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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오스트리아' 단상(斷想)

by 답설재 2013. 2. 5.

그 식당 콩나물국밥은, 최고입니다. 우선 콩나물이 크지도 작지도 않은데다가 아삭아삭하게 익은 맛이 일품이고, 짜지도 맵지도 않아서 아주 '안성맞춤'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수란이나 김도 좋고, 밑반찬도 그만하면 보통은 됩니다.

 

벽에는 세 가지 식품의 원산지를 이렇게 써붙여 놓았고, 그 옆에는 태극기도 걸려 있습니다.

<식자재 원산지 ── 쌀 : 국내산, 김치(배추) : 국내산, 돼지고기 : 오스트리아>

 

그걸 쳐다볼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합니다.

'정말 오스트리아(AUSTRIA)일까? 혹 오스트레일리아(AUSTRALIA, 호주)가 아닐까? 오스트레일리아인데 오스트리아로 착각한 건 아닐까?'

'그렇지만 오스트리아면 어떻고, 오스트레일리아면 어떨까? 더구나 둘 다 괜찮은 나라니까……'

'게다가 나는 사시사철 콩나물국밥만 먹고, 삼겹살 두루치기 같은 건 아예 시킬 생각도 하지 않으니 이 집 돼지고기와는 관계도 없고……'

 

'그래도 물어보기라도 할까?' 생각한 적도 여러 번이었지만 그때마다 포기했습니다. 얕잡아보는 건 아니지만 서빙을 하는 아주머니가 그 두 나라에 대해 별로 모를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걸 물어 본다면, 저 창문에 '거꾸로 크는 콩나물'이라고 써붙인 건, 도대체 어떻게 키우는 콩나물인지도 물어볼 텐데, 좀 용기가 나지 않는 것도 사실입니다. 서빙하는 그 아주머니가 매우 싹싹하긴 하지만, 어딘지 기계적이어서 파고들 틈이 없어 보이고, 그분이 늘 바쁘기도 하고…………

 

 

 

 

안병영 연세대학교 명예교수(전 교육부총리)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공부한 분입니다. 지금은 강원도 고성에 멋진 집을 짓고 농사를 하며 사시는데, 그분 블로그 <현강재>에는 「추억여행」(2011.8.2)이라는 에세이가 실려 있습니다.

그 글을 통째로 보여주고 싶지만, 체면상 일부만 옮기겠습니다. '추억여행'이란, 부인과 함께, 그 옛날 공부하던 곳, 오스트리아 빈을 찾아가는 멋지고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추억여행

 

 

40년 만에 내가 유학했던 <빈>을 다시 찾았다는 의미에서 이번 유럽여행은 회고적인 의미가 강했다. 20대 후반 찬란한 젊음을 보냈던 그곳을 찾아 옛 추억을 더듬으며 과거의 ‘나’를 되돌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빈>에 도착한 후 첫 번째 한 일이 옛날 내가 살던 곳을 한 곳, 한 곳 되돌아보는 일이었다. 옛터를 다시 찾는다는 생각에 처음부터 가슴이 설렜다.

…(중략)…

어떻게 갈까 궁리하다가 40년 전 내가 다니던 옛길을 그대로 더듬어 보기로 했다. 그간 전차나 버스노선이 다 바뀌었을 터이니, 얼마간 고생을 할 각오를 했다. 우선 <빈>대학 앞에서 전차를 타고 두 정거장을 가서 <폭스가르텐>(Volksgarten) 앞에 내렸다. 거기서 길을 건너면 14구 <휘텔돌프>(Huetteldorf)로 가는 49번 전차 정거장이 있었다. 그곳으로 향하면서 아직도 그 전차노선이 그대로 있을까 무척이나 궁금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건너편 전찻길 옆 표지판에 49번 노선명이 선명하게 새겨 있는 게 아닌가. 무척 반가웠다. 가슴도 뛰었다. 몇 분 후 앞머리에 <휘텔돌프>라는 종점명을 단 49번 전차가 다가왔다. 전차는 40여 년 전 내가 매일 다녔던 그 익숙한 노선을 한 치의 어김도 없이 그대로 따라갔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길거리 모습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마치 내가 40여 년 전 대학에서 오후 세미나를 마치고 집으로 향하고 있다는 착각을 할 정도였다. 40여분 지나 <휘텔돌프> 종점에 내렸다. 여기서 코너를 돌아 한 20m 걸어가면 마을버스 출발점이 나온다. 마을버스 번호가 몇 번이던가. 나는 코너를 돌면서 가까스로 149번 마을버스 번호를 기억해 냈다. 아니, 그런데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정류장에는 149번 버스 표지판이 옛 모습 그대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옆에 노선도와 시간표가 부착되어 있었는데, 가까이 가서 보니 낮 시간에 매 시간 네 번 왕래가 있는 것도 옛날과 다름없었다. 거기에는 <볼풔스베르그> 동네 사람들로 보이는 중년의 아주머니 두서너 명이 버스를 기다리면서 정겹게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정경도 보며, 마치 내가 타임 머쉰을 타고 40여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 넘어 1960년대로 되돌아간 느낌이 들었다.

