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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폭우」

by 답설재 2015. 4. 7.

 

 

 

 

 

 

 

 

 

 

                                                                                                  한인준

 

 

  의자와 나무가 놓여 있다

 

  간단하게

 

  비가 내린다

 

  의자와 나무는 젖은 채로 다음 문장을 기다린다

 

  문장이 눈앞에서 멈춰 있다

 

  나는 비 내리는 문장 속으로 손을 넣는다

 

  나무와 의자 사이를 어루만진다

 

  손바닥 위로 빗소리만

 

  가득해

 

  문장 밖으로 빗방울이 튀어오른다

 

  비가 내린다

 

  소리 내어 문장을 읽는다

 

  나는 어디에 있는 창문을 열어두었는지

 

  모든 곳에서 비가 내린다

 

 

 

  ――――――――――――――――――――――――――――――――――――――――

  한인준 1986년 서울 출생. 2013년 『현대문학』 등단.

 

 

                                                                    『현대문학』 2014년 12월호, 196~197쪽.

 

 

 

 

 

 

 

 

  비가 내리는 모습을 '그대로' 나타낸 것인데, 그동안 다른이들은 이렇게 '그대로' 나타내기가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너무나 사실적이어서 온 화면에 비 내리는 모습만 그린 수채화 같습니다.

 

  "비가 온다."

  그렇게 이야기해 봐야 지금 비 내리는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보이는 듯할 리가 없습니다.

  "의자와 나무가 놓여 있다" 하고,

  "간단하게

  비가 내린다

  의자와 나무는 젖은 채로 다음 문장을 기다린다"

  그렇게 하니까 정말로 비 내리는 그 모습을 지금 내가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언젠가, 눈 오는 날 아침 신문에서, "그곳에도 눈이 내립니까?" 하고 물은 만화를 본 적이 있습니다. 아직 신문은 읽지도 않았고, 그 만화 때문에 눈발 자욱한 창밖 풍경을 오래 내다보던 그 아침이 지금도 뚜렷이 떠오르고 몹시 그리워집니다.

  그 만화가는 자기네 마을에만 눈이 내리는 것이 아니라 온 세상에 눈이 내리는 것 같았을 것입니다.

 

  아침부터 그리움에 젓게 하던 그 만화처럼, 온 세상에 비 내리는 모습이 전해진 것 같습니다.

  "나는 어디에 있는 창문을 열어두었는지

  모든 곳에서 비가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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