섯 가지가 '코스'처럼 나오고 그래봤자 2인분 46,000원이었다. 그 건물 옥상 스카이라운지에 좋은 식당이 있다는 얘기를 해준 적이 있었다. 아내는 내가 거기 가자고 주장할 것으로 짐작했고, 음식이 나오기 전 그 얘기를 꺼내.. 2025. 8. 13. 입추 지나자 정말 가을 소리가 작아서 미안합니다~~ 지난주, 7일은 입추, 8일은 보름, 9일은 말복이었다.9일(토) 밤, 전날까지는 조용하던 동네에 또르또르 풀벌레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여름 끝은 힘이 없다. 더위와 폭우로 맹위를 떨치며 잘난 척하더니 탈진했나?바보...... 나도 겨우 살아남은 주제에 이제 와서 이 여름을 조롱하고 있나? 잘난 체하나?그럴지도 모르지. 2026년 여름을 기대하는 초가을 저녁이 서글프다. 염체 없는 일이어서 그런가?아직 조금 더 더워도 괜찮을 것 같다. 2025. 8. 11. 더 사랑해 줄 걸 그들은 그냥 내 마음속에서나 안타까운 사랑, 안타까운 사람으로 남아 있을 뿐이고 그게 좋다. 마음속에서나마 따뜻하게 떠오르는 사람.....나는 다시 살 수는 없다.'모두 사라졌다. 이제 아무도 아무것도 없다.'* 고단한 삶이었다.그렇다고 새로운 삶을 기대하진 않는다. 살아온 나날들은 오로지 나의 것일 뿐만 아니라 그만큼 값진 것이기도 하다.후회가 없진 않다. ' 사람들을 사랑해 줄 걸' 싶은 것은 그중 한 가지다. 가족에게도 지인들에게도 그렇다. 그럭저럭 그들은 내게서 거의 다 떠났다.그렇게 떠나가서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그 인간은 언제 죽을까?' 하고 있다."나는 몇 년 몇 월 며칠에 죽기로 했다" 예고하고 싶지만 그게 어디 그렇게 되나? 이 글이 유용하다면 답답하더라도 기다려달라고 부탁하는 .. 2025. 8. 10. 김원길 시인의, 회비 없는 낙시회 안동 김원길 시인에게 안부 전화를 해보았다.불타버린 지례예술촌(경상북도 문화재) 복구 문제는 어떻게 되어가는지, 더위에 어떻게 지내는지... 그렇다고 앓고 있을 필요는 없고 요즘은 또 사람들 만나는 일을 꾸며 잘 지내고 있다고 했다.낙시회(樂詩會)라며, 못 오더라도 일단 명단에는 넣어 놓겠다고 했다. 문풍의 진작을 위하여 삼십 년 전 일이다. 어느 기업 경제연구소의 연구원 한 분과 알게 되었는데 내게 전화로 서울 모처에 올라와서 무어든 유익한 이야기를 해 달라는 것이었다. 전제가 있었는데 강의료도 여비도 없다는 것이었다. 내가 답했다. 불러만 줘도 영광인데 나로선 친구도 만나고 여러 사람에게 내 이야길 들려줄 수 있는 기회이니 조금도 미안해하지 마시라고 했다. 그가 알려 준 장소로 가 보.. 2025. 8. 7. 이전 1 2 3 4 ··· 28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