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4 아드님 인사받으며 "그놈 참, 언제 봐도 착하게 생겼어." 했던 노인입니다. 아주머니는 시큰둥하며 "키워 보세요, 착한지." 하셨고요.
엘리베이터가 제가 타는 층까지 내려올 때 안에서 잔소리하는 소리가 다 들렸었지요.
공동 현관을 나서며 생각했어요. '아이 키우는 게 수월하진 않지. 그렇지만 저 애 같으면 그렇게 어려울 것 같지는 않아.'
아주머니는 아이를 앞세우고 또 뭐라고 뭐라고 하시면서 주차장 쪽으로 가셨고요.
지난주 어느 날이었어요. 이번에는 아이가 제 아빠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다가 제가 타니까 얼른 인사를 했고, 이어 아이 아빠도 아이를 따라 제게 인사를 하더라고요.
사람 좋게 생긴 분이더군요. 몸매도 넉넉하고 표정도 순후하게 보였어요. 아이를 따라 제게 인사를 했지만 아이와 제가 인사를 나누어도 못 본 체하는 아빠가 더 많으니 그만해도 전 좋다 싶었어요.
그런데 애 아빠도 분명히 큰 소리로 잔소리를 하며 내려왔어요. 그러다가 제가 타니까 얼른 태도를 바꿔서 아이에게 존대를 하며 뭐라고 했는데 그건 아마도 내려오면서 한 잔소리의 후속 편이 분명했어요.
전 공연히 좀 짜증이 나더라고요. '아니, 이 집 내외는 아이에게 잔소리만 하나? 아주 합동이네?'
뭘 어쩌라고 아이에게 그렇게 하나요?
아이는 두 분을 닮아서 순후하고 여유롭게 생겼잖아요. 아마 성격도 그렇겠지요. 엄마 아빠보다 나으면 낫지 못할 것도 없을 것이고요.
아이가 노는 걸 좋아하나요?
노는 걸 싫어하는 아이가 있을까요? 더구나 4학년이면 한창 놀고 싶을 때 아닌가요?
그렇지만 난 그 애가 다른 애와 노는 걸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네요. 만날 때마다 학원 간다고 했고요. 하기야 요즘 애들이 밖에서 노는 모습 구경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긴 하지만요.
그러다가 오늘 아침에 제 아내에게 전해 들은 말이 있어요.
17층 아주머니를 만났다고요. 아이가 허구한 날 핸드폰만 들여다봐서 아예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노래만 들을 수 있게 해 놓았더니 이번에는 늘 노래만 듣는다고요.
전 그 얘기 들으며 문득 아이가 가엽다고 생각했어요. '그럼 그 아인 뭘 하지? 뭘 해야 하지?'
정말 뭘 해야 하나요?
공부만 하면 되나요?
공부하고 나면 멍 때리기를 하면 되나요?
엄마 아빠가 재미있는 얘기를 해주나요?
그건 아닌가요? 그럼 단 한 시간, 두 시간인들 뭘 해야 하루가 지나가나요?
만화책은 잘 대어주나요? 흥미 위주의 만화도 좋고 학습 만화도 좋지요. 요즘은 추리소설 좋아하는 아이가 많은 것 같던데 그런 책을 많이 보여주나요? 도서관이 가까우니까 도서관에 다니게 하나요? 그 애가 도서관 가고 오는 걸 한 번도 못 봤지만요.
제가 생각해도 답답하네요. 미안하지만 아이 입장에서요.
그 아이가 중학교 갈 때까지만 해도 2년 반 이상의 세월에 들어야 할 잔소리를 생각하니까 기가 막히네요.
제 생각에는 무슨 수가 나야 할 것 같아요.
일단 아이가 하고 싶은 걸 물어봐야 할 것 같아요.
그런 다음에 무슨 계획을 세워보고 그 계획에 대해 아이와 엄마 아빠가 서로 승인하고 실천하고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아무리 그래도 공부만 하라고 하진 않을 것 같아서요.
그 좋은 아이의 얼굴에 생기가 보이지 않아요.
어느 아인들 그렇지 않을까요?
이것도 하지 마라, 저것도 하지 마라, 숨을 쉴 수가 없지 않겠어요?
아이가 하고 싶은 걸 말하지 않더라고 하시겠어요?
그건 말이 되질 않아요. 스스로 그렇게 말하는 아이는 거의 없어요. 묻지도 않은 일을 어떻게 생각해 내겠어요. 그냥 그러고 있겠지요. '난 왜 이렇지? 맨날 엄마 아빠에게 잔소리를 들어야 하지? 난 도대체 뭐지?.....'
그러지 말고 아이에게 조용히 물어보세요.
참 좋은 아이 하나 구하세요. 부탁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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