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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김춘수 「不在」

by 답설재 2025. 2. 8.

어쩌다 바람이라도 와 흔들면

울타리는

슬픈 소리로 울었다.

 

맨드라미 나팔꽃 봉숭아 같은 것

철마다 피곤

소리없이 저버렸다.

 

차운 한겨울에도

외롭게 햇살은

靑石 섬돌 위에서 낮잠을 졸다 갔다.

 

할일없이 歲月은 흘러만 가고

꿈결같이 사람들은

살다 죽었다.

 

 

 

오늘의 詩人叢書《金春洙詩選 處容》민음사 1974.

 

 

 

 

 

 

하루가 잘도 간다.

느끼지 못해서 그렇지 나도 지금 그렇게 가고 있을 것이다.

조금 전 일어난 것 같은데 밤이 깊었다.

어제와 오늘, 내일이 한데 딱 들어붙어 분리할 수가 없게 되었다.

밤이 깊어가고 있지만 나는 곧 아침의 양치질을 하면서 이 시간을 실감하지 못할 것이다.

 

주제넘게 '웬 제목이 不在일까' 하다가 不在보다 확실한 제목이 없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생각해보면 내가 지나다닌 바로 그 동네에 오랫동안 살고 있었던 시인도 가고 없다.

 

「不在」의 세상은 적막하고 아름답다.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