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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섣달 그믐에 생각하는 나의 계사년

by 답설재 2013. 2. 9.

내일, 2월 10일 설날부터 계사년 한 해 동안 태어나는 아이가 뱀띠입니다. 그런데도 2013년 달력을 걸어놓고 지난 1월 1일부터 "계사년" "뱀띠" 어쩌고 한 건 아무래도 잘못일 것입니다.

까짓 거 내가 손해 볼 것 없으니까 그러거나 말거나이긴 합니다. 뱀장어띠라고 우기거나 악어, 심지어 도롱뇽띠라고 주장한다고 해서 경찰에 알리거나 병원에 데리고 갈 일도 아니긴 합니다.

 

이 얘기는 순전히 개인적인 다짐이니까 다른 사람에게는 대충 그런 의미 정도입니다.

 

 

 

 

계사년에는 좀 헐렁하게 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치열하게 살았다고 하면 아무래도 주제넘겠지만, 나름대로 팍팍하게 살아왔습니다. 퇴직을 하고도 마음의 흔적을 다 지우지 못해 흡사 언젠가 어디로──말하자면 직장생활을 하며 살아가던 그곳으로──되돌아갈 사람처럼 굴기도 했습니다. 좀 늦게 일어나는 아침에는 웬지 불안해하고 초조해하기도 했고, 그러나 아무런 일이 없는 걸 확인하면서 뭔가 허전하기도 했습니다.

이건 스스로 토로하기가 난처하기까지 한 일이지만, 특히 우리 교육이 제 갈 길을 찾지 못하는 사례가 보이면 비분강개는 아니지만 어쨌든 못마땅해서 한숨을 내쉬기도 했습니다. 그게 건강에 좋지 않을 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럴 때마다 아내는 표정을 살피며 "끈을 놓아버리라"거나 "마음을 곱게 써라"는 부탁을 자주 했습니다. 처음에는 그게 오히려 섭섭했습니다. '병원 신세도 질 만큼 졌으니, 그 꼴을 더 연출하지 말고, 이제 모든 걸 포기하고 죽으라는 뜻인가?'

 

그러나 그런 부탁을 되풀이하여 들어보니까 그게 아니란 걸 알 수 있었습니다. 건강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해도 그렇습니다. 지금 와서 이 처지에 아등바등할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신문·방송에서, 거리에서, 눈살 찌푸릴 일을 찾는다고 해서 무슨 수가 날 것도 아니지 않겠습니까?

공연히 성질부리다가 지나가는 사람, 곁에 있는 사람, 이것도 사람이라고 찾아오는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이나 받고, 자칫하면 또 병원 신세나 질 것은 뻔한 일 아니겠습니까?

놓아주고 던져 버려야 할 것입니다. 나 자신을 자유롭게 해주어야 할 것입니다.

 

 

 

 

다음으로, 새로운 길을 함께 가자는 권유는 철저히 경계하고 싶습니다. 이건 오래 전부터 다짐해온 일이기도 하고, 남들은 이해하기 어려울지 몰라도 저로서는 아주 최우선으로 다짐하여 아이들 같으면 책상머리에 크게 써 붙이고 싶을 지경입니다.

 

어떤 사람이 그렇게 다가오는지 사례를 들기는 난처합니다. 그러므로 가벼운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이 블로그에 가브리엘 루아의 「삼리윙, 그대 이제 어디로 가려는가?」라는 작품 이야기를 써 놓고 싶어서 그 작품이 실린 책을 새로 찾아서 읽었습니다. 읽을 책은 자꾸 쌓이고, 책을 들기만 하면 눈이 닫히려고 해서 진도는 잘 나가지 않고, 그런 식으로 세월만 가는 것 같은 느낌이 몰려오면 저절로 초조해지고 자신이 한심해집니다. 그런데다가 누가 시킨 일은 아니지만, 읽은 책을 또 읽으려고 하는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전철을 타고 가며 그 책을 읽는데 옆에 앉은 '또래(칠십이 가까워 보이는)'가 '넌 아직 책을 읽니? 신기하구나' 하는 표정이더니, 상체를 한껏 굽혀 기어이 그 책의 표지를 보려고 합니다. 이런 사람을 만나면 짜증이 나려고 합니다. 제 앞으로 머리를 들이미는 그 사람이 하는 꼴을 보며 읽고 있는 내용이 머리에 남을 리가 없어서 그만 책을 덮었습니다. 그랬더니 그가 '정식'으로 물어 옵니다.

