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편지

선생님께 - 어느 독자의 편지

by 답설재 2020. 9. 11.

 

 

2010년 2월 11일에 이 블로그에 실은 편지입니다. 이번에 블로그 시스템이 바뀌면서 글자는 잘 보이지도 않고 그나마 글씨체가 아주 이상해서 그대로 두기가 민망했습니다.

좀 잘난 척하려고 각주를 하나 달아 놓았었는데, 각주가 달린 글은 수정이 불가능하니까 어쩔 수 없이 오늘 날짜로 새로 싣게 되었습니다.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댓글은 6년 만인 1016년에 딱 하나가 달렸습니다. 그것을 옮기고 댓글란은 두지 않았습니다. 이것도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선생님.

몸 관리 잘 하시길 간절히 기도드리곤 했는데

기어코 그런 일이 일어나고 말았군요.

그리고 정작 가장 힘드셨을 그 시간 저는 연락도 못 드리고 무심히 지나가고 있었던 거네요.

너무 많이 죄송하고 가슴 아프면

어떻게 말로 표현을 할 수가 없다는 걸 아시는지요?

 

문득 2002년 남편이 신장이식 받던 해의 기억이 납니다.

개복하고 남의 신장을 그의 몸속에 이식해 넣는 대수술을 하던 날,

우여곡절이 많았던 그 날을 너무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대체로 지나간 일을 까맣게 자꾸 잊어버려서 탈인 제게

유난히 그 일은 잊히지 않으니까요.

수술실을 나서며 마취가 깨지 않아 웅얼거리며 저를 찾던 그의 초췌한 모습을 생각하면

-오늘 회식한다고 휴대전화 진동으로 해놓아 연락이 안 닿아 걱정시켰다고 화냈던 일이 미안하기조차 합니다.-

지금은 여간 큰 일이 아니면 다 감사할 거리가 됩니다.

그러나 그가 몸으로 느꼈을 고통은

아직도 제대로 제가 다 상상할 수 없는, 오롯이 그의 몫이었지요.

소변주머니 등등 여러 개 부속 기구를 몸에 달고 회복하며 고통스러워하던 그를 지켜보기만 했을 뿐, 아마도 그가 견뎌야했던 고통을 제대로 제가 다 이해하지는 못했겠죠.

 

선생님도 너무나 큰 수술을 받으시고,

중환자실에서 혼자 견뎌내셨을 걸 생각하니 울컥~~

참 외롭고 힘드셨을 거라 생각하니 다시 울컥~~

저는 지금 제 처지가 힘들다고 투덜대고 한탄을 했는데

정작 선생님은 생사를 넘나드는 고통을 당하셨다는 생각에 계속 울컥~~~

 

저는

한 학년 마치고 다음에는 어느 학년에 가서 좀 편히 쉬어볼까 고민하고,

어떤 업무를 맡아 좀 편해볼까 궁리하고 있었는데,

선생님께서는 퇴임을 앞두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사색하고 계셨다니…….

저는 이래저래 부족하고 허점 투성이인 미완의 인간, 그 자체네요.

 

부끄러워요.

그러나 선생님. 떠나신다고 해서 그냥 떠나시면 안 되죠.

다른 사람은 다 그래도 선생님은 그러시면 안 되죠.

어떻게 설명은 잘 못하지만,

제게는 그래요.

제게 선생님은 늘 그렇게 그 자리에 꼭 계셔야만 하는…….

집에 돌아왔을 때 엄마가 안 계시면 느끼는 공허함 때문에

꼭 엄마가 계셔야하는 것처럼…….

어느 곳에 꼭 있어야 하는, 반드시 있어야 하는

상징물같이…….

아니 아니……

어떻게 말해야 좋을까요…….

선생님은 박물관 좋아하시잖아요. 저도 연수받고 박물관이 좋아졌어요.

박물관에는 국보랑 보물들이 있잖아요. 그래서 박물관이잖아요.

박물관에 다른 게 있으면 박물관이 될 수 없잖아요.

아이들이 있고, 교사가 있고, 교육이 있는 이곳에

바로 선생님이 계셔야 한다구요.

보물이 다른 데 가 있으면 안 되듯이,

선생님도 다른 데 가 계시면 안 되고 여기,

제 곁에, 우리 곁에 꼭 계셔야 한다구요.

아셨죠?

제가 어설프게 말씀드리더라도

마음속을 훤히 꿰뚫으실 수 있죠?

아무 데도 가시지 말고 여기 계세요.

선생님, 사랑해요.

 

 

................................................................................................

 

이게 잘난 척하고 붙여 놓았던 그 각주였습니다.

 

1. 그와 나 사이에 '함수기' 같은 역할을 하는 그 무엇이 있어서, 그에 대한 가늠할 수 없는 내 마음이, 그럼에도 두세 배로 확대되어 그의 건강과 행운에 잘 실현되어가기를 바랍니다.

 

...............................................................................................

 

2016.10.13 23:42

 

선생님은 참 행복하신 분이세요

제자분이 이렇게 맘 가득한 존경과 사랑을 가지고

선생님 바라기를 하고 있는데......

 

그리고 저 같은 사람도

다가올 겨울이 덜 추웠으면 하는

선생님이 오래도록 건강하셔서

 

아름답고 지혜롭고 장난기 있는(?)

웃음도 주시는

다양한 글들

 

늘 가슴속에?,! 하나씩

남겨두고

선생님 글 생각합니다

 

오래도록 건강하셨으면 합니다

 

전번에 선생님 정말 죄송했어요

괜한 일로 신경 쓰시게 해 드려

선생님 건강에........

 

늘 조심조심하셨으면 합니다

좋은 밤 되셔요!

[비밀댓글]

 

 

파란편지

2016.10.14 10:49

 

★ 님께서 여기까지 오셨군요.

쑥스럽습니다.

 

대부분의 교사들이 그렇지만

때로는 회의감을 갖게 되고

아주 어렵다 싶으면

그만두고 싶다고도 합니다.

 

그럴 때 그 고비를 넘기도록 해주는 일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일이지만

아슬아슬하기도 하고

스스로 다행이라는 느낌도 갖게 됩니다.

누가 지켜보는 건 아니지만

선배 교사들이 할 일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 님!

더 생각하지 않으셔도 좋을 것입니다.

그동안 아주 괴로워서

생각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몇 명 만나고 그 후유증이 있어서

제가 아직 그 상태를 탈피하지 못한 게

분명합니다.

다 필요한 사람들이고 좋은 사람들인데

그렇게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 님!

고맙습니다.

[비밀댓글]

 

'편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갈피 속의 옛 편지  (0) 2021.05.17
쌤, 잘 계시나요? (1977학년도 졸업생)  (0) 2015.05.05
겨울 엽서  (0) 2015.01.15
캐나다의 헬렌  (0) 2013.08.27
어느 교사와의 대화  (0) 2013.0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