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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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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과 교육의 실제》 '사회과 교육과정 해설'(교육부)을 기반으로 집필된 책으로 집필자가 7명이다. 나는 1999년 1학기까지 오랫동안 교육부 초등 사회과 편수를 담당하고 있었다. 그래서였겠지, 내가 이 책 이야기를 하자 출판사에서는 흔쾌히 발행하겠다고 했다.공동집필자들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다 지내놓고 보면 별 것도 아니라는 걸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을까? 나는 그때는 무슨 대단한 일이나 하고 있는 줄 알았었다. 두산동아에서 이 책을 낸 것은 1999년 3월이었다.1999년 9월 1일에 나는 서울 영신초등학교 교감 발령을 받았지만 2000년 3월 1일에 그러니까 6개월 만에 다시 교육부 장학관으로 들어갔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을 중심으로 방방곡곡의 초중고등학교들이 일제히 제7차 교육과정 적용이 어렵다는 항의와 .. 2025. 1. 22.
《보고 읽고 생각하는 아이로 키워야 한다》 2 부끄럽다.나는 이런 책을 낸 적이 없다고 하거나 누가 나 몰래 저질러 놓은 일이라고 변명하고 싶다.그런 것들이 있다.나이가 들수록 늘어난다. 나에게는 나이가 든다는 것이 그런 것들이 늘어나는 것일까? 교육부에서 학교로 나온 이듬해(2005) 봄, '아침나라' 황근식 사장이 (선배 대접을 한다고 그랬겠지) 이런 책으로는 승산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내색하지 않고 흔쾌히 인쇄해 주었다.몇천 권을 찍어서 소진될 때까지 창고에 보관하고 있었으니까 그는 이래저래 손해를 보았다. 내가 생각한 책 제목은 이게 아니었는데 황 사장은 내 생각을 듣고도 이 제목을 붙여버렸다.나는 교육자로서의 겸손은커녕 이렇게 낯 뜨거운, 노골적인 제목을 붙였다고 오랫동안 섭섭해했는데 이 책이 다 팔리고 나서 그래도 이런 제목이라도 붙였기에.. 2025. 1. 21.
와다 히데키 《어차피 죽을 거니까》 와다 히데키 《어차피 죽을 거니까》오시연 옮김, 지상사(청홍) 2024      1. 어차피 죽을 거니까...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면서 깨달은 것들 • Memento mori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Carpe diem 오늘이라는 날의 꽃을 꺾어라.• 노인은 감기 같은 사소한 병으로도 죽을 가능성이 크다.• 아등바등해도 소용없다. 반드시 죽는다. 100% 진실이다.• 몸에 좋은 것보다 좋아하는 삶의 질을 위해 주 5회 라멘을 먹는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죽음의 심리 상태(부인→분노→타협→우울→수용)• 죽는 순간에는 아프지도 괴롭지도 않다. 잠들듯 죽어간다.• 노인의 암치료는 괴롭기만 하다. 나는 모르핀을 맞겠다.• 건강하게 살다가 갑자기 죽는 것보다 암으로 죽겠다. 정리도 하고 인사도 할 수 있다.. 2025. 1. 20.
바흐를 좋아하시나요? 어언 60년이 다 되어가는 어느 가을날 교정에서 《생의 한가운데》(루이제 린저)를 읽어봤는지 물은 그 여학생을, 그로부터 50년쯤 후 남한산성 수어장대 올라가는 길에서 만났다.그 교정에서 그 여학생은 예뻤다. 짝을 찾는 일을 제쳐놓고 실속 없는 일에나 정신이 팔린 내게 시험기간이 다가오면 노트 복사물을 만들어 은밀하게 건네주기도 했다. 수어장대 올라가는 길은 호젓하진 않았다.그 옛날 우리 반 동기생들이 남한산성 아랫마을 한 식당에 많이 모였는데 그녀와 나 중 어느 쪽의 의도였을까,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며 오르던 그 길에서 어느 순간 그녀와 내가 둘이서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된 것이었다. 다른 얘기들은 전혀 생각나지 않고 그녀가 남편을 만난 얘기만 또렷하다.그 남편도 우리 반이었으므로 나하고.. 2025. 1. 19.
