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교과서의 작품 이야기 - 옥의 티

by 답설재 2015. 4. 14.

"문우(文友)"라고 하면 좋겠지만, 나는 아무것도 아닌 그냥 보통 사람이어서 흔히 하는 말로 "아는 사람", 그러니까 지인(知人)이 쓴 글입니다.

계간지 《교과서 연구》(79호, 2015.3.1)에 실렸습니다.

 

 

 

<교과서의 작품 이야기>

 

 

옥의 티

 

 

 

김 원 길(시인, 안동지례예술촌장)

 

 

안동지례예술촌

 

 

 

내가 우리말 현대시를 처음 만난 때는 중학교 1학년 국어 시간이었던 것 같다. 갓 입학하여 며칠 안 된 봄날에 우리들은 박목월의 시를 배우며 우리 시가 지닌 율조의 아름다움에 반하고 말았다.

 

 

머언 산

청운사

낡은 기와집

 

산은 자하산

봄눈 녹으면

 

느릅나무 속잎 피어가는

열두 구비를

 

청노루

맑은 눈에

도는 구름.

 

 

('청노루' 전문)

 

 

율조가 좋은 시는 쉽게 읽히고 잘 읽히는 시는 뜻이 좀 어려워도 잘 외워진다. 실제로 이 시에서 "…… 열두 구비를 / 청노루 / 맑은 눈에 / 도는 구름"을 열두 살 중학생이 문맥을 알고 읽지는 않는다. 거기에 무슨 문제점이 있는지 선생님도 말해 주지 않고 그 이상한 문장에 대해 자습서가 "이거다" 하고 써 놓지도 않았다. 그러니 우리는 무조건 이 시를 외우고 좋아했다. 더구나 대학에 들어가서 문학평론을 배우다가 "아름답고 뜻이 없는 말은 뜻이 있고 아름답지 않은 말보다 낫다"는 궤변에 혹하여 더 이상 뜻을 캐지 않게 된다. 그러나 시학 교수가 되어 학생들에게 어떻게든 그 뜻을 풀어 줘야 할 때는 진땀을 흘리며 견해를 밝히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열두 구비를'과 '청노루' 사이에 생략이 있는 겁니다. 시인이 언어를 절제하느라 잘라낸 거예요. 나처럼 미련한 시인이라면 생략하지 못하고 이렇게 썼겠지요. '느릅나무 속잎 피어가는 열두 구비 산길을 (돌고 돌아 올라가는) 청노루의 맑은 눈'이라고 말이에요. 이런 과감한 생략에는 용단이 필요한 겁니다. 목월 선생은 그걸 해낸 거예요."

그런데 그렇듯 시적 완성미에 철저를 기한 목월이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한 것이 있으니 저 유명한 명작 "윤사월"이 바로 그것이다.

 

 

송화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

 

산지기 외딴집 눈 먼 처녀사

 

문설주에 기대어 엿듣고 있다.

 

 

('윤사월' 전문)

 

 

이 숨 막히게 아름다운 시 역시 독자들이 운율에 마취되어 문제를 거의 보지 못한다. 내가 1972년 문단에 나온 해에 안동에 강연하러 온 목월을 만나서도 나는 아직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한 탓에 이 시의 문제점을 질문할 줄 몰랐다. 훨씬 나중에 내가 강단에서 수업을 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이 시의 결함이 눈에 띤 것이었다. 어쩌면 시인과 독자가 하나같이 숨은 그림을 찾지 못했을까? 다름 아니라 이 짧은 4행시에 '외딴'이 두 번 들어 있다는 사실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언어의 마술사라고 해도 과찬이 아닐 목월이 '외딴'을 대신할 만한 시어를 찾지 못하다니, 만약 그가 생존했을 때 내가 이 사실을 알았더라면 그의 해명을 들을 수 있었을 테고, 만약 그가 오류를 수긍하고 고치기를 원했다면 나는 감히 앞의 '외딴'을 '높은'으로 하든가 뒤의 '외딴집'을 '너와집'으로 고쳐볼 것을 권했을 것이다.

