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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세 월(Ⅱ)

by 답설재 2008. 4. 9.

 

 

지나는 길의 개나리가 이야기합니다.

"봐, 노랑이란 바로 이런 색이야."

누군가 모를 무덤가에는 진달래가 곱습니다. 멀리에서 복사꽃도 담홍색의 진수(眞髓)를 보여줍니다. 복사꽃 마을 사람들은 아직도 1960년대나 70년대의 그 정서로 살아가고 있는데, 어쩌다가 나만 이렇게 멀리 와 있는 것 같습니다. 뭐가 그리 급한지, 봄꽃들은 잎보다 먼저 피어나 곧 아지랑이 피어오를 봄을 ‘희망’만으로 이야기하지만, 나처럼 세월의 무상함을 이야기하려는 사람에게는 T.S. 엘리엇의 말마따나 그 희망이 잔인하다는 느낌을 줍니다.

 

어린애들이나 소년소녀들은 저 꽃들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까요? 아름다움이란 나이가 들면서 이렇게 얼굴이 무너지고 마음이나 정서도 그만큼 누추해져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아무래도 젊지 않은 사람이 지었을 시 한 편 보십시오. 이 하이쿠에 스민 봄의 색깔을 보십시오(마츠오 바쇼,「나라로 가는 길」).

 

 

아, 봄이런가

이름도 없는 산에

연한 봄 안개

 

산길 넘어가다가

무엇일까 그윽해라

조그만 제비꽃

 

 

이렇게 세월이 갑니다. 그리고 나는 지금 이 교장실에 앉아 있습니다.

다행일까요, 아직은 교장인 것이? 숨이 찹니다. 아직도 모르는 것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돈을 많이 모아 가지고 레테의 강을 건너기는 틀린 일이고 무얼 좀 알고나 가야겠는데, 이곳에 들어앉아 무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 답답함을 비유할 만한 표현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오늘날 거리에서 볼 수 있는 가장 불행한 장면들 중 하나는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온통 아무 모양도 없는 검은 옷으로 감싸고 작은 구멍을 통해 세상을 내다보는 여성의 모습이다. 부르카는 단지 여성을 억압하고 그들의 자유와 아름다움을 억압하는 도구가 아니다. 남성의 지독한 잔인성과 여성의 비극적인 굴종을 가리키는 것만도 아니다. 나는 그 작은 구멍을 다른 무언가의 상징으로 사용하고 싶다."

                - 리처드 도킨스, 이한음 옮김,『만들어진신 THE GOD DELUSION』김영사 2007, 556).

 

말하자면 나는 이슬람 여성의 부르카, 그 망으로 짜인 작은 구멍을 통해 세상을 내다보는 것 같은 답답함을 느낍니다.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살펴보면 될까요?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이란 사람은 "여행은 비록 모호한 방식이기는 하지만, 일과 생존 투쟁의 제약을 받지 않는 삶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준다."면서 "행복을 찾는 일이 우리 삶을 지배한다면, 여행은 그 일의 역동성을 그 열의에서부터 역설에 이르기까지 그 어떤 활동보다 풍부하게 드러내준다"고 했으니까요(정영목 옮김,『여행의 기술』이레 2005, 18).

 

남아프리카에서 온 다니엘라라는 여성이 일전에 내 아들과 나누었다는 대화 내용이 기억납니다. 그들은 성공적인 삶의 조건을 화제로 이야기했는데 창의력이니 통찰력, 경쟁력이니 하는 주장들을 듣고 있던 그녀에게는 '자유(自由)'가 그 조건이라고 하더랍니다. 참으로 그렇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팍팍하게 살아가는 나 자신과 그렇게 살아가는 주변 사람들을 둘러보게 되었습니다.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다면 좋겠습니까?

 

그건 나에게는 안 될 일인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여태껏 그렇게 살아오지 않은 내가 당장 보따리를 챙겨 길을 떠난다면 내 가족은 물론 주변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습니까? "드디어 맛이 갔구나." 그러지 않을까요? 그걸 의식하므로 이미 길 떠나기는 아예 틀린 일인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그건 도저히 안 되겠으므로 책을 많이 읽는 수밖에 없겠습니다. 허섭스레기 같은 내 책들도 그 책을 내기 위한 원고를 쓸 때는 정성을 다했으므로 '세상의 현자(賢者)들'이 낸 책이야 오죽하겠습니까? 오늘 하루에도 수십 권의 신간(新刊)이 나오고 있을 테니 그 또한 얼마나 다행한 일입니까?

 

이제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 국민들의 독서량은 일본 같은 선진국에 비해 형편없는 수준이라고 몰아세우지만, 책을 많이 읽어야 할 처지인 나 또한 책 읽는 시간을 조금밖에 내지 못하는 게으름뱅이고 그나마 읽은 내용의 해석에조차 어둡습니다. 어떤 사람은 책 중에는 다시 읽어볼 만한 것이 많다면서 아직 쌓아두기만 하고 한 번도 읽지 못한 책이 많은 사람의 약을 올리기도 하고, 신문사에서는 읽어볼 만한 책들을 일주일 단위로 줄줄이 늘어놓기도 합니다. 그러니 속이 타고 답답하고 초조감이 엄습하기도 합니다.

 

세월은 자꾸 가는데 '책 속에 길이 있다'고 말하지만 그 길조차 보지 못한 채 여기에 와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