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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세이 쇼나곤 / 은밀한 곳의 멋

by 답설재 2024. 3. 2.

 

 

 

사람 눈을 피해 간 곳에서는 여름이 가장 운치 있다. 밤이 짧은 탓에 한숨도 못 자고 새벽을 맞이하노라면, 어느덧 뿌옇게 동이 터 오면서 주위가 서늘해지는 느낌이다. 밤새 하던 얘기를 이어 가고 있으면 파드득하고 머리 위로 까마귀가 갑자기 높이 날아올라, 혹시라도 다른 사람에게 들키는 것은 아닐까 하고 가슴이 마구 뛴다.

또한 겨울밤 아주 추울 때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덮은 옷 속에 파묻혀, 저 멀리서 은은하게 들려오는 종소리를  함께 듣는 것도 정취가 있다. 그 즈음 닭이 울기 시작하는데 처음에는 부리를 날개 속에 처벅아 먼 곳에서 우는 것처럼 들리다가, 날이 밝아 옴에 따라 점점 가깝게 들려온다.

 

 

은밀했던 그 순간이 산뜻한 새벽별이 보이는 수채화가 되었다.

1000여 년 전 헤이안 시대의 궁중 여인(여방 : 학문을 가르친 여관) 세이 쇼나곤은 미녀도 아니었고 매몰찰 때도 있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 섬세하고 풍부한 여성이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