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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꽃다발을 한아름 선사합니다

by 답설재 2025. 5. 9.

블로그 "임실사랑"에서 갈무리 (https://kshil.tistory.com/11573889)

 

 

어버이날, 스승의 날을 앞두고 많은 사람이 카네이션이나 꽃다발을 들고 가던 시절은 지나갔다. 전철역 입구에서는 으레 임시로 설치한 좌판에 갖가지 카네이션을 진열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가슴에 꽃을 달아주는 것보다 돈을 받는 게 좋다는 중론을 좇아 돈봉투를 주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꽃장사는 시들해졌고, 스승의 날이라도 일체의 선물을 금지한다는 엄중한 지시에 따라 아름다운 꽃다발을 안겨주는 예쁜 모습도 보기가 어려워졌다.

 

새로운 문화가 좋고 편하고 즐거운 사람이 많겠지만 옛일들이 그리워지는 사람도 없진 않을 것이다.

 

'졸업식 노래'에는 재학생들이 부르는 1절에 "꽃다발을 한 아름 선사합니다"라는 구절이 있다. 재학생들이 1절을 부르면 졸업생들이 "잘 있거라 아우들아 정든 교실아. 선생님 저희들은 물러갑니다"라고 화답해서 숙연해지고, 이어 졸업생과 재학생이 '함께' 3절을 불러 선배와 후배, 선생님들의 마음이 '함께' 훈훈해지곤 했다.

학교에 그만 오게 된 것이 좋아서 웃는 아이도 있었지만 헤어지는 것이 싫어서 우는 아이도 많았다. 졸업식이 '거행'될 때마다 식이 끝날 즈음의 이 졸업식 노래 제창 순서가 좋아서 나는 웃거나 울지는 않고 씩씩하게 그 노래를 함께 부르는 교사였고, 그렇게 노래하며 이 노래가 참 좋구나 싶었다.

 

그러던 것이 이제 졸업식도 '거행'은 하지 않고, 그러니까 재학생들 일부와 전교 선생님들이 모두 참석하지는 않고  더 뜻깊게 졸업생들만 모여서, 혹은 각 반별로 아기자기한, 더 멋진 졸업식을 하는 것으로 변해가고 있다. 하기야 대학에서는 벌써부터 그렇게 해오고 있었다.

졸업식 노래도 저 노래 말고 신식이고 세련된 노래를 골라 부르는 학교도 많다.

어쩔 수 없는 변화다.

어쩔 수 없다니! 그게 아니고 바람직한 변화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졸업기념 앨범도 변하고 있다. 아예 그런 앨범을 만들지 않기도 한다. 으레 첫 페이지 가득 늙수그레한 교장 독사진이 실렸었으니 그게 무슨 추억·기념이고 교육적이라고... 변해야 마땅하다.

 

변하는 건 세태만이 아니다.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꽃다발을 한 아름 선사합니다..."

꽃다발도 줄어들고 있지만 '선사'란 말도 사라져 가고 있다.

선사(膳賜) : 선물을 줌.

사전은 "그는 이건 아주머니한테 선사로 가지고 왔다고 하면서 장신구 여러 개를 꺼내 놓았다."란 문장을 용례로 들고 있다.

아주머니에겐 몰라도 학교에선 그런 '선사'가 감시의 대상이 되고 있다.

선사란 말은 사라져 가고, 아이들 수에는 관심이 깊은지 몰라도 정작 아이들 하나하나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고 서로 부딪히는 일에 더 집중하는 것 같아서 나는 쓸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