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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심익운(沈翼雲) 「딸을 잃고 처음 강가로 나갔다」

by 답설재 2022. 4. 20.

딸을 잃고 처음 강가로 나갔다

 

 

집의 좌우에

약초밭과 화원이 있어

어딜 가든

따라오지 않은 적이 없었다.

 

마음이 아파도

책은 펼쳐보지 않는다.

책을 말리던 그날

네가 받쳐 들던 모습이 떠올라서다.

 

 

喪兒後 初出湖上 悲悼殊甚 詩以志之

 

 

藥圃花園屋左右(약포화원옥좌우)

閑居何處不從行(한거하처불종행)

傷心未忍開書帙(상심미인개서질)

曬日他時憶爾擎(쇄일타시억이경)

 

 

영조 시대에 천재로 알려진 지산(芝山) 심익운(沈翼雲·1734~?)이 어린 딸을 잃고 썼다. 사는 집의 좌우 양편에는 약초밭도 있고 화원도 있어 한가로이 집에 머물 때면 자주 나가봤다. 그때마다 딸은 꼭 뒤따라 나와 함께 걸었다. 이제는 집에 틀어박혀 있어도 약초밭이고 화원이고 가질 않는다. 그나마 아픈 마음을 잊기에는 책을 읽는 것이 좋을 텐데 그 책도 펼치지 않는다. 햇볕에 책을 말리던 날 제가 도와준다고 날라 오고 받쳐 들고 법석을 떨던 생각이 떠올라서다. 집 안팎 어디에도 딸이 남긴 추억이 서리지 않은 곳이 없다. 자리를 박차고 마포 강가로 나갔다. 딸의 흔적이 없어도 흐르는 눈물 주체할 수 없다.

 

 

안대회 |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2014년 4월 26일 아침,『조선일보』26면 「가슴으로 읽는 한시」에서 이 시와 해설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 아침에 나는 '상실'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없었습니다.

막연히 이 글을 옮겨쓰고 있었습니다.

그 아침이 그립습니다.

그때까지도 나는 천진난만했습니다. 그렇게 '천진난만하게 살아가려고' 애를 쓰며 '살았습니다'.

볼펜 하나, 우산 하나를 잃어버리면 과도하게 아파했습니다.

그게 상실인 줄 알았을 것입니다.

행복이라면 행복이었습니다.

 

나는 그렇게 살아갈 만한 힘을 남겨두지 못했습니다.

어쩌다보니 이렇게 되었습니다.

나를 잃어버리면 그따위 상실도 저절로 무의미한 것이라는 것은 알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