 

시인은 어떻게 하면 이런 실수를 만회할 수 있을까? 해답은 첫째, 성급히 발표하려고 하지 말고 고치기를 죽을 때까지 계속하란 것이다. 둘째, 죽은 후에도 눈 밝은 독자가 태어나지 말기를 바라야 한다. 정말로 이 세상에 결함 없는 시가 몇 편이나 될까?

 

미당이 어느 날 그의 자택을 찾아간 내게 말했다.

"자네 내 ‘국화 옆에서’란 시 읽고 거슬리는 거 없었나?"

"모르겠던데요."

"나, 그 시 고칠까 봐."

"네? 어떻게요?"

"함 봐."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먼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과 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필랴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겐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여기서 모두가 다 우리말인데 '위爲하여'가 한자漢子 아닌가 말여. 난 이 '爲하여'가 싫어. 옥에 티야."

"어떻게 고치게요?"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려고……"

"? 안됩니다. 이미 교과서에도 올라 있고…… 독자들이 고쳐 읽으려 하지도 않을 걸요?"

"이번에 전집 낼 때 고쳐서 실어야겠어."

그러곤 이러는 것이었다.

"시인은 죽을 때까지 자기 시를 고칠 권리가 있어."

 

그러나 전집에는 그 시가 고쳐져 있지 않았다. 고쳐 보았다가 마지막 순간에 되돌려 놓았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유명한 시인들도 어떤 분은 실수를 깨닫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는가 하면, 또 어떤 분은 멀쩡한 시를 뒤늦게 맘에 들지 않아 죽는 날까지 두고두고 고치려들기도 하는 것이다.

 

육사의 몇몇 시도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광야'에서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를 "닭 우는 소리 들렸으리라"로 읽어야 한다는 사람이 있고 '청포도'에서 "청포를 입고 찾아오는 사람"을 중국 사람일 거라는 주장도 있고 '절정'에서 "강철로 된 무지개"를 "물지게"로 보는 교수도 있다. 죽은 육사는 말이 없고 뒷사람들이 나름대로 써대는 것이다.

 

해석을 잘 못하는 것도 문제이겠지만 더러는 시인 자신이 철저한 퇴고를 하지 않아서 독자가 헷갈리게 되는 수도 있다.

노천명은 '고향'이란 시를 쓰며 "대낮에 잔나비가 우는 산골"을 "대낮에 뻐꾸기가 우는 산골"로 고쳤다가 마지막엔 "대낮에 여우가 우는 산골"로 완성하여 논란의 단초를 없앴다. 잔나비는 한국에 살지 않고 뻐꾸기는 원래 낮에 우는 새여서 여우를 등장시킴으로써 인적 없는 깊은 산골에 어울리게 한 것이다.

 

물론 시인이 시를 많이 고친다고 해서 반드시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대표작을 낳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최후까지 옥의 티를 없애려는 노력이 있어야 뒷날 독자들의 오해와 왜곡을 면할 것이다.

 

 

金 源 吉

《월간 문학》에 「취운정 마담에게」(1971), 《시문학》에 「꽃그늘에서」 외 5편으로 등단(1972). 시집 《개안》(1974), 《내 아직 적막에 길들지 못해》(1984), 《들꽃다발》(1993), 《아내는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 한다》(2009), 해학모음집 《안동의 해학》(2002)을 냈다.

중등학교에서 국어, 대학교에서 문장론, 비교문학을 강의하다가 임하댐 건설로 고향 지례마을이 수몰될 때 교직을 포기, 선대의 고가들을 뒷산으로 옮겨 문예창작마을 ‘지례예술촌’을 조성하고 고택문화보전회를 창립하는 등 전통생활체험에 힘써 옥관문화훈장을 수훈하였다.

 

 

 

 

 

 

안동지례예술촌

 

 

 

 

'詩 읽은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정주 「귀촉도 歸蜀途」  (0) 2015.06.15
「4번 타자」  (0) 2015.05.10
「폭우」  (0) 2015.04.07
이생진 『그리운 바다 성산포』  (0) 2015.03.23
「봄」  (0) 2015.0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