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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弔辭 "종민아"

by 답설재 2015. 10. 16.

 

 

 


종민아.
오전에 내 아들이 내 핸드폰에 문자로 "최종민 선생님 돌아가셨습니다. 분당 서울대 병원 장례식장 9호실. 16일 발인"이라 찍어 보냈구나. 어떻게 알았냐니까 페이스북에 났더라고 했다. 그럼 네가 죽었단 말 아니냐?
이게 무슨 짓거리냐?
일 년 전 뇌에 혹이 생겨 수술 후에 너는 분명 경과가 좋다고 했지 않았나? 구례 국악 행사에도 다녀올 거라 하기에 올라오는 길에 안동 들러 쉬어 가라 했는데 그 후에 소식이 없어 전화했더니 목소리가 힘이 없어 보였다. 그 후 1년 여를 네 전화는 먹통이고 메일을 보내도 답이 없기에 수신확인을 했더니 열어보지도 않았더구나.
우석이, 오춘이, 보영에게 전화로 네 근황 물어봐도 아무도 모르더구나. 언제 시간 나면 경기도 너네 집으로 찾아가든가 실종신고라도 내야겠다는 생각까지 했었다.
그러니 너는 작심하고 숨어버린 것 아닌가? 아님 누가 숨겨버린 건가,  왜?
죽어가는 사람 흉한 모습 보이기 싫었겠지. 문병 와서 보고 간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것도 싫었겠지. 장례식장에 사람들 몰려와서 실없는 말 늘어놓고 들썩거리는 것도 원하지 않았겠지. 그러면 그렇다고 말을 해야지, 무조건 절교하듯, 자살하듯, 나도 모르게 행방불명이 되면 어떡하냐?
너는 세상에 유명한 국악학자요, 국악 전도사로 온 국민이 알고 있는 공인이 아니냐!  어떻게 아무도 모르게 죽어 삼일장으로 마친단 말인가?
너는 그런 식으로 가는 게 아니다. 너를 보고싶어 하고, 네 안부가 궁금한 수많은 친구들이 괘씸해한다는 걸 알아야 한다. 너를 아끼는 우리 국민들이 TV를 통해 네 투병하는 상황과 장례식을 알도록은 했어야지. 그것도 문화활동이란 걸 왜 못 생각했나? 하긴 육신이 고달프고 정신이 혼미하면 무엇 하나 제 뜻대로 되는 게 있었을까마는…
내일 아침 일찍 떠나 경기도 성남의 영안실로 찾아가 웃고 있을 네 영정 앞에 향 올리고 흰 국화 한 송이 바치고 두 번 절하고 바로 내려와 버릴 거네.
자네 내 시 "들꽃다발" 알지?

"일찍 죽는 놈

무덤엔 꽃도 많이
바칠 거 없다."

잘 가게, 친구야.

재작년 오월엔 이춘길이 죽어 자네랑 함께 문상 가 놓고 올 오월엔 자네마저 가다니…
그래, 모두 잘 가거라, 이 나쁜 놈들아!!!
 
                                                                                       (죽마고우, 김원길)

 

인터넷 검색창에 '최종민'을 넣어봤습니다.

 

고인은 1942년 강릉 태생으로 서울대 음악대학 국악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성균관 대학 동양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68년 안동교육대학 교수로 출발 강릉대, 전남대,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를 거쳐 남원정보국악고등학교 교장 등을 역임한 후 국립창극단장을 지냈으며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했다.

주요 저서로는 <한국의 민속음악>, <국악의 새로운 숨결>,<민요-이렇게 가르치면 제맛이 나요>, <한국전통음악의 미학사상> 등이 있다.

 

공부는 뒷전이고, 뭔가 일이나 벌이며 지내던 2년제 대학 시절, 교지(校誌 "明倫春秋")라는 걸 창간하기로 하고 돈을 가지고 있는 행정부서를 찾아가 '땡깡'(생떼질)을 부리는 한편 새로 부임한 이분에게 찾아가 논문을 한 편 달라고 했습니다.

아직 새파랗고 밝고 맑고 섬세한 분이었습니다.

그렇게 하여 첫 번째로 손에 쥔 원고가 '서금보(西琴譜)의 시조장단(時調長短)'이었는데, 그 원고를 갖게 되니까 일 추진에 힘이 났습니다.

안타깝게도 강의를 들을 기회는 없었지만 최종민 교수께서 나를 잊었을 리 없고 뭔가 기억할 것 같다는 느낌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러다가 지난 5월 16일, 안동 지례예술촌 김원길 시인이 메일로 저 조사를 보여주었는데 당장 이 블로그에 싣는 것은 두 분에게 다 주제넘은 일이고 그렇다고 "그게 누군데요?" 하는 것은 더 있을 수 없는 일 같아서 이제 여기에 소개하게 되었습니다. 소개? '소개'라기보다는 여기에라도 남겨 놓고 싶었습니다.

 

그분이 살아 있을 때 무슨 일로 이렇게 하면 오죽 좋았겠습니까.

"선생님! 저는 누군가 '진도 아리랑'을 부르는 걸 보고 제가 길을 잘못 들어선 걸 알았습니다. 아내더러 지금이라도 민요를 좀 배우라고 했는데 배우는지 마는 건지 원……"

그렇게 말씀드려도 좋을 분이었는데……

인간이 이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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