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3327 5월을 앞두고 한 아이를 생각함 (2025.4.25) 4월 중순인데도 자욱하게 눈이 내려 겨울옷 넣어두기를 망설였지만 벚꽃은 곧 이를 데 없이 화사했고, TV는 그새 초여름 기온이라면서 반팔 옷 입은 젊은이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다음 주에는 5월이 시작되고 어린이날이 다가온다. 더할 수 없이 소중한 저 아이들을 위해 갖가지 행사를 계획하고 있을 것이다. 그날 집에만 있을 수 있는 휴일이어서 다행이기도 하다. 즐거움과 기쁨으로 지낼 아이들이 많지만 그 하루도 평소처럼 보내야 하는 아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D시 중심가 한 초등학교에서 1학년을 담임하던 해 늦가을, 다른 교육기관에서 파견근무를 하게 되었다. 파견은 직원 취급도 받지 못하면서 근무는 더 힘들고 봉급은 소속기관에서 받게 되어 있어 1년에 한 번쯤 적을 둔 기관을 찾아가 미안한 마음을 .. 2025. 4. 25. 김춘수 「바위」 옛날 우리가술래잡기 하던 곳술래야,너는 나를 잡지 못하고나는 그만 거기서 잠들었다.눈 뜨고 보니밤이었다.술래야,그때 벌써 너는 나를 두고말도 없이너 혼자 먼저 가버렸다.얄미운 술래야, 나의 술래는 누구였을까? 누구를 내 술래라고 해야 하지? 2025. 4. 23. Carol Kidd 「When I Dream」 종일 비가 내렸다.지지난 주 어느 날엔, 지표에 닿자마자 녹긴 했지만 자욱하게 눈이 내렸었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 봄은 오래전에 와 있었고 오늘 오랜만에 봄비가 내리는 것 아니냐면서 시치미를 떼는 듯한 느낌이다. 캐럴 키드가 곱고 나지막하게 부른 「When I Dream」이 들려서 이런 날과 닮은 블로그가 있다.다른 표정인지도 모르겠다. 여름날 한낮의 거리를 내다보며 들었을 땐 또 그 표정과 많이 닮았다는 느낌이었다. 블로그의 글들도 그랬다. 노래 같다고 생각했다.지금은 '빈집'이다.이사는 가지 않았다. 비어 있을 뿐이다. 가끔 찾아가 아무것도 없는 화면을 살펴본다.전에도 그런 적이 있어서 언제 또 새로 시작하겠지 생각하지만 세월은 가다 서다 하는 것이 아니어서 초조할 때가 있다. 왜 빈집일까?마음도 몸.. 2025. 4. 22. 보이지 않는 죽음 한동안 출근하는 젊은이들을 유심히 바라보곤 했다.'나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나는 왜 이러고 있지?'뛰다시피 하는 사람, 아예 달려 내려가는 사람을 보면 더욱 그랬다. 아침에는 자동차도 더 부지런히 내려가는 듯하다. '1분 1초가 아쉬울 시간이지...'지금도 생각은 한다. '난 이제 영영 출근할 일이 없는 사람이 되었지.' 나는 하릴없이 아파트 벤치에 앉아 있는 노인, 엉거주춤 서서 멀뚱하게 먼산을 바라보거나 오가는 사람들을 주시하는 늙은이가 싫다. 내가 그렇게 하고 있는 듯해서일 것이다. '왜 맨날 저러고 있지?' 아침나절에 꼭 산책을 나가는 부부가 있다.자주 만난다. 나는 그 부부가 나보다 연상일까, 연하일까 생각하지만 나는 보기보다 나이가 좀 많은 편이어서 그들이 연하라고 '결정'해버렸다... 2025. 4. 21. 장세련 글·송수정 그림 《혼자가 아니야》 장세련 글·송수정 그림 《혼자가 아니야》단비어린이 2025 '너 혼자 올라올 수 있겠니'묻는 시가 있다.이렇게 묻기도 한다.'