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소왕이 진신 석가를 몰라보다
8년 정유에 낙성회를 열어 효소왕이 친히 가서 공양했다. 그때 한 비구승이 있었는데 모습이 누추했다. 그는 몸을 움츠리고 뜰에 서서 청했다. “빈도도 재에 참석시켜주기를 바랍니다.”
왕은 그에게 말석에 참예하라 허락했다. 재를 마치려 하자 왕은 그를 희롱하고 비웃었다. “비구는 어디 사는가?”
중은 말했다. “비파암琵琶巖에 있습니다.”
“지금 가거든 다른 사람들에게 국왕이 친히 불공하는 재에 참석했다고 말하지 말라.”
중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폐하도 또한 다른 사람에게 진신 석가를 공양했다고 말하지 마시오.”
말을 마치자 몸을 솟구쳐 하늘에 떠서 남쪽으로 향하여 가버렸다. 왕은 놀랍고 부끄러워 동쪽 산에 달려 올라가서 그가 간 방향을 향해 멀리서 절하고 사람들에게 가서 찾게 했다. 그는 남산 삼성곡參星谷, 혹 대적천원大磧川源이라는 곳에 이르러 바위 위에 지팡이와 바리때를 놓아두고 숨어버렸다. 사자가 와서 복명하니, 왕은 드디어 석가사釋迦寺(경주 남산에 있는 절)를 비파암 아래에 세우고, 불무사佛無寺를 그의 자취가 없어진 곳에 세워 지팡이와 바리때를 나누어 두었다.
두 절은 지금까지 남아 있으나 지팡이와 바리때는 없어졌다.
『智論』(大智度論 ; 용수보살이 짓고 구마라습이 번역)에 이런 말이 있다.
옛날에 계빈국(북인도의 나라 이름, 지금의 캐시미르)에 삼장법사가 아란야법(깨끗한 불법)을 행하여 一王寺에 이르렀더니, 절에서는 큰 모임이 열려 있었는데 문지기가 그의 옷이 누추함을 보고 문을 막고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이렇게 여러 번 들어가려 했으나 옷이 누추했기 때문에 번번이 들어가지 못했다. 그래서 문득 한때의 방편으로 좋은 옷을 빌려 입고 갔더니, 문지기는 이것을 보고는 들어감을 허락하고 막지 않았다. 자리에 참례하게 되자 여러 가지 좋은 음식을 얻어 그것을 옷에게 먼저 주었다. 여러 사람이 물었다. “어째서 그렇게 합니까?”
그는 대답했다. “내가 여러 번 왔으나 번번이 들어오지 못했는데, 지금 옷 때문에 들어와 이 자리에 앉게 되고 여러 가지 음식을 얻었으니 마땅히 이 옷에게 음식을 주어야 할 것이오.”
아마도 이와 같은 사례인가 한다.
기린다.
향을 태우고 부처님을 가려 새 불화를 보았고
음식을 만들어 중을 대접하고 옛 친구를 불렀다
그 후로 비파암 위의 달은
때때로 구름에 가려 못에 비치기 더디었다
* 일연 《삼국유사》 솔출판사 1997, 347~350.
이런 걸 보면 지위가 높다고 까불면 안 되는 건 언제나 그런 것 같다.
시시한 얘기지만 중은 '중'이라고 부른다. 중의 존칭은 '스님'이다.
요즘은 중이란 말은 거의 쓰이지 않고, 텔레비전에 나온 중 중에는 중 자신을 스님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중을 보면 역겹고 혐오스럽다. 기가 막힌다.
속으로 '저 중놈이...' 하며 바라보게 된다.
언젠가 한 중이 목사, 신부라고 부르는 걸 빗대어 "그럼 스님은 '스'라고 해야 하나?"라고 묻는 걸 봤다.
속으로 '저놈이 시청자를 바보로 아나?' 싶었다.
책 속에는 스님다운 스님이 많은데 세상에서는 어째 그런 중을 보기가 이리도 어려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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