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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심보선 「어찌할 수 없는 소문」

by 답설재 2022. 5. 3.

 

 

 

나는 나에 대한 소문이다 죽음이 삶의 귀에 대고 속삭이는 불길한 낱말이다 나는 전전긍긍 살아간다 나의 태도는 칠흑같이 어둡다

 

오지 않을 것 같은데 매번 오고야 마는 것이 미래다 미래는 원숭이처럼 아무 데서나 불쑥 나타나 악수를 권한다 불쾌하기 그지없다 다만 피하고 싶다

  (하략)

 

 

2014년 7월 13일,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에 이렇게 딱 두 연만 소개됐고, 강은교 시인의 감상문이 있었습니다.

 

 

당신은 누구인가. 소문인가. 존재는 없는가. 자기의 존재성이 가끔 의심되는 날, 이런 시를 읽어보자. 당신을 보고 이렇다 저렇다고 말하는 이들, 분명 ‘그들이 말하는 그 사람’이 ‘나’는 아니다. 일터에서 ‘사람사이 터’에서 늘 오해받고 있는 나. 다시 한번 말한다. 진정한 나는 누구인가라고 질문하고 싶은 날, 이런 시 하나 읽어보자. 무언가 답이 미래처럼, 아무 데서나 나타나 불쑥 손을 내밀지도 모른다. 오늘 당신은 당신의 존재를 가방에 담아 지하철을 탈 것이다. 우리는 그렇다. 언제나 우리를 모르는 우리에게 우리가 된다. 미래를 모르는 미래에게 끊임없이 미래가 된다. <강은교·시인>

 

 

어떤 시인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시집을 샀습니다.

시집  『슬픔이 없는 십오 초』에는 「어찌할 수 없는 소문」이 다음과 같이 나와 있었습니다.

 

 

나는 나에 대한 소문이다 죽음이 삶의 귀에 대고 속삭이는 불길한 낱말이다 나는 전전긍긍 살아간다 나의 태도는 칠흑같이 어둡다

 

오지 않을 것 같은데 매번 오고야 마는 것이 미래다 미래는 원숭이처럼 아무 데서나 불쑥 나타나 악수를 권한다 불쾌하기 그지없다 다만 피하고 싶다

 

오래전 나의 마음을 비켜간 것들 어디 한데 모여 동그랗고 환한 국가를 이루었을 것만 같다 거기서는 산책과 햇볕과 노래와 달빛이 좋은 금실로 맺어져 있을 것이다 모두들 기린에게서 선사받은 우아한 그림자를 지니고 있을 것이다 쉽고 투명한 말로만 대화할 것이다 엄살이 유일한 비극적 상황일 것이다

 

살짝만 눌러도 뻥튀기처럼 파삭 부서질 생의 연약한 하늘 아래 내가 낳아 먹여주고 키워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정말 아무것도 없다 이 불쌍한 사물들은 어찌하다 이름을 얻게 됐는가

 

그렇다면,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이 살아 있음을, 내 귀 언저리를 맴돌며, 웅웅거리며, 끊이지 않는 이 소문을, 도대체,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당신이 아는 사람을 진짜 안다고 생각해?"

안젤리나 졸리가 『솔트』 예고편에서 그렇게 말하는 장면을 봤는데 그걸 강은교 시인의 감상문이 잘 보여주었고, 나는 세 번째 연이 제일 좋았습니다.

 

 

오래전 나의 마음을 비켜간 것들 어디 한데 모여 동그랗고 환한 국가를 이루었을 것만 같다 거기서는 산책과 햇볕과 노래와 달빛이 좋은 금실로 맺어져 있을 것이다 모두들 기린에게서 선사받은 우아한 그림자를 지니고 있을 것이다 쉽고 투명한 말로만 대화할 것이다 엄살이 유일한 비극적 상황일 것이다

    

 

이름, 나의 이름에 관한 4연, 다시 소문에 대한 5연도 좋았습니다.

이 시를 다시 읽으며 2014년을 떠올려보았습니다.

지나가버린 201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