"제목이 세상 끝의 뭡니까?"

"정원(庭園)요……. 세상 끝의 정원."

"책이 좋습니까?"

 

'하, 이거야 원……' 마침 내릴 역이 가까워졌으니까 짤막하게나마 제대로 답해 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책보다 더 좋은 게 어디 있습니까?"

"아니, 그 책이 좋은 책인가 싶어서요."

 

 

 

 

뭐라고 대답하면 적절하겠습니까?

"아니, 그럼 자신이 읽고 있으면서도 '이건 나쁜 책입니다' 할 수도 있단 말입니까?" 그렇게 되물을 수는 없겠지요.

그렇다고 "그저 그렇습니다." 하고 시큰둥한 것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좋은 책"이라고 해야 마땅한데, 그 표현을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난감합니다. 『세상 끝의 정원』, 가브리엘 루아의 이 작품은 줄거리가 '삼국지'나 '수호지'처럼 흥미진진한 건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 작품의 어떤 면을 이야기해야 좋을지, 척 보기에 '삼국지' '수호지' 같은 이야기를 좋아할 듯한 그 사람에게……

아니, 칠십이 낼모레인 노인이 아니어도, 말하자면 캐나다의 전직 교사인 가브리엘 루아의 다른 작품 『내 생애의 아이들』을 감명 깊게 읽었을 젊은 여성, 혹은 아름다운 여 교사가 그렇게 물었다 하더라도 나는 고개를 돌리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 까닭을 털어 놓고 말하면, 저는 이제는 크건 작건 길건 짧건 어느 누구와 <새로 시작하기>는 싫은 것입니다. 어느 정도 싫은가 하면, 그렇게 다가오는 사람에게는 "제발 나 좀 이대로 내버려 두라!"고 외치고 싶을 정도입니다. 무슨 진지한 이야기상대로 삼지 않아 주기를 간곡히 부탁하고 싶은 것입니다.

 

나는 지금 혼자서도 매우 분주하기 때문입니다. 무언가 하고 싶은 얘기를 구상하고, 구상한 것을 정리하고, 직접적으로는 이 블로그를 찾아오는 독자들(대부분 무심히 흐르는 저 강물처럼 만나고 헤어지고 하는 사람들이지만, 그러나 살아간다는 것이 대부분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만나고 헤어지고……), 그 독자들의 생각을 읽어보고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고, 그렇게 지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서 노닥거리고 앉아 있을 겨를이 없으며, 때로는 길게 설명해야 하거나 서로의 견해를 피력해야 하거나 그걸 들어야 하고, 갑론을박하고, 그렇게 지낼 하등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무슨 책을 보고 있느냐?" "그 책은 좋은 책이냐?"고 묻는 그 사람에게 제대로 대답해 주려면, 내가 그런 책을 읽고 싶어 하는 사람이 된 사연, 그러므로 내가 태어나고 살아온 내력을 이야기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는 내가 그런 책을 읽고, 몇 년 후에 다시 그 책을 꺼내 읽게 된 이유를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좀 과격하게 정리하겠습니다. 나는 이제 스스로 나서서 더 이상의 인연을 맺고 싶지가 않습니다. 나는 분명히 그 책임을 질 수가 없는 상황에 놓인 것입니다. 다가오려는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거기 서서 이야기하십시오. 더 다가오지는 마십시오."

 

 

 

 

유사한 다짐이고 벌써부터 염두에 두고 있었지만, '물건을 모으지 말자!'는 다짐도 합니다. 다 부질없는 일이라고 하면 심하겠지만, 지금 가진 물건만으로도 웬만하면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도 그렇지만 물건도 사람을 못살게 하거나 귀찮게 하거나 최소한 신경 쓰이게 하는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을 골똘히 합니다.

 

그럼 책은? 글쎄요, 책도 문제이긴 합니다. 책은, 많이 모았다가 버린 적도 있지만 그렇게 하고서도 그 이튿날부터 또 사들이고는 있습니다. 어떻게 하느냐 하면, 자꾸 서점에 가고 싶어서, 사고 싶은 책을 한꺼번에 사지 않고, 그저 들고 오기 좋을 정도로 한두 권씩만 사다 나릅니다.

