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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독일과 일본

by 답설재 2013. 2. 1.

               주한 일본대사관 앞의 위안부 할머니상

 

 

 

"아시다시피 이른바 위안부라는 것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을 상대하던 창녀들입니다. …(중략)… 한국전쟁이나 베트남전쟁 당시 미군 기지 주변에도 창녀촌은 있었지 않습니까. …(중략)… 일본군이 한국 여성을 강제로 성 노예로 삼았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누가 누구에게 한 말일까요?

1999년 캘리포니아 하원의 위안부 문제 관련 결의안 채택, 2007년 연방의회 결의한 채택에 이어 2013년 1월 29일, 뉴욕주 상원에서 결의안을 채택하려 하자, 의원들 앞으로 위와 같은 내용의 이메일이 수백 통씩 전달되었답니다.1

 

극우세력이 하는 일이라지만 이와 같습니다. 극우세력? 제2차 세계대전도 극우세력이 일으켰습니다. 극우세력이 그렇게 하지 일반시민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치부해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나치 독일이 유럽에서 저지른 만행에 대해서는, 그 역사적 사실을 전혀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역사에서 배우기도 했지만, 간간히 관련 기사를 읽기도 하고, 소설이나 영화 같은 작품을 통해서도 끊임없이 배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얼핏 보기에는, 그 행적을 밝혀 내고 단죄하는 일에서, 가령 피해국인 프랑스나 이스라엘보다 전쟁을 일으킨, 그러니까 전범(戰犯)인 독일이 더 적극적이지 않은가 싶습니다.

 

며칠 전에도 그런 기사를 봤습니다.2

프랑스 중서부의 작은 마을 오라두르 쉬르 글란은, 1944년 6월 10일(아, 제가 태어나기 꼭 2년 전이었군요. 그러면 이제 그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는 세상으로 변화했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 아닐까요? 누군가 어느 나라의 정권을 잡아서 또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는 보장을 하기가 어려운 것은 아닐까요?), 어쨌든 그 프랑스 마을은, 나치가 주민 642명을 몰살한 곳이랍니다. 어린이, 부녀자 약 450명을 교회에 가두고 독가스를 뿌린 뒤 불을 질렀고, 남자들은 광장에 모아 기관총으로 사살했는데, 이 비극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겨우 6~7명이었답니다.

이 사건을 일으킨 독일 나치 전범 60여 명은, 1953년 프랑스, 1983년 구(舊) 동독에서 재판을 받고 단죄되었답니다.

 

그런데, 2010년에 이르러, 나치의 범죄를 추적해 온 한 사학자가 옛 동독 비밀경찰 '슈타지(Stasi)'의 문서 속에서, 이 학살 사건과 관련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는 범죄를 부인하여 처벌을 받지 않은 6명의 이름을 발견함으로써 독일 정부는 이 문서를 근거로 그들을 처벌하기 위한 증거 수집에 나섰고, 2011년 12월에는 이들의 주거지를 급습하여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사진과 일기, 편지 등을 증거물로 압수했으나 아직 결정적 증거가 없기 때문에 이번에는 나치 전범 조사국 국장 안드레아스 브레델 검사가 이끄는 조사단이 지난 1월 29일에 프랑스의 그 마을 현장조사에 나섰다는 것입니다.

그들 용의자 6명은 현재 85~86세로 몇 사람은 건강 상태가 아주 나빠서 말도 제대로 못한답니다. 그런데도 독일은 그들을 조사하고 처벌하는데 주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프랑스는 독일이 아무리 그렇게 해준다 하더라도 옛 일을 생각하면 이웃나라를 잘 만났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이웃나라 일본이 하는 꼴을 보면 자꾸 프랑스의 이웃나라 독일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다행인 것은, 저 뉴욕주 상원 의원들이 그런 메일을 수백 통씩 받았으면서도 말하자면 "웃기는 소리!" 라고 일축하고 '만장일치'로 그 결의안을 채택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나라는 백주에 일어난 일을 두고도 걸핏하면 "그게 아니다!" "새로 조사해 봐야 한다"고들 하는데 미국은 걸핏하면 '만장일치'라니, 어느 한쪽은 이상한 게 분명한 것 같기도 하고, 나라마다 사정이 달라서 그런가 싶기도 합니다. 미국에서 저렇게 하고 있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우리는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습니까? 어디 어떤 신문에 어떤 일을 한다는 무슨 기사라도 난 게 있습니까? 우리의 생각은 어떤 것입니까? 도대체 일본 사람들의 주장이 맞습니까, 아니면 뉴욕 주 상원의원들의 그 '만장일치'가 맞는 것입니까?

 

그건 괜찮은 일일 수도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저 일본이 '정의와 평화를 위한 일본 여성들'이라는 웹사이트에 '위안부는 자발적 성매매 여성들'이라는 이메일 샘플과 미국의 주 상원의원 전원의 이메일 주소, 트위트 계정 등을 올려놓고 있으며, "일본군이 한국 여성을 강제로 성 노예로 삼았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고 주장하는 그것입니다.

 

 

 

 

제가 좀 물어보고 싶습니다. 그때, 그 전쟁 때(우리로서는 전쟁도 아니지요, 일본이 나라를 그냥 강제로 빼앗아 지배한 것이죠), 우리는 우리말도 못하고 우리글도 쓰지 못했는데, 공문서란 공문서는 모두 일본 사람들이 만들고 일본어로 만들었는데, 그 증거가 쉽사리 나오겠습니까!

무슨 일이 있었다 한들 자기네 문서이니 자기네가 마음대로 다 처리할 수 있었을 것 아닙니까! 우리에겐 유리하고 자기네에겐 불리한 무슨 문서가 남아 있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에 갇혀 있던 불쌍한 사람을 보고 "넌 왜 증거도 없나?" 하면 무슨 말을 해야 합니까?

아니, 저 위안부 할머니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분들에게 좀 물어봅시다. 그분들이 "그래요, 우리는 자발적으로 몸을 팔았어요." 하고 대답하는지…… 나중에 딴소리 하지 말고, 이제 60여 명만 남은 저 할머니들이 다 돌아가시기 전에 직접 좀 물어봅시다. 에이, 한심한 사람들!

 

 

 

이게 그래 자발적으로 몸을 파는 사람들의 모습입니까?

그렇게 보입니까?

 

 

 

 

지난해 9월 26일에 광화문에서 만난 위안부 할머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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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선일보, 2013.1.31.A2, 일본, 끈질긴 자기 과거 부정-'위안부, 자발적 성매매' 스팸메일.
2. 조선일보, 2013.1.31. A2. '독일, 집요한 자기 과거 추적-70년 전 대학살 나치정범 재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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