 

 

 

 

 

 

15분 후 옛집 앞에 내렸다. 작은 2층집이 옛 모습 그대로였고, 집 앞마당 조그만 정원에는 5월의 장미가 아름답게 피어 있었다. 집 앞 작은 성당도 옛 모습 그대로였다. 시계를 보니 <빈>대학 앞에서 출발한 지 1시간 20분이 되었다. 아니. 어쩌면 소요시간도 그때와 똑같을까. 신기하기 짝이 없었다. 마치 내 과거를 완벽하게 재현하기 위해 미리 짜고 설정해 놓은 가상의 상황 속에 내가 들어간 느낌이었다. 40여 년의 세월이 사라진 그곳에, 70대의 노인이 20대 후반의 청년으로 돌아가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후략)…

 

 

나는 교육부에서 근무할 적에 11명의 장관을 만났지만, 그분으로부터는 더러 꾸중도 듣고 "그 담배 좀 끊든지 줄이든지 하라!"는 말씀까지 들었습니다. 심지어 내가 학교로 나갔을 때는 그분도 곧 대학교로 돌아갔는데, 그 학교까지 찾아와 "스스로 맡겠다는 의사표시도 없이 편수 업무를 총괄하는 교육부 간부까지 지냈으니 이제 지금처럼 청빈하게 살아가라. 보기에 참 좋다"는 말씀을 해주기도 했습니다.

 

 

 

 

위 글은 40년간 변하지 않은 거리, 4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은 버스 노선과 번호, 그리고 그때 살던 집에 관한 이야기로, 우리 사회의 역동성과 변화상에 비해 참으로 대조적이어서, 언젠가 한번 이 블로그에 인용해 보고 싶은 글이기도 했지만, 오늘 새삼스레 다시 떠올린 것은, "문제아 취업까지 지원… 오스트리아의 '가상기업'"이라는 신문기사 때문입니다.1

 

'가상기업'(레어벡슈테테;기술직교육원)이란, 교육생들에게 실제 기업과 비슷한 근무 환경 속에서 직업교육을 실시하는 기관으로, 수익 창출이 아닌 순수한 직업교육을 목적으로 하며, 전국적으로 100여 곳에서 연간 4만 명을 훈련시켜 직업교육의 낙오를 막는 패자 부활의 역할을 하는 곳이랍니다.

 

오스트리아의 직업교육(아우스빌둥)은 의무교육(9년) 후 진학 대신 취업을 택한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여 3년간 실시하는데, 1차로 민간기업들이 원하는 지원자들을 선발하고 나면, AMS(오스트리아 실업·취업 문제 담당 기관)가 나서서 교과 성적이나 언어 구사 능력 부족(외국인 2세)으로 탈락한 학생들을 가상기업에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한답니다.

이들에게 지급되는 월급은 민간기업에서 일을 배우는 또래보다 조금 낮은 수준이긴 하지만, 12년차에는 240~280유로(34~40만원), 3년째에는 600유로(85만원)를 AMS로부터 지급받고, 졸업 뒤에는 대부분 기업 인턴직으로 연계되거나 취업·창업을 하게 되며 월급은 세후 1300유로(184만원) 수준이라고 합니다.

 

이 나라는 이와 같이 '사회 안전망' 구실을 하는 레어벡슈테테를 통해 직업교육의 사각지대를 없앤 결과, 저소득층 청년 실업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내에서도 최하위권으로 '직업교육 천국'으로 불리게 되었고, 독일과 북유럽 국가들도 오스트리아식 제도 도입을 검토 중이랍니다.

 

 

 

 

뛰어난 학생을 우선으로 하는(단 한 명이 수십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마치 못난 사람들은 가만 있어도 좋을 것처럼 이야기하는), 우수한 학생을 중심에 두는, 몇몇 학생만 염두에 두는 엘리트 교육만으로는 안정된 사회, 행복한 사회가 이루어질 수 없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곧 유치원에 가게 될, 초등학교에 입학할 우리의 소중한 아이들이, 단 한 명도 소홀한 취급을 받지 않는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되면 좋겠습니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교육강국 아닙니까!

 

어제 신문에는 「우리나라, 가장 혁신적인 국가 2위」라는 기사가 났습니다.2 어떻게 하여 2위인가 봤더니, 우리나라는 특허 활동에서 1위, 국내 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R&D) 투자 5위, 전체 상장 기업 중 첨단 기업의 비율에 따른 첨단 기술 집중도 3위, 인구 100만명당 R&D 연구원 비율 8위, 항공우주·컴퓨터 등 기술 집약적 물품 제조 능력 3위, 고등교육 효율성 4위, 고용인구 및 근무시간당 생산성 32위로, 미국(1위)에 이어 종합 2위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독일 3위, 핀란드 4위, 스웨덴 5위, 일본 6위, 싱가포르 7위, 오스트리아 8위(안병영 교수의 글을 보면, 저렇게 가만히 두는데도 어떻게 8위가 될 수 있지?), 덴마크 9위, 프랑스 10위, 러시아 14위, 영국 18위, 중국 29위라니, 우리나라가 대단한 나라가 된 것은 분명하고, 우리 교육수준이 4위라니 좋긴 하지만, 우리 교육이 어떤 점에서 4위인지 더 자세히 알아보고 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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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선일보, 2013.2.5, A19. '청년실업, 유럽서 해법을 찾다-직업교육 천국 오스트리아'
2. 문화일보, 2013.2.5, 조선일보 2013.5.6 등. 미국 경제 뉴스 통신사 블룸버그가 발표한 ‘가장 혁신적인 50개 국가(50 Most Innovative Countries)’관련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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