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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보이지 않는 죽음

by 답설재 2025. 4. 21.

사람들은 아파트에서 죽지 않는다

 

 

 

 

한동안 출근하는 젊은이들을 유심히 바라보곤 했다.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나는 왜 이러고 있지?'

뛰다시피 하는 사람, 아예 달려 내려가는 사람을 보면 더욱 그랬다. 아침에는 자동차도 더 부지런히 내려가는 듯하다. '1분 1초가 아쉬울 시간이지...'

지금도 생각은 한다. '난 이제 영영 출근할 일이 없는 사람이 되었지.'

 

나는 하릴없이 아파트 벤치에 앉아 있는 노인, 엉거주춤 서서 멀뚱하게 먼산을 바라보거나 오가는 사람들을 주시하는 늙은이가 싫다. 내가 그렇게 하고 있는 듯해서일 것이다. '왜 맨날 저러고 있지?'

 

아침나절에 꼭 산책을 나가는 부부가 있다.

자주 만난다. 나는 그 부부가 나보다 연상일까, 연하일까 생각하지만 나는 보기보다 나이가 좀 많은 편이어서 그들이 연하라고 '결정'해버렸다.

 

그들은 어색한 표정을 짓는다.

함께 늙어가는 입장을 동정하는 것일까? '측은한 늙은이 같으니라고...'. '저 사람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는 걸까?'

나를 보고 그렇게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정말이지 나는 이 삶을 뚜렷한 목적을 두고 그걸 이루려고 애쓰며 살아가는 걸까?

 

나는 그들을 볼 때 그런 생각을 자주 해보지만 그들도 나를 보며 그럴 것 같았다.

나는 한 가지 생각을 더 한다. '나이는 내가 당신보다 한두 살이라도 더 많을 거야. 그렇지만 난 이래 봬도 아직 젊은이 기질을 갖고 있거든? 사실은 젊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걸?'

내가 착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도 나를 보며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한술 더 뜨고 있을지도 모른다. '난 말이야, 사실은 벗어놓고 보면 근육이 울끈불끈이야!' 

 

 

노화의 끝은 죽음이다. 요즘 죽음을 자주 생각한다. 죽음에 다다른 사람을 여럿 만나기에 그런 모양이다. 우리는 고대인보다 두 번 더 산다. 당시 평균수명은 30세 정도였는데, 지금은 100세에 가깝다. 30년씩 세 번 산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죽음이 멀어진 것은 아니다. 진료실에서 본 죽음은 진행형이었고, 길고 느리며 고통스러웠다. 세 번째 30년을 이렇게 보낸다면 오래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정희원이라는 의사가 쓴 에세이의 한 부분이다(「나의 업業─노년내과 의사」『현대문학』 2025년 2월호).

 

많은 이들이 노년에 대해 이야기한다.

마음가짐을 젊게 가져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전문가들은 결국 건강식품을 먹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유산소 운동도 하고 근육 운동도 해야 한단다.

모임에 자주 나가고, 옷도 멋지게 입어야 한다는 사람도 있다.

 

이런저런 경구를 마음에 새기면 그로 인한 할 일이 생길 것이다.

그럼 늙지 않을까?

영화를 누릴 수 있을까?

괄시를 받지 않을 수 있을까?

죽을 때 하루이틀 만에 숨이 넘어갈까? 짧고 빠르고 고통스럽지 않은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 서글프다.

누가 나를 봐도 당연히 그럴 것이다.

구순을 맞은 한 평론가가 "노년은 그 자체가 고해 중에서도 청정 해역에서 먼 오염 해역이다. 그래서 (......)  '늙음은 죄요 벌이요 업일지니'라 적어놓고 있다. 그러나 이런 말을 늘어놓으면 즐거운 엄살 아니냐고 눈을 흘길 이들도 있을 것 같아 (......)"라고 쓴 글을 보았다.*

 

가만히 있고 싶다.

고요함이 수(繡)를 놓아줄 것 같다.

그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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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종호(에세이) '아흔 해를 맞으며-모든 것에도 불구하고'("현대문학" 2025년 2월호)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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