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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퇴임17

적막한 세상 -퇴임을 앞둔 교장선생님께 Ⅱ 지난번 편지 보시고 많이 불편하셨지요? 섭섭해 하셔도 어쩔 수 없는 일이고, 다 퇴임하신 후에 덜 섭섭해 하시고, 덜 실망하시고, 마음 덜 아프시도록 하기 위해 이런 편지를 쓴다는 것만 알아주십시오. 퇴임하시면 그 순간 세상이 적막해집니다. 얼마 만큼이냐 하면 예상하신 것보다 훨씬 더 조용해집니다. 오죽하면 저 자신은 현직에 있을 때의 그 세월을 '이승'이라 여기고, 지금의 이 세상을 '이승'도 '저승'도 아닌 세상으로 여기고 있겠습니까? 원래 세상은 이처럼 조용하고 적막한 곳인데 우리가 현직에 있을 때는 그런 줄도 모르고 지내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만나기만 하면 교장선생님께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그 여러 사람이 더 이상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되는 기억 속의 인물들로 변하기 때문에 그런 .. 2012. 2. 4.
교장실 비우기 -퇴임을 앞둔 교장선생님께 Ⅰ 교장실은 비우셨습니까? 아직 1월이니까 한 달이나 남았습니까? 그러지 마시고 얼른 비우시는 게 낫지 않을까요? 며칠 남겨 놓고 허둥지둥 하지 마시고 마지막 날 빈손으로 돌아가시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 별것도 아닌데 담아보면 여러 박스가 되고, 펴보면 별것도 아닌데 교직원들이나 학부모들이 보면 '뭘 저렇게 가지고 갈까?' 의아해할 수도 있습니다. 댁에서도 '이런 걸 뭐하려고 가지고 오나……' 할 수 있으니까 기념패, 감사패 같은 건 웬만하면 쓰레기장에 버리고 돌아가시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그까짓 거 진열해 놓아 봐도 퇴임하면 봐 줄 사람도 없고, 마음이 허전한 사람이나 그런 것 너절하게 늘어놓는 거나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교직생활 몇 년째입니까? 40년? 41년? 42년? 생각하면 '내.. 2012. 1. 28.
마지막 날 밤의 꿈 나는 '교무실'의 뒷쪽 구석, 별도로 마련된 책상에 앉아 있었습니다. 교사들은 회의실이나 세미나실에서처럼 앉은 것이 아니라 옛날식 저 '지시·명령 전달형' 회의실에서 회의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며 두른두른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부산한 분위기가 가라앉자, 누군가 올해 새로 임명될 부장교사와 담임교사들을 호명했습니다. 순간적으로 '저 호명이 끝나면 내가 임명장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그게 아니었습니다. 저 앞쪽으로 얼핏 새로 온 교장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교장, 교감, 교무부장은 모두 남성인 것 같았습니다. 이제 제가 할일이 끝났다는 걸 알아차렸습니다.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교무실 밖으로 나왔습니다. 교무실 문간에는 그곳에 벗어놓았을 제 신발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교무보조업무를 맡은 이를 .. 2010. 3. 5.
어느 학부모의 작별편지Ⅱ 교육경력 41년의 마지막 한 주일 중 화요일이 가고 있습니다. 오전에는 한국교과서연구재단 이사회에 나갔고, 오후에는 그 재단에서 발행하는 계간 『교과서연구』지 편집기획위원회를 개최했습니다. 그 위원회는 제가 위원장입니다. 아직은 교장이니까 '출장'이고 이런 출장은 '여비 기권'으로 처리하고 있습니다. 회의에 참석한 교육부 직원이나 대학교수, 연구기관 학자 등 여러 사람들이 "교장선생님" "교장선생님" 하고 불러도 아직은 어색하지 않지만, 며칠 후면 당장 달라질 것입니다. 아직도 저를 보고 옛날처럼 "과장님" 혹은 "장학관님" 하고 부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색한 것은 당연합니다. 쑥스러운 편지를 한 번 더 소개합니다. 이런 소개도 이제 앞으로는 없을 것입니다. 교장선생님께 안녕하세요. 학부모 대표 ○○○.. 2010. 2. 23.
<파란편지> 900일 오늘은 2010년 2월 12일, 어제는 이 블로그를 개설한 지 900일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헤아려 본 건 아니고, DAUM 회사에서 그렇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내게는 이 블로그를 찾는 이들이 다 고맙지만 DAUM에서 보내준 '내 블로그 그 특별한 순간들'에 보이는 분들에게는 '한턱' 내고 싶습니다. "오십시오! 내겠습니다." 900일이니까 2년 반이지요. 재미도 없는 글을 싣고 있지만 이 블로그를 찾는 분이 이만큼은 되지 않느냐고 큰소리를 치고 싶기도 합니다. 2010년 2월 13일! 이제 퇴임할 날이 보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교육자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것이 41년입니다. "나는 모릅니다!" "나는 이제 교육을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외치듯 교육과 인연을 아주 끊고 사는 것도 우스운 일이 될 것 같.. 2010. 2.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