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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멋있게 늙어가는 약 좀 주세요!

by 답설재 2013. 2. 12.

상봉역에서 춘천행 열차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시각에 급행열차(ITX '청춘')가 통과하게 되면, 일반열차는 그 급행열차가 지나간 후에 출발시각에 맞추어 느릿느릿 들어오게 되고, 그러면 대충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1960년대에 시외버스를 탈 때처럼 서둘러 '우루루' 몰려 들어갑니다.

 

노인들은 대체로 전동차 전후방의 경로석에 탈 준비를 하지만, 그곳이라고 해서 노인들만 서 있는 것은 아닙니다. 경로석 저 쪽은 일반석이니까 자연히 젊은이들도 함께 줄을 설 수밖에 없습니다.

 

 

 

 

어느 출입구에서나 줄은 두 줄로 서는 게 원칙인데, 더러 어깃장을 놓는 노인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 날도 한 노인이 두 줄의 사이에 어중간하게 버티고 서서 주위의 눈총을 받으면서도 버젓한 척 혹은 '나몰라라!' 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사람을 보면 못마땅해도 웬만하면 모른 척합니다.

 

그런 장면을 보면 모든 사람이 초등학교에서 배운 『바른생활』 교과서의 내용을 그대로 실천하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아니, 그런 사람은 자신이 초등학교를 다닐 땐 『바른생활』이라는 교과서가 없었다고 변명할지도 모르지만, 그냥 바라보기만 하는 축에 드는 사람들은 대부분 괜히 간섭을 했다가 무슨 경을 칠지도 모르기 때문에 차라리 모른 척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날은 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매사에 분명할 것으로 보이는 한 젊은 여성이 나서서 그 노인을 타이르게 된 것입니다.

"저, 어르신, 그 곳은 줄 서는 데가 아닙니다."

"왜요? 줄은 본래 두 줄로 서는 것 아닌가요?"

"그러니까 지금 두 줄로 섰는데, 어르신이 줄을 잘못 서신 겁니다."

"아니, 내가 왜 잘못 섰다고 해요? 한 곳에 두 줄씩 넉 줄로 서면 되는 건데! 돌아다녀 봐요! 어떤 데는 그림도 그렇게 그려져 있어요!"

잠시 옥신각신했는데도 어느새 노인과 젊은 여성은 피차 마음이 상했고, 한 마디씩 주고받을 때마다 감정이 고조되어 갔습니다. 아니, 그 노인은 시종일관 뻔뻔했다고 해야 옳을 것입니다.

"그곳에 서시면 내리는 사람들 때문에 위험하니까 양쪽으로 두 줄만 서는 거예요!"

"이곳은 출발역(始發驛)이니까 내리는 사람도 없잖아요! 간섭하지 말아요. 나는 내대로 줄을 섰으니까!"

"알았습니다! 맘대로 하세요!"

 

 

 

 

노인들의 입장에서는 그날따라 난처한 일이 거듭되었습니다. 줄 저 뒤에서 어느 노인은 벌써 식사를 했는지 어쨌는지 약 10초마다 한 번씩 트림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허! 그르르륵~"

"어허! 그르르륵~"

그것조차 무슨 자랑삼아 아주 큰 소리를 내며 하는 트림이어서 열차를 기다리는 온 사람의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으니 그 노인 가까이 서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곤혹스러웠겠습니까.

 

이런 상황을 지켜보자니까 저절로 '노인암살단' 생각이 났습니다. 곧 노인암살단이 생길 것이라는 어느 학자의 견해가 신문에 보도된 적이 있지 않습니까?

 

 

 

 

오늘 한 신문에는 '지하철에서 장년과 청년이 충돌하는 의학적 이유'라는 제목의 칼럼이 실렸습니다(김철중의 생로병사 '지하철에서 장년과 청년이 충돌하는 의학적 이유' : 조선일보, 2013.2.12, A29).

다음은 노인의 특징에 관한 부분을 눈에 띄는 대로 옮긴 것입니다.

