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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정은숙 「멀리 와서 울었네」

by 답설재 2022. 5. 6.

멀리 와서 울었네

 

 

지하 주차장, 신음 소리 들린다.

방음 장치가 완벽한 차창을 뚫고

누군가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울 수 있는 공간을 갖지 못한 사람,

그가 이 깊은 어둠 속에서 웅크리고 있다.

자신의 익숙한 자리를 버리고

그가 낮게 낮게 시간의 파도 속을 떠다닌다.

 

눈물이 거센 파도가 되고 멈춰 선 차들은

춤을 추네. 울음소리에 스며들어 점차

나는 없네.

이 차는 이제 옛날의 그 차가 아니라네.

이 차는 속으로 울어버린 것이라네.

나를 싣고서 떠나가 버렸다네.

 

 

                      ―정은숙(1962~ )

 

 

아무도 없는 데로 가서 울어본 적이 있는지. 울려고 가다가 중간에 참던 울음을 쏟아진 적이 있는지. 미처 틀어막지 못한 울음 때문에 두리번거린 적이 있는지.

누구도 오래 머물길 원치 않는 지하 주차장에서 차의 문을 잠그고 누군가 흐느낀다. 아무도 없으리니 통곡이 된다. 그 울음이 온 자리는 '자신의 익숙한 자리'이리라. 무엇을 원망하는 것도 아닌, 일상의 터널에 잠겨버린, 오직 스스로를 향한 설움의 만개(滿開)이다. 멀찍이에서 그 울음을 '발견'한 '나'도 그 울음의 이웃이다. 이게 뭐야. 인생이야? 이게 뭐야. 지독한 질문이 오고 모든 울음의 이웃들이 노래(구어체로의 전환을 보라!)를 이루어 일상을 떠나본다.

그 울음은 삶을 지탱시키는 거름인지 모르네. 그 울음터를 찾아 우리는 멀리 여행을 가는 건지 모르네. 오래 혼자 있고 싶은 건지 모르네. 입산(入山)하고 싶은 건지 모르네.

                                                                                                                         장석남·시인·한양여대 교수

 

 

 

 

 

2012년 9월 26일, 조선일보 [가슴으로 읽는 시]에서 읽었지.

이 일도 십 년이 되어가네.

 

2007년 8월 31일 오후가 생각났었지.

수지지구 그 학교에서 마지막 퇴근을 한 저녁나절

(먼 거리를 통근했는데 그때만 해도 젊었었지.)

자동차 안에서 한참동안 그대로 앉아 있었지.

울지는 않고

음악도 듣지 않고

매듭을 지을 때마다 기억을 마련해두곤 했었지.

학교를 옮겨도 나는 뭘 갖고 다니진 않아서 빈손이었지.

마음도 그렇게 비우고 빈마음으로 살았더라면 지금 난 더 좋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