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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지옥은 없다!

by 답설재 2013. 3. 1.

# 1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김모(67·여)씨는 지난 4월 자신이 다니던 교회의 목사로부터 솔깃한 투자 제의를 받았다. “온라인 1인 기업을 차려놓고 사이트에 접속해 틈틈이 클릭만 하면 보름 뒤부터 매일 3000원씩 수당이 들어온다”는 내용이었다. 목사는 또 “투자비 33만원만 내면 기업 창업은 전문가가 도와준다”고 안심시켰다.

…(중략)…

이 목사의 경우 매월 6억원을 수당으로 지급받아 외제차를 굴리고 서울 강남에서 월세 380만원의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다고 경찰은 전했다. 또 일부 목사는 매달 수천만원씩 수당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수당은 후순위자의 돈을 받아 선순위자에게 지급하는 일종의 ‘돌려막기’ 방식으로 지급했다.1

 

 

# 2 『코란』을 읽다가 마주친 한 구절. "이교도들은 신의 벌을 받고 회한으로 탄식할 것이다. 그들은 결코 지옥의 불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다." 끔찍하기도 하다. 회교만이 아니라 신의 징벌을 내세우면서 협박을 일삼는 일신교는 하루빨리 없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절실하다. 그러자 이런 말이 부지중에 입에서 새어 나온다. "불교가 제일 건전하구나. 중놈들만 정신 차린다면 더 좋겠지만!"(2002)2

 

 

# 3 아직도 현학자들이 연옥을 거론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지옥과 유사한 면모를 많이 상실하고 '천국의 입구'의 성격이 강화된 신비적 이미지로 변모했다. 이는 두려움을 덜 일으키지만, 그 대신 더 멀고 더 추상적이 되었다. 연옥 자체가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연옥만이 아니라 이제는 지옥도 예전만큼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듯하다. 목사와 신부들의 설교 주제에서 지옥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우리의 죽음을 인도하던 틀이 많이 깨졌다. 소위 '죽음의 죽음mort de la mort'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어찌 보면 우리는 이제 치졸한 협박에서 벗어나 맘 편하게 죽게 되었고, 또 어찌 보면 예전처럼 희망을 품고 우아하게 죽기도 힘들어졌다.3

 

 

# 4

 

천국과 지옥은 사제들이 만들어놓은 허구이고, 결국 그들이 장사해먹기 위해 만든 방편이다. 지옥 같은 게 있다면 바로 여기에 있어서 잘못한 놈들이 지금 여기에서 벌을 받아야 마땅하다. 그런 모호한 천국보다는 '우리가 이루어내야 할 세상'인 농촌 유토피아 같은 구상이 훨씬 더 중요하다.4

 

 

 

 

 

 

같잖은 생각만 하고 있으니까 주로 이런 글들이 눈에 띄는 것인지 모르겠다. 다만 인용 의도는 허접해도 원전은 결코 허접하지 않다.

 

나이들어 가면서 어릴 때처럼 다시 지옥을 더러 생각하게 되고, 솔직하게 말하면 '천국 갈 사람들은 좋겠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러다가 무서워지거나 걱정이 될 때는 가령 새치기를 해서 득을 보듯, 누구에게 부탁해서 어려움을 면하듯, 될 대로 되라 싶어 그냥 두었다가 저절로 해결되는 일을 보듯, 생각도 않은 횡재를 하듯, 어떻게 최소한 연옥쯤에 떨어지는 행운을 만날 수는 없을까,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기도 한다.

 

 

 

그러다가 또 다른 생각을 할 때도 있다. 종교인들의 몹쓸 짓거리들은 지옥은커녕 천국 같은 것도 없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증거가 된다는 생각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들이 나서서 그런 못된 짓, 나쁜 짓을 할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러면서 그가 나처럼 이렇게 치졸한 사례를 들어 설명한 것은 아니지만, 자살에 관해 깊이 생각한 어느 철학자가 천국이니 뭐니 하는 것은, 단 한 사람도 다시 돌아와 "내가 가보니까 정말!이라고 한 적 없는, 말하자면 영혼의 실체에 대한 속임수라며 아주 논리정연하여 나 같은 주제로는 도저히 반박할 수 없는 명쾌한 설명을 한 것도, 사실은 이와 같은 생각 아니었을까 건방진 상상까지 해보는 것이다.

 

 

 

이미 같잖은 생각을 좀 털어 놓았으니까 나머지 것까지!

이런 단상(斷想)이다. 굳이 '단상'이라고 하는 것은, 늘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고, 용렬스러운 마음이 들 때 그렇다는 뜻이다.

