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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뭘 알아야 글을 쓸 것 아닌가

by 답설재 2024. 2. 18.

글을(도) 쓰며 살아가는 사람은 많다.

나는 그걸 전업으로 하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실감할 때가 있다. 유발 하라리의 경우도 좋은 사례다. 그의 책 《사피엔스》는 그 전체가 그런 사례들이어서 밑줄을 긋는다면 아예 다 그어버리면 속이 시원할 정도였다.

소비지상주의에 대한 그의 생각을 읽으면서도 그 생각을 했다(490~493).

 

 

현대 자본주의 경제는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생산량을 늘려야 한다. 상어가 계속 헤엄치지 않으면 질식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 역사를 통틀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핍 속에서 살았다. 그러므로 검약이 표어였다. 청교도와 스파르타인의 금욕 윤리는 가장 유명한 두 사례였다. 훌륭한 사람은 사치품을 멀리했고, 음식을 버리지 않았으며, 바지가 찢어지면 새로 사는 것이 아니라 꿰매 입었다. 오로지 왕과 귀족들만이 그런 가치관을 공개적으로 포기하고 자신들의 부를 눈에 띄게 뽐낼 수 있었다.

소비지상주의는 점점 더 많은 재화와 용역을 소비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본다. 사람들로 하여금 제 자신에게 잔치를 베풀어 실컷 먹게 하고, 자신을 망치고, 나아가 스스로를 죽이게끔 한다. 검약은 치료가 필요한 질병이라고 말한다. 소비지상주의 윤리가 실제로 작동 중이라는 사실을 알려면 멀리 갈 필요가 없이 시리얼 상자의 뒷면을 읽어보면 된다. 내가 좋아하는 아침용 시리얼은 이스라엘 회사 텔마의 것인데 그 상자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다. 

 

"당신은 가끔 맛있는 것을 잔뜩 먹어야 합니다. 가끔은 에너지만 약간 보충하면 됩니다. 과체중에 주의할 때도 있지요. 하지만 뭔가 먹어야만 할 때도 있습니다...... 바로 지금처럼! 텔마는 바로 당신을 위해 다양하고도 맛있는 시리얼을 제공합니다. 후회 없이 마음껏 드세요."

 

이 상자에는 '헬스 트리츠'라는 또 다른 시리얼 브랜드를 자랑스럽게 광고하는 말도 적혀 있다.

 

"헬스 트리츠는 다량의 곡물, 과일, 견과를 제공합니다. 맛과 즐거움, 건강이 결합된 경험을 선사하죠. 낮에 즐기는 파티, 건강한 생활방식에 맞는 스낵, 더욱 놀라운 맛을 지닌 진짜 선물."

 

이런 글들은 역사상 대부분의 기간 동안 사람들을 유혹하기보다 배척받기가 더 쉬웠다. 사람들은 여기에 이기적이고, 퇴폐적이고, 도덕적으로 부패했다는 낙인을 찍었을 것이다. 소비지상주의는 대중심리학('just do it!')의 도움을 받아, 사람들에게 탐닉은 당신에게 좋은 것이며 검약은 스스로를 억압하는 것이라고 설득하려 무진장 애썼다.

설득은 먹혔다. 이제 우리는 모두가 훌륭한 소비자다. 우리는 실제로 필요하지 않은 상품들을 무수히 사들인다. 어제까지만 해도 존재하는 줄도 몰랐던 것들을 말이다. 제조업자들은 일부러 수명이 짧은 상품들을 고안하고, 이미 완벽하게 만족스러운 제품을 불필요하게 갱신하는 새 모델을 발명한다. 이것은 유행을 따르려면 반드시 사야 하는 물건이다. 쇼핑은 인기 있는 소일거리가 되었으며, 소비재는 가족, 배우자, 친구 관계의 핵심 매개물이 되었다. 크리스마스 같은 종교 휴일은 쇼핑 축제가 되었다. 미국의 경우 심지어 현충일도 마찬가지다. 원래는 순국선열을 추모하는 경건한 날이었지만, 이제는 특별 세일을 하는 기회가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날을 기념하기 위해 쇼핑을 하러 가는데, 어쩌면 자유를 수호했던 사람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 그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소비지상주의 윤리가 꽃피었다는 사실은 식품 시장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 전통 농업사회는 굶주림이라는 무시무시한 그늘 속에서 살았다. 오늘날의 풍요사회에서 건강에 가장 심각한 문제는 비만인데, 그 폐해는 가난한 사람이(이들은 햄버거와 피자를 잔뜩 먹는다) 부자들보다(이들은 유기농 샐러드와 과일 스무디를 먹는다) 훨씬 더 심각하게 입는다. 미국 사람들이 해마다 다이어트를 위해 소비하는 돈은 나머지 세상의 배고픈 사람 모두를 먹여 살리고도 남는 액수다. 비만은 소비지상주의의 이중 승리다. 사람들은 너무 많이 먹고(적게 먹으면 경제가 위축될 테니) 다이어트 제품을 산다. 경제성장에 이중으로 기여하는 것이다.

 

 

시원하다. 이보다 더 속시원히 쓸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러니까 이런 글을 쓰려면 뭘 좀 알아야 할 것 아닌가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