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새내기 퇴직자들을 위하여 (Ⅳ)

by 답설재 2013. 2. 3.

  ♬

 

'새내기……'라고 하니까 대학이나 회사에 갓 들어가서 간편복을 입고 '이런 곳도 있었구나!' 싶은 근사한 연수 시설에서 활기차게 움직이는 젊은이들이 떠오릅니다.

 

한가롭게 해묵은 월간지 『공무원 연금』을 뒤적이다가 '새내기 퇴직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 ─ 후배님들 이것만은 꼭…'이란 기사를 보고 옮긴 단어입니다. '아, 그렇게 부를 수도 있겠구나!'

사실은 '퇴직자'라고 하면 아무래도 서글픈 느낌을 줍니다. 어쩔 수 없지요.

 

 

  ♬

 

월간지 『공무원 연금』을 아십니까? 아마 곧 연락이 올 것입니다. 월 1000원, 연 12,000원인데 정기구독하시겠느냐고.

 

'새내기 퇴직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 ─ 후배님들 이것만은 꼭…'이라는 그 기사는, 퇴직자 9명의 제안을 실은 글입니다. 개요만 소개합니다.1

▷ 신나게 즐길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한다.

▷ 퇴직 후에도 동료와 후배들을 따뜻한 마음으로 대해 주세요.

▷ 현직 때의 직위에 연연하지 말고, 조금 밑지고 살면 여생이 편안해집니다.

▷ 친구 귀한 줄 알아야 합니다.

▷ 아내를 위한 시간을 가지세요.

▷ 선배와 동료들에게 감사의 편지를 보내세요.

▷ 퇴직 후에도 계약직으로 직장생활을 합니다. 월급 얼마 받느냐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 한 가지 운동과 한 가지 취미활동은 꼭!

▷ 세상에서 가장 값진 통장, '봉사통장', 가까운 노인복지관에 가보세요.

 

'그런 걸 어떻게……' 싶습니까? 사실은 저도 그렇습니다. 퇴임한 지 좀 지났는데도 아직 여전합니다.

── 신나게 즐기다니? 뭘 그렇게 즐기나? 나이 들어 퇴임까지 한 마당에 뭐가 그리 신이 나나?

── 퇴직 후에도 동료와 후배들을 만나? 바쁠 텐데 그들이 만나 주겠나? 그것도 체면상 한두 번이겠지…… 만나 줄 만큼 나를 좋하하기는 하나? 어쨌든 아니꼽게 "만나자, 만나자" 할 수는 없겠지……

………………………

………………………

 

생각하면 끝이 없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합니까? 이제 우리에게는 대체로 저런 것 아니면 다른 아무런 카드가 없습니다.

 

 

  ♬

 

저 정도는 시시하고, 저런 것보다 더 크고 멋진 일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다행이고 훌륭합니다.

그렇지만 그렇지 않은 분도 있습니다. 공직에 있는 마지막 날까지 최선을 다하여 책임을 완수한다는 생각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분 중에는 그런 계획이 전혀 없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아직은 아무런 생각이 없습니다. 차차 생각해 보아야지요."

 

그렇다면 사실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계획이 늦기도 하지만, 오는 3월 1일부터 당장 어떻게 하려는지……. 퇴임할 날짜가 한 달도 채 남지 않았으니 그러지 말고 하루라도 빨리 치밀한 계획을 세워야 할 것입니다.

 

 

  ♬

 

저런 것보다 더 현실적인 것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이건 마음가짐에 관한 것입니다. 마음가짐을 단단히 하면 당장 할 일이 없을 경우에도 돌변하는 상황과 그 일상에 당혹감을 느끼거나 답답해하지는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는 3월 1일부터는 전화가 거의 걸려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핸드폰을 옆에 두거나 혹 전원이 꺼졌나 확인하며 만지작거려서 주변 사람이 민망해 하도록 하지 말고, 아예 아주 멀리 놓아두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좀 수다스러운 설명이지만, 전화 한 통 걸어 주지 않는 사람들을 섭섭해 하지 않도록 하기 바랍니다. 하루 이틀, 일 주일 이 주일, 한 달 두 달, 그렇게 기다릴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그들은 늘 바쁘고, 바쁘게 살아가야 하고, 우리는 이제 조용해진 사람일 뿐입니다.

 

다시 말하면, 지금까지는 우리 없이는 아무 일도 이루어질 수 없었을지 모르지만, 일 년 이 년, 그렇게 세월이 흐르면 우리는 가물가물 멀어져 갈 뿐입니다.

 

 

  ♬

 

또 한 가지는 세상은 의외로 조용하다는 것입니다. 그 조용함에 놀라지 마시고, 일부러 혹은 습관적으로 어디 떠들썩한 곳을 찾아나서거나 기웃거릴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다못해 마트나 식당 같은 곳에만 가도 사람들이 많아서 '아, 세상이란 본래 이런 곳이지' 싶어지기도 하지만, 길이 들면 조용한 것이 훨씬 더 좋을 수도 있습니다. 조용한 세상을 조용히 살아가면 그뿐이지, 언제까지 그 조용함을 거부하고 거짓으로라도 분주하고 떠들썩한 곳을 찾아다니겠습니까.

 

세상은 본래 조용한데, 우리가 그동안 분주하게 살아오느라고 그걸 몰랐을 뿐입니다.

 

 

  ♬

 

 

 

 

이 시기의 거리 모습이 을씨년스럽습니까?

퇴임하시고, 3월이 오면, 곧 새 잎이 돋아나고 아름다워질 것입니다.

 

저 나뭇가지에 달려 있는 몇 개의 잎은 지난해의 것입니다. 마른잎입니다. 저 잎들은 떨어져야 하고, 곧 새잎이 돋아날 것입니다. 마음 한켠으로는 저런 상태로라도 좀 오래가면 좋겠지만, 그리하여 퇴임할 날이 더디게 오면 좋을 것 같기도 하지만, 시간의 흐름은 그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정해진 날짜에 3월이 오고, 지금 그 자리에는 다른 사람이 앉아 있게 됩니다.

 

모든 걸 인정하십시오. 미련을 갖지 마십시오.

 

 

  ♬

 

저는 정말 '퇴임'이 어떤 건지 모르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아주 생소한 그 느낌들을 솔직하게 전하고 싶어 이미 세 번의 편지를 보내드렸는데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교장실 비우기-퇴임을 앞둔 교장선생님께 Ⅰ http://blog.daum.net/blueletter01/7637955

적막한 세상-퇴임을 앞둔 교장선생님께 Ⅱ blog.daum.net/blueletter01/7637959

후순위로도 괜찮아야 한다-퇴임을 앞둔 선생님께 Ⅲ http://blog.daum.net/blueletter01/7638139

 

 

 

 

......................................................

 

1.'공무원 연금' 2011년 6월호, 48~49쪽. 기사 개요는 각 제안의 제목이거나 필자가 그 내용을 간추림.

'내가 만난 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섣달 그믐에 생각하는 나의 계사년  (0) 2013.02.09
'오스트리아' 단상(斷想)  (0) 2013.02.05
독일과 일본  (0) 2013.02.01
산 바라보기  (0) 2013.01.30
동해·일본해  (0) 2013.0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