너 혼자 눈물 닦을 수 있겠니'(박상순 「너 혼자」) 가슴이 먹먹해진다. 이제 겨우 말을 좀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거나 겨우 책을 읽게 된 아이에게 '혼자 가야 한다' 혹은 '혼자 같아도 넌 혼자가 아니다'라는 걸 가르칠 수 있을까?그런 철학을 그대로 전해 줄 수 있는 그림책이다.아이가 어른이 된 어느 날, 문득 이 그림책이 생각나서 한참 동안 생각에 들 것 같다. 글도 그림도 간결하고 따듯하다. 2025. 4. 20. '내 책을 보면 세상에 이런 책이!' 하고 놀랄 것이라는 기대 ↑ 위 : 오래전 「교사와 교육과정」 강의자료에 쓴 사진(출처 : 미상의 어느 신문) 처음에 책을 낼 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세상이 뒤집어질지도 모른다. 그때까지만 참고 있으면 된다.'천만에!놀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아, 있다. 단 한 명. 나 자신이다. '이럴 수가!' 미안하지만 나만 그런 건 아니다.책을 출판해 본 경험이 별로 없는 사람은 거의 다 그렇다고 보면 된다. 연전에 이른바 지인이 책을 냈다.한여름이었는데 부지런히 읽고 독후감을 썼다. 열 일 제치고 일주일이 걸렸다. 그의 두 번째 소설이어서 이젠 작가이기 때문에 정성을 다했다.그 독후감을 이 블로그에 실었다.며칠 만에 그의 지인으로 짐작되는 여성이 비뚤어진 관점으로 혹독하게 쓴 독후감이라는 댓글을 달았다.가슴이 내려앉았고.. 2025. 4. 19. 지례예술촌 화재 전말기 / 김원길 예술촌 화재 전말기 김원길 집이 불탔다. 내 집 지촌종택이 불타서 없어졌다. 40년 전 임하댐 건설로 수몰을 피해 지례 뒷산 중턱에 옮겨 놓은 지례예술촌이 불타 없어졌다. 자고 일어나 가서 보니 타고 없어졌다. 꿈 이야길 하는 게 아니다. 내 눈으로 가서 보았다. 어제저녁에 있었던 종택과 서당, 별묘, 주사, 행랑채, 곳간, 방앗간이 이번 괴물산불에 밤새 불타서 잿더미가 된 것이다. 엊그제 3월 25일은 아버지 기일이었다. 제사 준비는 아들 내외가 하고, 병원 가까이 시내에 사는 나와 아내는 저녁 무렵에 지례로 가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아내 말이 오늘은 수형이가 제사 장 보러 시내에 나와 있고 정희 어미 혼자 제수장만을 하고 있을 테니 우리는 점심 먹고 바로 지례로 들어가서 며느리를 돕자고 .. 2025. 4. 16. 벚꽃 보며 미안하고 무안해 함 나는 일본이 물러간 바로 그때 태어났다.일본이라면 무조건 미워하고 싫어하고 배척했다. '왜놈들, 철천지 원수...'두렵기도 했다. "미국을 믿지 마라. 소련에 속지 마라. 일본이 일어난다." 아이들은 맹랑하다 싶은 그런 말을 하고 다녔다. '설마' 싶기도 하고 '그렇겠구나' 싶기도 하며 세월이 흘렀다. 언젠가 그 말이 《몽실언니》(권정생)에 등장한 걸 보며 옛 생각이 났었다. 물러갔다 해도 일본은 모든 곳에 스며들어 있어 곤혹스러웠다. 남들이 다 써서 나도 썼는데 알고 보니 일본 용어인 게 수두룩했다.고학년이 되자 선생님은 점심 좀 싸 오라고 통사정을 했다. 어떤 아이가 '벤또'가 없어서 싸 올 수 없다고 했더니 사발에 싸와도 된다고 했다. 공연히 알루미늄 도시락을 멀리 생각했다. '벤또'에 점심을 싸 .. 2025. 4. 15. 교사가 세일즈맨의 수완을 발휘했더라면 ↑ 위는 영화 《모던 타임즈》 디스켓 표지(일부) 나는 채플린을, 영화 《모던 타임스》의 콧수염을 단, 우스꽝스럽게 걷고 확실히 좀 모자라는 듯한 그 모습으로만 기억하고 있었다.