결국은 읽지도 않은 채 남겨 놓고 가는 책이 많으면 "저런 욕심꾸러기!" 소리나 듣게 될 것이므로 자제하긴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럼 돈은?

돈! 끝까지 돈이 말썽이군요. 돈…………

이건 책보다는 단순한 문제이긴 하지만, 돈을 좀 모으느냐 마느냐의 결정은 그리 수월하지 않습니다.

"연금이 나오니까 더 이상의 돈은 필요 없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그렇게 '선언'하면, 아내는 통탄할 것이 분명합니다. "아, 내가 이런 녀석과 평생을 함께했다니!"

섭섭한 수준을 넘어 어쩌면 인간 취급을 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돈에 관해서는 말하기조차 싫은 사연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내는 돈을 모아서 지금이라도 무슨 사업을 하려는 것인가 하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평생 아껴 썼고, 있는 돈은 요긴하게 썼습니다. 우리는 정말로 누가 알면 부끄러울 정도로 헤어진 속옷을 입고 지냈습니다. 그렇게 살면서 바로 그 돈 때문에 너무나 섭섭한, 그 생각을 하게 되면 지금도 '돌아버릴 것 같은' 일을 당해서 다시는 말도 하기 싫은 세월을 가슴에 묻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젠 그만입니다. 어디 봉급 받고 다닐 직장생활을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참한 가게를 하나 내기도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로또가 한 번 당첨되는 일이 벌어진다면 참 좋겠습니다. 그러면 돈에 환장해서 눈에 뵈는 게 없는 것들을 아주 공개적으로 불러다 놓고 몇 억씩 던져주며(몇 억이면 사과 궤짝 수준이어서 던져 줄 수는 없을까요? 그럼 수표를 끊으면 던져 줄 수 있겠군요. 어쨌든 던져 주고 싶은데……), 그렇게 던져 주며 "이제 정신 좀 차리고 제발 인간답게 살아라!" 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아내가 나보다 더 속 시원해 할 것입니다.

 

 

 

 

아침에 약을 잊지 않고 먹어서 저기쯤 가다가 되돌아오는 일이 없게 하겠다든가, 사람들에게 먼저 인사하고 너그럽게 대하기, 특히 이 아파트의 아이들에게는 끝까지 교장이었던 표를 내지 않으면서도 세상에서 최고로 인자한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대하겠다든가, 나를 찾아오는 사람에게는 밥을 잘 사고, 밥 때가 아니면 간단한 물건이라도 손에 쥐어주며 살겠다든가, 아내의 말을 더 잘 듣고 부탁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실천하겠다든가, 뭐 그런 이야기는 이곳에 쓰지 않겠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대충 적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래서 꼭 이야기하고 싶은, 그러나 좀 거창해서 망설여지는 것 한 가지를 용기를 내어 덧붙이겠습니다. 뭔가 하면, ………… 우리가 좀 안정된 나라에서 살게 되면 좋겠습니다. 어설픈 표현을 할 수밖에 없는 자신이 안타깝긴 하지만, 광복 이듬해에 태어나 6.25 전쟁부터 오늘의 남북한 상황까지를 지켜보며, 만약 내가 이 상황 속에서 이대로 죽게 된다면 태어났을 때보다 하나도 더 나아진 게 없는 것이 바로 남북한 문제가 아닌가 싶은 것입니다. 내가 만약 보수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으로 분류되어야 한다면, 아마도 다른 문제 때문이 아니라 바로 이 생각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다른 문제를 가지고는 '보수'로 분류되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기 때문입니다.

 

남북한 문제도 진보적인 생각으로 해결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분명한 증거나 논리가 있다면 나는 지금 당장이라도, 단연코 그 방향을 지지할 것입니다. 어쨌든 우리의 이 남북한 관계는 개선되어야 할 것이 분명하고, 지금 같은 상황은 참으로 안타깝다고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바로 올해! 이 문제가 개선되는 길이 보이기를 갈구합니다.

 

아! 나에게나 이 나라에나 운수 좋은 계사년이기를 기원합니다.

 

 

 

고교생 L양이 그려보낸 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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