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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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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수하고 거울 보다가 세수를 하고 거울 들여다보다가 이 얼굴이 이제 가랑잎 같구나 하고 생각했다. 아직 봄이고 몸무게도 줄지 않았는데 왜 그럴까? 계절은 봄이지만 내겐 가을이 깊었거나 겨울바람에 이리저리 날리는 가랑잎인지도 모르지. 가랑잎? 그러면 이의제기 같은 것 없이 따르면 그만일 것이다. 순순히 따른다? 그건 "六十而耳順' 할 때의 그 이순(耳順)처럼 느껴지는 말이지만 나는 옛 성현처럼 15세에 학문에 뜻을 두거나 하지도 않았으니 애초에 그런 이순(耳順)이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유감없이' '미련 없이' '홀연히' '표표히'... 뭐 그런 의미쯤이라고 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2024. 4. 24.
왜 그렇게 앉아 있나요? 비는 오는데 그렇게 앉아 있으니까 좀 민망합니다. 나는 아예 그 벤치나 의자에 앉지 않으려고 몸이 무거우면 선 채로 좀 쉬었다 걷지만, 그렇게 하는 건 나도 그렇게 앉게 되면 지금 그 모습과 한 치의 다름이 없을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민망하겠지요. 아니, 그 벤치에 앉게 되는 시기를 조금이라도 늦추고 싶은 것입니다. 왜 혼자 그렇게 앉아 있습니까? 역시 노년의 문제겠지요? "노년에 관하여"(키케로)라는 책 혹 읽어보셨습니까? 키케로는 흔히 '노년에는 큰일을 할 수 없다' '노년에는 몸이 쇠약해진다' '노년은 거의 모든 쾌락을 앗아간다' '노년이 되면 죽을 날이 멀지 않다'고 불평들을 하는데 그렇지 않다고 반박합니다. "노년에도 정치 활동과 정신 활동은 물론 농사일을 할 수 있다, 체력 저하.. 2024. 4. 22.
오은경 「매듭」 매듭 오은경 어제와 같은 장소에 갔는데 당신이 없었기 때문에 당신이 없다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았던 내가 돌아갑니다 파출소를 지나면 공원이 보이고 어제는 없던 풍선 몇 개가 떠 있습니다 사이에는 하늘이 매듭을 지어 구름을 만들었습니다 내가 겪어보지 못한 풍경 속을 가로지르는 새 떼처럼 먹고 잠들고 일어나 먼저 창문을 여는 것은 당신의 습관인데 볕이 내리쬐는 나는 무엇을 위해 눈을 감고 있던 걸까요? 낯선 풍경을 익숙하다고 느꼈던 나는 길을 잃습니다 내부가 보이지 않는 건물 앞에 멈춰 서 있습니다 구름이 변화를 거듭합니다 창문에 비친 세계를 이해한다고 믿었지만 나는 세계에 속해 있습니다 당신보다 나는 먼저 도착합니다 내가 없었기 때문에 내가 없다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았던 당신에게 나는 돌아와 있습니다. .. 2024. 4. 22.
이제 거들떠보지도 않네 정처(定處)도 의지도 없이 떠내려가고 있었다. 축제가 끝나버려서 사람들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저렇게 떠내려 간 것도 단 나흘 전이었는데 이미 추억은커녕 기억도 아니다. 그날 아침나절 나는 냇물을 따라 걸어내려가고 있었다. 나는 우산은 쓰고 있었다. 2024. 4. 19.
자연에 대한 경외심 '나'는 일본에서 활동 중인 이우환 화백이고 '루트'와 '에스라'는 그의 친구들이다. 루트가 말했다. "당시 사람들은 거인이었던 걸까?" 나는 조금 생각한 뒤 말했다. "그럴 리는 없지. 다만 지금 사람들과는 달리 그들은 조금 더 자연의 에너지, 그 힘과 연이어 있는 존재였을 거라고 생각해." "자연의 힘?" "우리처럼 고립된 개인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삼라만상과 이어진 공동체의 힘이라고나 할까, 자연에 대한 경외심이랄까, 신에 대한 신앙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 에스라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괴력이 작용했다는 뜻이군." "현대인은 공통된 정보와는 연결되어 있지만, 생각도 신체도 외부와 단절되어 있어서 자기 자신의 힘밖에 없는 게지." "엄청난 힘을 잃고 말았네." 이우환의 에세이 「라.. 2024. 4. 18.
행복에 대한 접근법 : 유발 하라리의 생각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의 제4부 과학혁명(제19장 그리고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다)에서 행복이란 모종의 주관적 느낌(쾌감이든 의미든)이라는 가정은 논리적인 가정일 뿐이며 이는 우리 세대의 지배적 종교가 자유주의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주관적 느낌이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는 생각은 기독교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최소한 주관적 느낌의 가치에 대해서라면, 찰스 다윈이나 리처드 도킨스도 성 바오로나 성 아우구스티누스와 같은 입장을 취할 수 있다. (...) 사람뿐 아니라 모든 생명체가 그렇다. 대부분의 남성들은 평화 속에서 행복을 누리는 대신에 노동하고 걱정하고 경쟁하고 싸우며 삶을 보내는데, 이들의 DNA가 자신의 이기적 목적에 따라 그렇게 조종하기 때문이다. 악마와 마찬가지로, DNA는 덧없는 기쁨을.. 2024. 4. 16.
