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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시몬 드 보부아르의 결론 《노년》

by 답설재 2024. 2. 28.

아래 사진 출처 : 블로그 "참 예쁜 세 아이"

 

 

《노년》

그 방대한 책에서 노년의 슬픔을 조목조목 파헤치고 나열한 보부아르는 짤막한 결론을 내렸다.

그렇지만 보부아르는 결론에서도 결국 노년의 슬픔을 요약해서 제시하고 있었다.

 

거의 대부분의 인간들은 노년을 슬프게 혹은 반항적으로 맞아들인다. 노년은 죽음 자체보다 더 큰 혐오감을 불러일으킨다.

사실 우리가 삶에 대립시켜야 하는 것은 죽음보다 차라리 노년이다. 노년은 죽음의 풍자적 모방이다. 죽음은 삶을 운명으로 변화시킨다. 어느 면에서 죽음은 삶에 절대의 차원을 부여함으로써 삶을 구원한다.

 

현재의 과거에 대한 우위는─거의 모든 경우에 있어 그렇지만─현재가 과거에 있었던 것의 쇠퇴나 혹은 과거의 부인인 경우 특히 슬픈 것이다. 옛 사건들, 예전에 획득한 지식들은 생명의 불이 꺼진 삶 속에서 자기 자리를 지킨다. 그것들은 과거에 존재했던 것이다. 기억이 쇠퇴하면 그것들은 하찮은 어둠 속으로 침몰해버린다.

 

윤리는 과학과 기술이 제거할 수 없는 고통이나 질병, 노년과 같은 악들을 평온하게 받아들이라고 설교한다.

 

그것은 말장난일 뿐이다. 계획이란 단지 우리의 활동에만 관계될 뿐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 그것은 우리의 계획에 들지 않는다. 성장하고, 성숙하고, 늙고, 죽는다는 이러한 시간의 흐름은 숙명일 뿐이다.

 

결론이 없는 건 아니었다.

보부아르는 노년의 슬픔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을 다음과 같이 단 한 가지로 제시했다. 다만 그건 아무나 실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노년이 우리의 이전 삶의 우스꽝스러운 하찮은 모방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한 해결책은 단 하나밖에 없다. 그것은 우리의 삶에 의미를 주는 목표들을 계속하여 추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다른 사람들이든, 집단이든, 대의명분이든, 사회적 혹은 정치적 일이든, 지적·창조적 일이든, 그 무엇에 헌신하는 길밖에 없다. 도덕주의자들의 충고와는 반대로, 우리는 나이가 상당히 들어서까지도 강렬한 열정들을 오래 보존하기를 바라야 한다. 그 열정들은 우리가 자신에게로 되돌아오는 것을 막아주기 때문이다. 사랑을 통하여, 우정을 통하여, 분노를 통하여, 연민을 통하여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삶에 가치를 부여하며, 그 덕분에 삶은 가치를 보존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행동해야 하는 이유, 또는 말해야 하는 이유가 남아 있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종종 노년을 '준비'하라고 충고한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돈을 저축하고, 은퇴 생활을 할 곳을 정하고, 취미를 만드는 것에 그칠 뿐이다. 그날이 와도 우리는 거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모든 환상들이 사라지고 생명의 열기가 식었다 하더라도, 계속 삶에 밀착하기 위해서는 차라리 노년에 대해 너무 생각하지 말고, 정당하고 참여적인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낫다.

 

'우리의 삶에 의미를 주는 목표들을 계속하여 추구하는 것'!

보부아르는 그 멋진 일의 가능성에 대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에 대해, 그리고 그런 일을 할 수 없는 노인들의 슬픔과 절망, 그 의미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다만 이런 가능성은 오로지 한 줌의 특혜자들에게만 주어진다. 특혜를 부여받은 자들과 그 나머지 대다수의 사람들 사이에 가장 깊게 고랑이 파이게 되는 때는 바로 말년이다.

 

건강과 명석한 이성을 보존한다 해도 은퇴한 사람은 권태라는 끔찍한 재앙에 시달리게 된다. 세상에 대한 영향력을 박탈당한 은퇴자는 다른 어떤 영향력도 회복할 수 없다.

 

살아오면서 겪은 손상은 훨씬 더 근본적인 것이다. 은퇴한 사람은 현재의 자기 삶의 무의미함에 절망한다.

 

소외되고 착취당한 사람들은 기력이 사라지면 숙명적으로 '폐품'과 '쓰레기'가 되는 것이다.

 

온당한 양로원을 짓는다 해도, 그들에게 문화와 흥미, 그들의 삶에 의미를 줄 책임감을 만들어줄 수는 없다.

 

대답은 간단하다. 인간이 항상 인간으로 대우받는 사회여야 한다.

 

노년은 우리 문명의 모든 실패를 고발한다. 노인의 조건이 받아들일 만한 것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인간을 온통 다시 만들어내야 한다. 인간들 사이의 모든 관계를 재창조해야 한다. 한 인간으로 하여금 말년을 빈 손으로 외롭게 맞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만약 문화가 일단 습득된 후에는 곧 잊혀지는 무기력한 지식이 아니라 실제적이고 살아 있는 것이라면, 만약 인간이 문화를 통해 자기 주변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고, 또 그 영향력이 해를 지남에 따라 완성되며, 또 거듭나는 것이라면, 인간은 어떤 나이에나 내내 능동적이며 유용한 시민일 것이다.

 

그러나 사회에서 밀려난, 이제 지치고 헐벗은 노인에게 남은 것은 눈물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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