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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아이가 다 본 책 어떻게 해?

by 답설재 2025. 5. 12.

 

 

 

 

이런 책 모아놓고 필요한 사람이 가져가거나 바꾸어 가거나 하면 좋을 것 같지?

전에 그런 사업 하는 사람을 본 것 같은데 돈벌이는 시원치 않았던 모양이야. 잘 되면 뛰어드는 사람들이 있고 알려지고 할 텐데 그렇지 않았잖아.

 

무료로 가져가게 하고 바꾸어가게 하고 그러면 좋아하는 사람이 실제로 많을 것 같진 않아.

전에 학교 근무할 때 학부모들 얘기 들어봤더니 다들 새 책 사주고 싶어 했어. 얻어다 주겠다는 사람은 찾아보기가 어려웠어.

요즘은 더 하겠지. 그 열성은 우리나라 학부모들의 특성이지. 자녀교육이라면 아까워하지 않거든. 언제나 제1순위지. 뭐든 새것 주고 싶어 하고. 이런 소리 하기 좀 그렇긴 하지만 이럴 때 남자들은 100% 수긍할 수밖에 없지.

실없는 생각들 아니야?

 

헌책 버리지 않고 돌려보자고 하면 좋아하지 않을 사람도 많을 것 같아. 다 그렇진 않다고 단서를 달아놓고 얘기할게.

책 만드는 사람들, 그러니까 작가들, 편집인들, 인쇄인들, 또 종이 만드는 사람들, 유통업자들……  내가 몰라서 그렇지 이분들 말고도 더 있겠지.

 

그럼 막 버리자?

그건 아니야.

 

우린 넓은 집에 사는 사람이 별로 없잖아.

아이들 다 본 책, 장난감, 놀이기구, 육아용품 같은 것들을 어떻게 해. 버려야지. 잘 버리는 게 생활의 지혜라잖아. 아이들이 커갈수록 집은 점점 좁아지는데 끌어안고 있으면 당연히 스트레스만 쌓이지.

 

소설 읽어보면 서양 사람들은 흔히 다락방, 창고, 지하실 같은 곳들을 이야기하잖아?

거기에서 우연히 어린 시절에 갖고 놀던 인형, 읽은 책을 발견하고 생각하는 장면에서 나는 매번 부러웠어.

'내가 이런 책도 읽었구나... 내 부모님은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를 기원했겠지?…….'

 

 

상자 안에 보관된 기념품 가운데 조그만 종이 주머니가 하나 있다. 도시락 주머니만 한 것이다. 주머니의 윗부분은 테이프, 철침, 클립 등으로 봉해져 있지만, 옆구리가 너덜너덜 찢어져 있어서 안에 든 것들을 들여다볼 수 있다.

이 특별한 도시락 주머니를 나는 어림잡아 14년 동안이나 소중히 간직해 오고 있다. 하지만 이 주머니는 알고 보면 내 딸 몰리의 것이다. 학교에 갈 나이가 되고 나서부터……

 

 

로버트 풀검이 쓴《유치원에서 배우지 못한 것들》이라는 책에서 본 구절이야. 그래, 맞아. 그 로버트 풀검이야.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라는 책도 그가 썼어.

이 구절에서도 나는 많이 부러웠어. 우린 뭐든 다 버리는데, 저 사람들은 뭐든 다 버리지 않는 것 같아서

 

난 허접하게 살아와서 이런 생각도 지금에야 하고 있어.

 

그럼 아이가 다 본 책 어떻게 하자는 것이냐고?

그걸 난들 어떻게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