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니자키 준이치로 《슌킨 이야기》
谷崎潤一郞 《 春琴抄 》
『현대문학』 2025년 3월호
슌킨(春琴)은 오사카 도쇼마치의 부유한 약재상의 작은딸이었다. 그녀는 메이지 19년(1886), 58세로 사망했다. 그녀의 무덤 옆에는 사실상 부부로 지낸 제자 사스케의 무덤이 있다. 제자는 메이지 40년 (1907), 83세로 사망했다.
슌킨은 용모가 단정하고 아름다웠다. 고상함과 우아함을 견줄 자가 없었다. 네 살 때부터 춤을 배웠는데 자세와 동작을 스스로 터득할 만큼 영리했다.
그녀는 안질을 앓아 아홉 살 때 시력을 잃었다. 이후 춤을 그만두고 슌쇼(春松) 겐교(検校 : 남성 맹인 연주자에게 주어진 최고의 관직명)의 가르침에 따라 쟁과 샤미센 연습에만 힘썼다.
슌킨보다 네 살 위인 사스케는 슌킨이 시력을 잃은 그해에 누대에 걸친 주인집 수습 점원으로 고용살이를 시작했고, 슌킨을 슌쇼 겐교의 집으로 데리고 가 교습이 끝나면 다시 데려오는 일을 맡았다.
그는 슌킨을 신처럼 떠받들며 자신을 낮추었다.
한시도 방심하지 않고 슌킨을 기다리며 들려오는 음악을 귀로 익혔다. 나중에 샤미센 연습을 허락받고 정식으로 슌킨의 제자가 되어서도 작은아씨와 똑같이 하지 않으면 송구하다며 눈을 감고 연주하였다.
그들이 은밀한 사랑을 나누는 것이 분명한데도 두 사람 다 그걸 인정하지 않았다. 슌킨이 열일곱, 사스케가 스물한 살 때는 슌킨이 사스케를 빼닮은 사내아이를 낳았는데도 그들은 그 관계를 한사코 부정했다.
스승 슌쇼 겐교가 세상을 떠났을 때, 슌킨은 사스케와 일꾼 몇 명을 데리고 부모로부터 독립하여 스스로 교습소를 열었다.
슌킨의 교습소는 그녀의 아름다움과 혹독한 가르침으로도 관심을 모았지만 음식, 몸 관리, 의복, 취미 생활, 일상생활에서의 사치로도 유명했다. 슌킨은 극단적으로 사치를 즐겼고, 극단적으로 인색하고 단호하고 혹독한 욕심쟁이이기도 했다.
슌킨의 요염한 자태와 고상한 기품은 사람들의 질시를 받았지만, 사스케는 아무리 어려워도 스승 슌킨의 뜻에 한 치도 어긋나지 않도록 혼신을 다했다.
그러다가 괴한이 침입하여 슌킨의 얼굴에 뜨거운 물을 들이부은 사건이 일어났다.
슌킨의 꽃처럼 아름다운 얼굴과 옥같이 고운 용모가 일그러지게 되었으므로 그녀는 자신의 모습을 남에게 보여주지 않으려 했고, 특히 사스케만은 그 모습을 보아서는 안 된다고 단호하게 선언했다.
그러자 사스케는 자신의 눈동자를 바늘로 찔러 스스로 맹인이 되었다. 지난 30년 동안 눈 속 깊이 배어 있는 스승의 그리운 얼굴 그대로를 죽을 때까지 기억하며 살아가고 싶었던 것이다. 또 자신에게만은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 하는 슌킨의 마음을 헤아려주고 싶었던 것이다.
"스승님, 저는 맹인이 되었습니다. 이제 평생 얼굴을 볼 수 없습니다."
"사스케, 그게 정말이냐?"
그렇게 물은 슌킨은 오랫동안 생각에 잠겨 있었는데 사스케로서는 이전에도 이후에도 그 침묵의 몇 분 동안만큼 즐거운 시간은 없었다. 감사의 일념 외에 아무것도 아닌 슌킨의 가슴속을 저절로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스케, 아프지 않더냐?"
이후 슌킨은 옷 입는 것도, 목욕도, 안마도, 뒷간 가는 것도 사스케에게만 맡겼다.
응석받이로 자란 그녀는 여전히 다른 사람에게 요구하는 것은 가혹했고, 자신은 고생도 굴욕도 몰랐으며, 아무도 그녀의 오만한 콧대를 꺾지 못했지만 통렬한 시련을 내린 사건이 그 자만심을 깨부수었으나 사스케만은 그녀를 그대로 지켜준 것이다.
슌킨은 기꺼이 사스케의 보살핌을 요구했고, 사스케는 헌신적으로 슌킨을 보살피며 서로 싫증을 몰랐다.
결혼을 바라지 않은 것은 슌킨보다는 사스케 쪽이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맹인이 된 후 스승의 아름다움과 스승의 샤미센 연주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슌킨이 세상을 떠나자 사스케는 겐교의 지위를 얻어 교습소를 운영하며 슌킨의 무덤을 지켰다. 스스로 눈을 찌른 것은 마흔한 살 때였고 세상을 떠난 것은 여든한 살 때였다.
그는 21년을 스승의 무덤 옆에서 고독하게 살다가 그 뒤를 따라갔다.
이 소설(中篇)의 줄거리를 적어보았다. 생각을 덧붙이는 건 잡설이 될 것 같았다. 사랑 이야기이니 더욱 그렇다. 그것은 얼마나 아름답고 황홀한 열락을 보여주는가. 그렇지만 그건 또 얼마나 어렵고 번거롭고 두렵고 엄청난 일인가. 그럼에도 정신을 못 차리고 빠져드는 건 또 무엇 때문일까. 그건 왜 그토록 유혹적인 것일까. 그런 걸 따지지 않고 남의 일 바라보듯 하더라도 얼마나 다양한 것인지 들을 때마다 다른 이야기다. 모르겠다. 나는 이 소설을 읽고 또 하나의 사랑을 알게 되었다. 그 사랑에 대해 줄거리만 적어보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책 보기의 즐거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명환 단상 《인상과 편견》 (1) | 2025.03.21 |
---|---|
나는 왜 이 책에 빠져 살아왔을까 (10) | 2025.03.13 |
오스카 와일드 《옥중기》 (9) | 2025.03.04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픽션들》 (6) | 2025.02.21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기억의 천재 푸네스》 (4) | 2025.02.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