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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소설과 소녀(소년)에 관한 존 러스킨의 견해

by 답설재 2024. 2. 15.

소설 읽기를 얼마나 허용해야 하는가를 여기서 결정하지는 않겠지만 이것 하나만은 주장하겠습니다. 소설을 읽든 시나 역사물을 읽든 책을 그 효용성으로 골라서는 안 되며 반드시 내용으로 골라야 한다는 점입니다. 영향력이 큰 책 안에 여기저기 붙어 있거나 숨어 있는 위험과 악이 고결한 소녀에게 해를 입히는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내용 없는 공허한 저자는 소녀를 우울하게 하고, 그의 쾌활한 어리석음은 소녀의 품격을 떨어뜨립니다. 오래된 고전으로 가득 찬 훌륭한 서가를 이용할 수 있다면 굳이 책을 고를 필요가 없습니다. 요즘 나오는 잡지나 소설은 따님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두십시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면 고전이 가득한 서고에 따님을 혼자 내버려 두십시오. 자신에게 이로운 것이 무엇인지 찾아내게 될 겁니다. 부모가 찾아 줄 수는 없습니다. 왜냐면 소녀의 성품을 만들어 가는 과정은 소년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소년은 바위처럼 깎아서 만들 수 있습니다. 품성이 남달리 훌륭한 소년의 경우에는 청동 작품을 다루듯이 망치질을 해서 형태를 잡아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소녀는 망치질로 형태를 잡을 수 없습니다. 그녀는 꽃이 자라듯이 자랍니다. 햇빛이 없으면 시들고 맙니다. 충분한 공기가 없으면 소녀는 수선화처럼 꼬투리 속에서 시들어 갑니다. 인생의 중요한 시기에 도움을 주지 않으면 꽃봉오리를 떨구어 흙이 묻을 겁니다. 그래도 소녀에게 족쇄를 채울 수는 없습니다. 소녀는 자신만의 아름다운 형태와 방식을 취할 것이며 심신 양면에 있어 "언제나 집안에서의 동작은 가볍고 자유로우며 발걸음엔 처녀만의 자유로움이"* 있어야 합니다.

어린 사슴을 들판에 풀어놓듯이 소녀를 서고에 풀어놓으십시오. 어린 사슴은 무엇이 이로운 풀이고 무엇이 해로운 풀인지를 여러분보다 수십 배는 더 잘 알아서 가시가 있는 쓴 풀도 먹을 겁니다. 그 풀은 어린 사슴에게 이로운 풀이지만 여러분은 이롭겠단 생각조차 해 본 적 없는 풀입니다.

 

 

존 러스킨의 강연 「백합: 여왕들의 화원」중 78번째 장이다(존 러스킨·마르셀 프루스트《참깨와 백합 그리고 독서에 관하여》유정화·이봉지 옮김, 민음사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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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윌리엄 워즈워스의 시 「그녀는 기쁨의 정령이었다」의 13, 14행.

 

 

 

오래 전의 인물이어서 이런 생각을 가졌던 것일까?

아니지, 그때라고 해서 책(소설) 혹은 독서에 대한 생각이 오늘날과 얼마나 달랐을까?

위대한 인물이어서 나와 생각이 달랐던 것일까?

위대한 인물이라고 해서 독서에 관해서는 소녀와 소년을 분명하게 구분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석연치 않다.

그렇지만 내가 어떻게 러스킨의 견해를 간단히 부정할 수 있겠는가.

그는 이런 생각을 가졌었구나, 생각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