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있을 땐 이곳 이 시간이 현실로 다가옵니다.
지난 시간, 그곳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나를 떠올리기도 하고 다시 그곳에서 그렇게 있을 나를 떠올리기도 합니다.
당연히 이곳 이 시간이 나의 중심입니다.
그렇지만 어쩌면 그곳에서 이와 같은 생각을 하고 앉아 있던 그곳 그 시간이 중심인지도 모릅니다.
거기서도 오랜 시간 이곳에서의 나를 떠올리며 그런 시간이 있었고 앞으로도 그렇게 하고 있을 나를 떠올리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 어느 곳 어느 시간이 현재이고 과거나 미래인지 알 수가 없게 됩니다.
시간 감각 장소 감각이 무디어진 까닭인지도 모를 일이지만 나 자신이 무너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 과정에서 시간 의식간에 충돌이 일어난 것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토성의 고리》라는 소설에서 다음 부분을 읽으며(183) 나의 이런 느낌이 '사실'일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고 내가 무너지고 있거나 아니거나 그건 그리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블라이스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에서부터 버려진 철도를 따라 잠시 걸어 약간 높은 지대에 오른 뒤, 월버스윅에서 남쪽으로 던위치라는 몇 안 되는 집들로 이루어진 마을까지 펼쳐진 습지를 향해 내려가는 동안 내 머릿속을 채운 생각도 바로 이런 것이었다. 이 지역은 인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고 쓸쓸하기만 하여 만일 누군가 여기에 버려진다면 자신이 북해 해변에 있는지, 아니면 카스피 해의 연안이나 렌퉁 만에 있는지 거의 구별할 수 없을 것이다. 오른쪽으로는 갈대밭이 춤을 추고, 왼쪽으로는 회색빛 모래밭이 펼쳐진 가운데 나는 너무나 멀어 결코 도달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던위치를 향해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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