 

── "Says heaven is good but refused to go."라는 말이 바로 저 사례를 이야기하는 것 아닌가. 지옥도 천국도 없으니까, 그걸 제일 잘 아는 자들이 천국을 얘기하면서 정작 본인들은 가기를 싫어하는 것 아닌가. 그러니까 나쁜 짓을 더 적극적으로 하는 것 아닌가.

물론 말은 되지 않는다. 그들도 언젠가는 그 지옥에 갈 수밖에 없을 테니까. 그렇지만 그들이, 그들이 하는 짓들이, 천국과 지옥의 존재에 대한 가장 확실한 증거일 것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 전쟁이나 편 갈라서 다투기, 부의 축적이라면 몰라도, 착하게만 살겠다면, '굳이' 천국이나 천당 같은 곳에 볼일이 없는 사람이라면, '굳이' 교회나 절에 갈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 가령 평생 음악을 즐겨 들으면 어떨까. 그런 사람들 중에는 얼마든지 착한 사람이 있다. 음악을 들으면 이렇게 엉뚱한 생각이나 하면서도 흔히 '착하게 살아야지!' 싶을 때가 있지 않은가. 어떤 사람에게는 음악이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더구나 음악 때문에 전쟁이 일어났다는 사례도 없지 않은가. 게다가 음악은 무섭지도 않다.

── 자신들은 나쁜 짓을 일삼으면서 남에게는 왜 쓸데없는, 자신이 왜곡한 해설을 들어 보라고 하나.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종교인의 한 사람인 어느 목사가 150억 배임혐의를 받고 있다는 기사를 보고5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았다.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이 어떻게 자꾸 논란에 휩싸이는가. 사실은, 그런 논란이, 언젠가 무한한 존경을 받게 되는, 말하자면 순교 직전의 박해와 같은 것인가?

 

 

 

이런 생각을 하는 다른 이유도 있다.

 

“기쁨에 넘치고 찬란히 빛나는 순간도 있었지만 거친 파도와 바람에 직면하는 순간도 있었다. 그럴 때면 신께서 지금 주무시는 게 아닌가 싶었다.”

 

가톨릭 역사상 598년 만에 처음으로 자진 퇴위하는 교황 베네딕토 16세(85세)가 퇴위를 하루 앞둔 2월 27일 마지막 일반 알현에서 아동 성추행, 교황청 내 권력 다툼, 금융비리, 교황 개인문서 유출 등으로 얼룩졌던 지난 8년의 재위기간에 대해 이와 같은 인간적인 소회를 나타냈다는 것이다.6

교황의 그 말씀 한 마디는, 차라리 신의 유무, 신앙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없을 만큼의 감동을 준다. 그리하여 자신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해도, 그 신의 말씀을 듣고자 하는 사람들의 헤아릴 길 없는 마음에 대해서는 더 이야기하지 말자는, 나름대로는 '깊은 성찰'을 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쓰레기들을 바라보며 물건의 값어치를 이야기할 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옥은 있을지도 모른다. 나에겐 두렵고 마음 무겁게 하지만 아무래도 있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저 쓰레기들 때문에라도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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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중앙일보, 2012.11.27. 인터넷 뉴스 '월 6억씩 받고 강남 사는 목사 정체가… 충격'
2. 정명환, 「인상과 편견」(『현대문학』 2012년 1월호, 405~406쪽) 중에서.
3. 주경철, 「연옥의 탄생, 연옥의 죽음─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역사산책), 『현대문학』 2012년 6월호, 290쪽) 중에서.
4. 주경철 역사산책「치즈와 구더기 : 큰 세상을 작게 보기」『현대문학』2012년 10월호, 213쪽.카를로 진즈부르그, 김정하, 유제분 역,『치즈와 구더기 : 16세기 한 방앗간 주인의 우주관』(문학과지성사, 2001)의 주인공 메노키오가 종교재판을 받으며 종교계와 세속의 권력자들에게 들이댄 논리를 간추린 내용. 이렇게 주장한 메노키오는 결국 이단의 교주라는 판결을 받아 옥살이를 해야 했으나, 다행히 2년 후 일종의 가석방을 받았다. 그러므로 그는 조용히 살아야 했지만 결코 입을 다물고 살아갈 인물이 되지 못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 옛 버릇이 살아났고, 다시 이상한 이야기를 떠들고 다니다가 또 체포되어 고문을 받다가 결국 화형당하는 것으로 일생을 끝냈다.(위와 같은 페이지에서 발췌함.)
5. 2013.2.28, 한겨레, 한국경제, sbs 등.
6. 문화일보, 2013.2.28.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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