죽을 때 후회하지 않기 위한 삶의 마음가짐 정신과 의사 와다 히데키는 자신의 저서 《어차피 죽을 거니까》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나는 이 책을 조통 님 소개로 읽었다. 아, 참! 이 책은 노인(70세 이상?)을 진료 대상으로 하는 정신과 의사가 쓴 책이다.      ㉮ 최상의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자신이 납득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을 고수한다 ㉯ 힘들거나 번거로운 일은 되도록 하지 않는다 ㉰ 내 마음 가는 대로 산다. 참으면 몸과 마음이 더 빨리 늙어간다 ㉱ 간병이 필요해지면 남은 기능과 개호보험*을 최대한 이용해 인생을 즐긴다 ㉲ 섣불리 의사의 말을 믿지 않는다. 치료와 약은 나 자신이 선택한다 ㉳ 치매를 예방하고 다리와 허리가 약해지지 않도록 뇌와 몸을 계속 사용한다 ㉴ 죽음을 두려워할수록 삶의 행복도는 떨어진다 ㉵ 인간관계가 풍부할수록.. 2025. 1. 18.
하나도 우습지 않은데 모두들 웃을 때 책을 읽을 땐 온갖 생각, 온갖 짓을 다 한다. 남은 책장을 헤아려보기도 하고, 누가 읽으라고 하지도 않는 책을 들고 이 책을 언제 다 읽나 한숨을 쉴 때도 있고, 한 줄 한 줄 허투루 읽지 않으려고 아껴가며 읽기도 하고, 몸을 움직이지도 않고 숨 가쁘게 읽기도 한다. 김경욱이라는 작가가 쓴 "현대문학" 1월호의 단편소설 「도련님은 어떻게 작가가 되었나」는 숨가쁘게 읽었다. 나는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았나, 한탄도 하고 이미 쓸데없는 일이 되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생각 좀 하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반성도 하고, 이렇게 재미있는 소설도 있구나 감탄하기도 했다. 가정교사인 화자가 제자로부터 배우는 장면 중 하나이다.   "무슈는 꿈이 뭐예요?"하루는 강선재 군이 저를 빤히 쳐다보며 물었습니다.비올라 양 아버님이 .. 2025. 1. 17.
마이클 샌델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마이클 샌델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안기순 옮김, 미래엔 2012      세상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있다. 하지만 요즘에는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다. 모든 것이 거래 대상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교도소 감방 업그레이드 | 1박에 82달러 캘리포니아 주 산타아나 시를 포함한 일부 도시에서는 폭력범을 제외한 교도소 수감자들이 추가 비용을 지불하면 깨끗하고 조용하면서, 다른 죄수들과 동떨어진 개인 감방으로 옮길 수 있다. (......) (19) '이런 책을 두고 내가 뭘 하고 있었지?' 싶었다.내용을 발췌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새치기 '선착순'의 개념이 점차 희미해지고 있다. 약간의 돈만 더 내면 공항 보안검색대든 놀이공원의 인기 놀이기구든 줄을 서서 기다릴 .. 2025. 1. 15.
창의적인 게 싫으면 그냥 살게 해? 요즘은 뉴스 시간에 걸핏하면 인공지능(AI) 얘기가 나오고 그러면 이미 10년 전, 한 학자의 경고가 떠오른다."국·영·수만 하면 실업자가 된다." 한 번 들으면 잊히지 않는 건 '그래! 그럴 것 같아! 아니 분명해!' 싶은 얘기다.그가 20년 혹은 30년 후라고 했으니까 15년쯤으로 잡으면 지금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 직업을 선택할 즈음일까?  "연구하는 분들 생각에는 인공지능이 100년 후 먼 미래가 아니라 20년, 30년 후 미래라는 확신이 생겼어요. 그런데 문제가 생겨요. 2013년 옥스퍼드대 연구 결과를 보면 기계가 만약에 사람하고 비슷한 수준으로 정보를 처리한다면 영국과 미국에 존재하는 직업의 47%가 사라진다는 거예요. 대부분 화이트칼라 직업들이 사라집니다.그럼 어떤 직업이 살아남을까요. .. 2025. 1. 14.