 

─ 목소리에 탄력이 떨어진 고령의 성대는 양쪽 아귀가 딱 맞게 마찰하지 못해서 다소 허스키하고 쉰 목소리가 난다.

 

─ 노년이 되면 성대의 움직임을 부드럽게 하는 윤활액의 분비가 감소하여 성대의 유연성이 떨어지고, 그 결과 목소리가 경직되고 높낮이 조절이 쉽지 않다. 그런 목소리는 자칫 권위적이고 꼬장꼬장하게 들릴 수 있으며, 조금만 오래 들어도 지루하게 느껴진다.

 

─ 청력이 감소하면 자신의 목소리가 작다고 느껴져 목청을 높이게 된다. 이로 인해 평소의 말투가 자칫 야단치는 것처럼 들린다.

 

─ 표정의 디테일 감소로 괜스레 무뚝뚝한 인물로 비칠 수 있다.

 

─ 시력이 저하할 뿐만 아니라 노년의 시각(視覺)은 화려한 색에 불안감을 느낀다. 무채색에 안정감을 느끼니까 회색과 검은색 옷만 선호하게 된다.

 

─ 근육의 지구력이 떨어져 오래 서 있기 힘들어진다. 팔과 손 근육 움직임의 조화로움도 무뎌져 무언가를 쉽게 떨어뜨리고 흘리게 된다. 옷에 음식물이 묻어 냄새가 배곤 한다. 침샘의 노화로 타액의 분비도 줄어 웬만큼 깔끔하지 않으면 입에서 냄새가 나기도 한다.

 

이쯤 되면 노인에겐 어느 것 하나 그럴 듯한 것이 남아 있지 않게 됩니다. 참 서글퍼집니다. 칼럼을 쓴 이는, 장년과 청년 세대가 서로 불편하고 탐탁지 않아 하는 것들을 의학적 시각으로 보면 당연하고 어쩔 수 없는 것들이 많다고 하면서, 아래 세대는 위 세대의 몸을 이해하고, 위 세대는 아래 세대의 정신을 이해하는 '교집합'이 커진다면 그 갈등이 줄어들 것이라고 했습니다.

 

 

 

 

"서로 간에 이해의 폭을 넓혀서 불필요한 세대 갈등을 없애는데 노력해야 한다."

그건 당연한 논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가 갈수록 그런 갈등은 점점 심화되어 가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무슨 좋은 수가 없겠습니까? 가령 멋있게 늙어가는 방법 같은 것. 그런 생각을 써놓은 책이야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책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그런 책이 없어서 이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건 아니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주 간단하고 누구나 써먹을 수 있는 방법, 그 효과가 확실한 방법, 가령 하루에 한 알씩 먹으면 멋있게 나이들 수 있는 것, 혹은 그런 방법도 있을 것입니다. 왜 있지 않습니까? 특히 우리나라에서 선풍을 일으키고 있는 보톡스 주사나 성형수술 같은 방법 말입니다.

"이 주사를 한 달에 한 번씩 맞으면 생각이 젊은이와 같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소화기관도 젊음을 유지해서 쓸데없는 트림 같은 건 절대적으로 예방할 수 있습니다!"

…………

 

 

 

 

그러나 그 따위는 다 쓸데없는 생각이겠지요. 그런 약품이나 수술 방법 같은 게 나오게 되면, 우선 '교육'이 다 필요 없는 일이 될 것입니다. 어쩌면 교육이란 사람들에게 사람으로서의 품위를 유지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일인지도 모르니까요.

그렇다면 나는 지금 어떤 교육을 더 받아야 하나? 그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어디 그런 교육을 해주는 특별한 곳이 없다면, 나 혼자서라도 그것을 생각하고 궁리하고 싶습니다.

"생각하고 궁리해봐야 오십 보 백 보"입니까? 어차피 망령이 들어 죽게 됩니까?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단 하루라도 더 늦게 누추해지는 길을 찾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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