'雪柳'라는 이름 "雪柳가 피어났네~~" 淸님이 블로그 "Bluesky in Nara"에 그렇게 써놓았다. (https://nadesiko710.tistory.com/13412054). 설류? 뭐지? 뭐가 이 이름을 가졌지? 조팝꽃이었다. '조팝'은 튀긴 좁쌀 혹은 조로 지은 밥에서 유래한 이름이란다. 그곳 사람들은 설류라고 하는구나... 雪柳, 고운 이름... 문득 '윤슬'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난 그 단어를 모른 채 살아오다가(그걸 몰라서 무슨 이변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연전에 '윤슬'(박상수)이라는 시를 보고 그 말, 그 시에 놀라서 한참 동안 가만히 앉아 있었다. 이 아파트에 '윤슬'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가 있다. 그 아이 엄마 아빠가 마음속에 품고 있다가 주었겠지? 윤슬처럼 아름답게 빛나라고... 조팝나무를 .. 2024. 4. 14.
아, 정말... 이번 봄은 어쩌자고 이러지? 이를 데 없이 좋은 봄날이다. 어느 해에는 봄이 좀 오래 머물다 가지만 어처구니없을 만큼 금세 지나가버릴 때도 있다. 좋은 봄날이라는 말을 자주 하거나 자주 들으면 그해 봄은 금세 가버린다.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가 그런 말을 하면 특히 그렇다. 그게 몇 번쯤인지 헤아려보진 않았지만 아마도 정해진 횟수가 있지 않을까 싶기는 하다. 사람들이 봄, 봄 하면 여름이 금세 와버리는 것이다. 나는 웬만하면 그 말을 스스로 하진 않는다. 속으로 생각만 한 것도 올해는 이게 처음이다. 2024. 4. 12.
장석남 「사막」 사막 장석남 1 나를 가져 내 모래바람마저 가져 나를 가져 펼친 밤하늘 전갈의 숲 사막인 나를 가져 목마른 노래 내 마른 꽃다발을 가져 2 내가 사막이 되는 동안 사막만 한 눈으로 나를 봐 너의 노래로 귀가 삭아가는 동안 바람의 음정을 알려줘 내가 너를 갖는 동안 모래 능선으로 웃어줘 둘은 모래를 움켜서 먹고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없는 노래로 눕는 거야 나는 너를 가져 사막이 될 거야 나는 너를 가져 바람 소리가 될 거야 ..................................... 장석남 1965년 인천 덕적도 출생. 1987년 『경향신문』 등단. 시집 『새떼들에게로의 망명』『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젖은 눈』『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미소는, 어디로 가시려는가』『뺨에 서.. 2024. 4. 11.
마지막 남아야 할 한 단어 다 사라지고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지식은 단 한 문장, 한 문장이 안 된다면 그럼 한 단어, 단어도 길어서는 안 된다면 단 두어 글자로 된 단어, 그것에 대해 알아보고 싶었다. 그것은 무엇일까? 사랑? 믿음? 힘? 돈? 기억 혹은 추억? 고독? 향수? 상상력 혹은 추리력?...... 나로선 도무지 재미가 없지만 유명한 어느 과학자는 그게 '원자 가설'이라고 했단다. # 1 1960년대 초, 아주 비범한 미국의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강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만약 어떤 대격변이 일어나서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 지식이 모두 파손되고 오직 한 문장만이 남아 다음 세대의 피조물에 전해지게 된다면, 가장 적은 글자 수에 가장 많은 정보를 담을 수 있는 말은 무엇일까요? 나는 원자 가설(혹은 원자에 관한 사.. 2024. 4. 10.
이 아침의 행운 창 너머 벚꽃이 만개한 아침이다. 어찌할 수 없는 상실과 아픔, 지울 길 없는 아픔과 슬픔으로 이어져 온 생애의 기억들이 안개 걷히듯 사라지는 느낌이다. 꽃그늘을 걷는 사람들 표정이 먼 빛으로도 밝고, 문득 이 아침이 행운임을 깨닫는다. 이런 시간이 행운이 아니면 그럼 언제 어디에 행운이 있겠나. 2024. 4. 9.
말씀 낮추시지요 허리를 구부리고 뭘 좀 하고 있는데 누군가 인사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럴 때 "예~" 하고 대충 넘어가는 게 불가능해서 하던 일을 멈추고 얼른 달려가 울타리 사이로 내다봤더니 웬 사람이 환하게 웃으며 '이웃'이라고 했다. 반가워하며 얘기를 나누던 중에 그가 불쑥 "전 올해 육십입니다. 자주 뵐 텐데 말씀 낮추시지요." 하는 게 아닌가. 이런 수가 있나. 응겁결에 대답했다. "아닙니다! 친절하게 대해 주시니까 그것만으로도 고맙습니다." "저도 너무나 좋습니다." 종일 생각했다. '아, 이거... 어쩌다가 육십 먹은 사람에게 그런 말을 듣게 됐지? 말을 놓으라니, 그런다고 덥석 말을 놓진 않겠지만 빈말이라도 그렇지, 내가 어쩌다가 이렇게 됐지? 난 이젠 정말 늙었나 보다. 이거 참...' 도대체 난 뭘.. 2024. 4.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