김복희 「새 입장」 새 입장   김복희   대한민국에 사는 희망은 키가 작다. 발이 작다. 손이 작다. 그래도 성인용 속옷을 입는다. 어느 날 희망은 자신의 몸이 커졌다 느꼈다. 희망이 발을 쿵 구르자 현관 계단이 와르르 무너졌기 때문에, 희망은 드디어 내가 소인국에 왔군 올 곳에 오고야 말았어 흥분했다. 허물을 벗은 후 더 아름다운 뱀 더 커다란 뱀 태어나므로 희망은 두 발을 쾅쾅 구르며 계단을 완전히 부수고  허물을 부숴버리기 시작했다. 희망의 수화물에서 찾아낼 것들, 뾰족한 것, 날카로운 것, 폭발하는 것, 흔들리는 것, 살아 있는 것, 자라날지도 모르는 것. 새를 그려 넣은 것, 뱀을 그려 넣은 것, 죽음 근처에 엉켜 있는 것, 그것들 중 일부는 소시지, 곰팡이, 번데기, 씨앗으로 보인다. 다 빼앗겨도 별수 없는 것.. 2025. 1. 13.
영화 "알리타" 지금 알리타(사이보그)가 그녀의 남친 휴고(인간)와 사랑을 나누는 장면이다.저 정도에 그치고 '12세 이상 관람 가'여서 뜻을 알 만한 웬만한 아이들은 다 봐도 될 것 같다. 알리타는 연약해 보여도 악의 무리를 여지없이 무찌르는 멋진 전사다.남친 말고도 그녀를 도와주는 '사람'도 있다. 그녀의 몸이 망가지면 복구해 주는 의사 이도 박사가 그녀와 함께 지낸다.저렇게 사랑을 나누고 돌아와서 묻는다. "인간이 사이보그를 사랑할 수도 있나요?"이도의 대답은 명쾌하다. "사이보그가 인간을 사랑하는구나."      이 영화는 저 이야기가 현실이 되는 날을 26세기로 잡았다.그럼 대충 500년 후라는 얘긴데 50년 후가 될 수도 있다. AI(인공지능)라는 것이 지금 우리 주위를 얼씬거리는 걸 보면 불가능한 건 아무것.. 2025. 1. 11.
올리버 색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올리버 색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조석현 옮김, 알마 2016       의사가 장갑을 들어올리며 뭐냐고 묻는다.P 선생이 대답한다. "조사해봐도 되겠습니까?""표면이 단절되지 않고 하나로 이어져 있어요. 주름이 잡혀 있군요. 음, 또 주머니가 다섯 개 달려 있는 것 같군요. 음, 말하자면...""맞습니다. 설명을 하셨으니 이제 그게 뭔지 말해보세요.""뭔가를 넣는 물건인가요?""그래요. 그런데 뭘 넣는 거죠?""안에다 뭔가를 넣는 거겠죠." "여러 가지가 가능할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잔돈주머니일 수도 있겠군요. 크기가 다른 다섯 가지 동전을 집어넣는... 아니 어쩌면..." P 선생의 뇌는 기계처럼 정확하게 기능했다. 시각 세계에 대해 무관심하다는 면에서 그는 컴퓨터와 똑같았다. 더 놀라운 점.. 2025. 1. 10.
청둥오리에 대한 고양이의 생각 오른쪽 중간쯤의 냇물에 청둥오리 세 마리가 있다. 한 마리는 이쪽 풀숲으로 나와 있고 한 마리는 나오는 중이고 한 마리는 아직도 냇물 속에서 먹이를 찾고 있다.     냇물의 이쪽 기슭을 따라 왼쪽으로 올라오면 풀숲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고양이 한 마리의 상체를 볼 수 있고, 냇물 건너편 저쪽에는 이쪽 고양이의 아내인지, 아니지, 새끼 고양이겠지, 통통한 고양이 한 마리가 돌 위에 옹크리고 앉아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우리 엄마가 저 세 마리 중 한 마리만 잡아도 맛있게 먹을 수 있을 텐데...' 나는 굳이 어느 쪽 편을 들고 싶진 않아서 그냥 지나오긴 했지만 고양이들이 굶어 죽지만 않는다면 고양이 가족이 '청둥오리 전골 파티'를 포기해서 오리 가족이 잘 지낼 수 있기를 바랐다. '아마도 안전했겠지.. 2025. 1.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