그의 자서전을 읽으며 여러 번 머쓱했고 미안했다. 과목 중에는 따분하고 재미없는 것도 있었다. 특히 산수가 그랬다. 덧셈과 뺄셈을 배울 때는 점원이나 현금 출납계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거스름돈을 계산할 때는 배운 게 도움이 됐다.역사는 강자와 폭력의 기록이었다. 대부분 누가 언제 왕을 시해했다거나 아니면 왕이 왕비나 형제 또는 조카 등 친인척들을 죽였다는 얘기뿐이었다. 지리는 한 마디로 지도 찾기였고, 시는 기억력 훈련에 지나지 않았다. 이처럼 학교에서 가르쳐주는 지식은 내 흥미를 끌지 못했다.만약 누군가 세.. 2025. 4. 14. 저 신비로운 봄 빛깔 이 사진으로는 우스운 수준이지만, 나는 오른쪽 뒤편 저 나무의 갈색이 참 좋다.봄마다 이 아파트 주변의 나무와 풀들은 눈부셔서 '이걸 어떻게 하나' 싶은 느낌이다. 그렇지만 이 느낌을 무시하고 어쩔 수 없이 한 가지만 골라야 한다면 당연히 저 나무를 고를 것이다. 나무 아래 길을 내려가면서 '저 갈색이 조금만 더 짙어진 날 사진 한 장 찍어놔야지' 하면, 이내 하얀 꽃이 피면서 갈색은 옅어져 사라지게 된다. 그 갈색은 일주일? 그 정도여서 해마다 아쉽다.갈색 잎이 다 어디로 가나? 그건 아니다. 흰 꽃이 지고 나면 어느새 자랐는지 잎은 커져 있고 갈색은 더 짙어진다. 다만 내가 좋아하는 어린잎의 잔잔한 그 갈색이 그리울 뿐이다. 지난해까지 십여 년을 바라보면서 나는 저 나무를 내 정원에 심어볼까 싶었다.. 2025. 4. 12. 알랭 드 보통 《삶의 철학산책》 알랭 드 보통 《삶의 철학산책》 The Consolations of Philosophy정진욱 옮김, 생각의 나무 2002(2002.4.20 초판 1쇄 인쇄, 4.25 초판 1쇄 발행) 이렇게 구성되어 있다. 1장 인기 없음에 대한 위안 · 소크라테스2장 충분한 돈을 갖지 못한 데 대한 위안 · 에피쿠로스3장 좌절에 대한 위안 · 세네카4장 부적절한 존재에 대한 위안 · 몽테뉴5장 상심한 마음을 위한 위안 · 쇼펜하우어6장 곤경에 대한 위안 · 니체 2002년 4월 25일에 나온 초판을 구입했지만 '나중에 읽어야지' 했다.그러다가 2년 전 봄, 위의 책과 거의 같은 시기에 구입한《젊은 베르테르의 기쁨》이란 책을 읽었다. 이 책을 먼저 읽은 것은 《파우스트》를 읽다가 재미있는 각주를 발견했기 .. 2025. 4. 10. 그러니까 적어 놔야지! 가령 비닐봉지를 찾으러 가다가 어두워지기 시작하는구나 싶어서 전등부터 켜면 비닐봉지는 잊는다. 영영 잊기도 하지만 흔히 나중에 어처구니없어하게 된다.이런 사실을 이야기하면 아내는 이렇게 말한다. "그러니까 적어 놔야지!"적어 놓는다고? '비닐봉지 하나 가져오기' 이렇게?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 가정연락부처럼?어이없는 충고지만 못 들은 척한다.건망증이 심해지는 현상은 당사자인 나는 '그 참 재미있구나' 싶어도 아내는 싫어한다. 저러다가 치매가 오면 우린 이도저도 끝장이다 싶겠지? 끝장은 오고야 마는 건데... 그럴 때 나는 아내에게 그러겠지? "당신 누구야? 누군데 내게 이래라 저래라야? 정체를 밝혀!"TV에서 치매 이야기 하는 걸 볼 때마다 나는 "저러다가 끝에 건강식품 선전한다! 틀림없다!"고 하면 .. 2025. 4. 9. 이전 1 2 3 4 ··· 27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