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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Carol Kidd 「When I Dream」

by 답설재 2025. 4. 22.

종일 비가 내렸다.
지지난 주 어느 날엔, 지표에 닿자마자 녹긴 했지만 자욱하게 눈이 내렸었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 봄은 오래전에 와 있었고 오늘 오랜만에 봄비가 내리는 것 아니냐면서 시치미를 떼는 듯한 느낌이다.
 
캐럴 키드가 곱고 나지막하게 부른 「When I Dream」이 들려서 이런 날과 닮은 블로그가 있다.
다른 표정인지도 모르겠다. 여름날 한낮의 거리를 내다보며 들었을 땐 또 그 표정과 많이 닮았다는 느낌이었다. 블로그의 글들도 그랬다. 노래 같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빈집'이다.
이사는 가지 않았다. 비어 있을 뿐이다. 가끔 찾아가 아무것도 없는 화면을 살펴본다.
전에도 그런 적이 있어서 언제 또 새로 시작하겠지 생각하지만 세월은 가다 서다 하는 것이 아니어서 초조할 때가 있다.
 
왜 빈집일까?
마음도 몸도 많이 아프다고는 했다.
어릴 때의 일을 쓴 글을 본 적이 있는데 어렴풋하다. 소설 속 소녀의 일들 같다는 느낌만 남아 있다. 생물 담당 여선생님과 친한 적이 있고 사업가와 결혼했고 헤어졌고 딸이 있고 그가 세상을 떠나고... 그랬다.
내내 앓았고 일어서려고 무진 애를 썼다.
 
나에게, 이 블로그에 자주 왔었다.
안 오면 그만인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왜 자주 왔을까?
좋은 인상을 받았던 것 같다. "선생님" "선생님" 해서 따스했다.
나로서는 요행이었다.
내가 나 자신을 평가해 보면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 중 어쩌다가 드러나기도 하는 그 '1'을 본 것이다. 나머지 '99'에 눈 감고 '1'을 보았다는 건 천재일우다.

채플린이 영국 왕족 웨일스 공의 별장에 초대되었을 때 누군가 미국에서 유행하는 '솔직 평가'라는 게임을 하자고 했다. 초대 손님들은 각각 매력, 지성, 개성, 성적 매력, 외모, 진실성, 유머 감각, 융통성 등등 10가지 항목이 적힌 카드를 받아 각 항목에 대해 10점 만점으로 1부터 10까지 솔직하게 점수를 매긴다. 본인은 밖에 나가서 본인의 점수를 매기고 다른 사람들은 방에서 밖에 나간 사람의 점수를 매긴다. 밖으로 나갔던 사람이 들어와 자신에게 매긴 점수를 다른 사람들에게 읽어준 뒤, 방에 남아 있던 사람들을 대표해 누군가 한 사람이 일어나 다른 사람들이 매긴 평균 점수를 읽어준다.

재미있는 건 본인이 매긴 점수가 남들이 매긴 점수보다 더 높았는데 채플린은 하필이면 웨일스 공의 경우를 사례로 들었다.


내가 나 자신을 평가해 보면 항목별로 2~3점을 주기에도 부끄러울 것 같다.

10가지 항목이라고 했는데 위에 나타나 있는 항목은 8가지다. 부와 권력을 빼놓았을까? 모르겠다.
그렇다면 그 두 가지는 0점이다.
블로그를 찾는 수십, 수백 명 중 어느 누가  나를 좋게 봤다는 건 나로서는 행운이고, 그 대신 익명성을 지우고 "바로 접니다!" 하고 나타날 수가 없게 되고, 앞으로 영영 나타나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가 된다.

그냥 궁금해한다.


 
When I Dream

- Carol Kiddhttps://youtu.be/QvPKjOeOVVU?si=6Wp6bKqXaHyjQv1s


I could build the mansion
that is higher than the trees
I could have all the gifts I want
and never ask please

I could fly to Paris.
It's at my beck and call,
Why do I live my life alone
with nothing at all

But when I dream,
I dream of you,
Maybe someday
you will come true

When I dream,
I dream of you
Maybe someday
you will come true

I can be the singer
or the clown in any role
I can call up someone
to take me to the moon

I can put my makeup on
and drive the man insane
I can go to bed alone
and never know his name

But when I dream,
I dream of you
Maybe someday
you will come true

When I dream,
I dream of you
Maybe someday
you will come tr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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