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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바다 추억

by 답설재 2013. 2. 19.

 

 

 

한겨울 아침나절의 해운대는 조용하고, 창 너머로는 따스하고 아늑했습니다. 가울가물하게 내려다보이는 백사장에서 부부인 듯한 두 사람이 사진을 찍으려고 아이를 얼르고 있었습니다.

 

 

 

독도에 올라가서 내려다본 그 푸르른 흐름에서는 '힘'을 느꼈습니다. 무슨 낭만적인 것보다는 일본과의 관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고, '우리가 이래서는 안 되겠구나!' 싶었습니다.

나는 그때, 편수관을 지내며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에 '독도 의용수비대' 이야기를 실은 일에 대해 무한한 자부심을 느꼈고, '저승에 있는 독도의용수비대 홍순칠 대장을 만난다 해도 고개를 들고 인사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좀 건방진 생각도 했습니다. 그 독도의 풀 한 포기, 돌 한 조각도 소중하다는 느낌을 가지며 오르내린 것은 좋았지만, 이 나라 사람들이 언젠가 내 업적을 알아줄 것이라는 허무맹랑한 생각도 했습니다.

1999년 가을이었습니다.

 

 

 

바다를 보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 적도 있습니다. 그것은 1966년의 일입니다.

그해에 나는 대학입시에 실패했고, 집에서 쫓겨났습니다. 아버지는 그렇게 해야 내가 '인간이 될 것'이라고 여겼을 것이 분명하고, 눈물만 흘리며 남편이 하는 일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을 어머니는 애간장이 무너졌을 것입니다.

 

그 봄에 서울로 올라온 나는, 요샛말로 아르바이트를 하는 집의 주인을 따라 대천으로 내려갔습니다. 바다를 바라보면 그 물결 위로 봄이 무르익어 곧 여름이 올 기세였습니다.

우리는 관광호텔 1층 가게에 물건을 진열해 놓고, 해수욕을 하러 내려올 서울 사람들을 기다렸습니다.

 

 

 

대학입시에 실패한 것은, 책 때문이었습니다. 수많은 날들에, 교과서와 문제집을 봐야 할 그 시간에, 소설을 열심히 읽었습니다. 시내에 나가면 몇 군데 '대본서점'이 있었고, 아무리 열심히 읽어도 그 서점들의 책을 다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소설 따위나 읽는, 그 못된 '버르장머리'를, 나는 지금도 고치지 못했습니다. 아예 이대로 죽을 작정을 하고 말았습니다. 이제와서 고쳐 봤자 잘 한다고 할 사람도 없거니와 쓸모도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걸핏하면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고 하는데, 책이 무슨 사람을 만든다는 것인지, 책이 사람을 어떻게 만들어 준다는 것인지 나로서는 도무지 그 뜻을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말도 자주 합니다. 오늘 받은 이메일에도 그런 내용이 들어 있었습니다.1

 

<4. 시간을 정해 놓고 책을 읽으십시오.>

책 속에 길이 있습니다.

길이 없다고 헤매는 사람의 공통점은 책을 읽지 않는 데 있습니다.

지혜가 가득한 책을 소화시키십시오.

하루에 30분씩 독서 시간을 만들어 보십시오.

바쁜 사람이라 해도 30분 시간을 내는 것은 힘든 일이 아닙니다.

학교에서는 점수를 더 받기 위해 공부하지만

사회에서는 살아 남기 위해 책을 읽어야 합니다.

 

개뿔! 책 속에 길이 있다? 어디로 가는 어떤 길이 있다는 것입니까? 나의 사례로써는 그건 참 허무맹랑한 소리입니다. 나는 책에서 길을 찾지 못했습니다. 아예 그런 길을 찾으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지만, 찾는다고 해봐야 찾을 수도 없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학문의 길에 뜻을 두고 한 가지 일에 매진하는 사람들은, 혹 책에서 길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합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설명해야 마땅할 것이지만, 거의 아무도 그렇게 이야기하지는 않습니다.

"절대로 아무 책이나 마구 읽지 마라! 큰일난다! 한 가지 학문을 정해서 아주 뿌리를 빼야 하느니라!"

 

나로서는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람을 볼 수 없었습니다. 나 자신도 책을 그렇게 조심스럽게 대하지는 않았고, 그저 재미삼아, 아니 재미가 좋아서, 어느 책이 기가 막히게 재미있을까, 더욱 더 재미있을까 싶어서 이 책 저 책 헤매고 다니다 보니까 오늘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곳 충청남도2 대천에서, 아직 관광객이 몰려오지는 않고 한가하기만 했던 그 봄날에는, 틈만 나면 해변으로 나갔습니다. 혼자서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았고, 더러 눈물을 흘렸습니다.

'내가 지금 여기 와 있구나…….'

'이 너른 세상에, 내가 있을 곳이 드디어 여기로 정해졌다니……'

 

그러면 가슴이 벌어질 것 같았습니다. 가슴의 뼈들이 부서질 것처럼 견디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렇게 해서 살아왔으면서도 나는 지금 이렇습니다. 아내의 말에 의하면 더 정신을 차렸어야 했습니다. 그러면 정말로 무엇이 되어도 되었을 것 아닙니까.

 

충무에서 태어난 진주 유씨 유치환 시인은 이런 시를 지었습니다.

 

 

바 다

 

이것 뿐이로다.

억만 년 가도

종시 내 가슴 이것 뿐이로다.

온갖을 내던지고

내 여기에 펄치고 나누웠노니,

오라 어서 너 오라.

밤낮으로 설레어 스스로도 가눌 길 없는

이 서른 몸부림의 노래소리가 들리지 않느냐.

오직 높았다 낮았다 눌어 덮은

태초 생겨날 적 그대로의 한 장 非情의 하늘 아래

救할 길 없는 절망과 회오와 슬픔과 노염에

찧고 딩굴고 부르짖어 못내 사는 나.

때로는 스스로 달래어

무한한 溫柔의 기름되어 창망히 잦아누운 나.

아아 내 안엔

낮과 밤이 으르대고 함께 사노라.

오묘한 오묘한 사랑도 있노라.

삽시에 하늘을 무찌르는 죽음의 咆哮도 있노라.

아아 어느 아슬한 하늘 아랜

萬年을 다물은 채 움찍 않고

그대로 宇宙되어 우주를 우르러 선 山嶽이 있다거니.

오라 어서 너 오라.

어서 와 그 山嶽처럼 날 달래어 일깨우라.

아아 너 오기 전엔

나는 영원한 狂亂의 不死神.

여기 내 가슴 있을 뿐이로다.

 

民音社(1974) ㉑ 靑馬詩選 54~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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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 메일을 보낸 분이 만든 자료는 아니고, 거기에 출처가 밝혀져 있는 것도 아니어서 '출처 미상'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생 십계명'이라는 제목의 네 번째 내용입니다.
2. 교육전문직(장학사·교육연구사) 선발 시험문제 유출 사건과 관련해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지난 15일과 18일 두 차례에 걸쳐 경찰조사를 받은, 충청남도 김종성 교육감이 오늘 낮에 관사에서 음독을 한 채 쓰러져 있는 것을 외출했다가 귀가한 부인이 발견하여 신고했는데, 구급대원에 의해 가톨릭대학교 대전성모병원으로 옮겨져 응급치료를 받고 있으며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한다.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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