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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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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의 후배들 '윤리' 시간이었을까? 고등학교 다닐 때 쇼펜하우어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 우리는 좀 비관적인 급우를 보면 "너 쇼펜하우어 후배냐?"고 묻고 또 웃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끝이란 건 쇼펜하우어와의 인연 말이다. 굳이 읽어봐야 할 필요도 없었고, 그럴 여가도 없었다. 그렇게 살아도 그것으로 인한 애로 사항은 없기 때문이었고, 그게 우리 한국교육의 장점이고 단점이라고 생각했다.☞ 사진은 위키나무에서 가져왔음. 『캉디드』에서 볼테르는 매우 유쾌한 방식으로 낙관주의에 대항하여 싸운다. 바이런은 『카인』에서 그 특유의 비극적 방식으로 싸웠다. 헤로도토스는 트라키아인들이 새 생명이 태어나면 한탄하고, 사람이 죽으면 즐거워했다고 보고 한다. 플루타르코스 역시 아름다운 시구로 같은 것을 표현한다. "태어난 자를 불쌍.. 2024. 6. 2.
그 교실에서 말없이 나를 바라보던 숙에게 (2024.5.31) 숙아! 벌써 오십 년이 다 되었지? 아침마다 우리가 그 교실에서 만나던 날들… 넌 습관적으로 내 표정을 살폈지. 그 모습이 왜 잊히지 않는지… 성적이 좋지 않았던 넌 6학년 때에도 내내 그대로였어. 아이들은 웃거나 놀리지도 않고 그냥 ‘꼴찌’라고만 했지. 당연한 일이어서 비웃거나 놀리거나 할 일이 아니라고 여겼겠지. 넌 주눅이 들어 있었어. 학교는 주눅이 드는 곳? 네가 처음부터 내 표정을 살펴보며 지낸 건 학교에 주눅이 들어서였던 것이 분명해. 담임이란 언제 어떤 언짢은 소리를 할지 모르는 존재였겠지. 너의 그 표정은 내내 변하지 않았어. 졸업하고는 마음이 편해졌을까? 주눅 들지 않고 살아갈 수 있었을까? 그렇지만 일찌감치 사회로 나갔고 꼬박꼬박 학력(學歷)을 묻는 이 사회 어디서나 ‘초등학교 졸업’이.. 2024. 5. 31.
달빛 가득한 밤 서울에 가면 이런 시간에도 불야성이겠지.서울 아니어도, 가로등만으로도 밤새 하얗게 밝은 곳도 얼마든지 있지.자칫하면 세상이 쓸쓸한 줄도 모르고 외로운 곳인 줄도 모르게 되지.건너편 아파트를 내다보면 매일 밤 몇 집은 밤새 불을 밝히고 있지.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있나?' '누가 아파서 도저히 불을 끌 수가 없나?'...... 그런 걱정 없이 자리에 들며 그나마 다행이라는 느낌으로 잠들게 되지. 이곳은 전혀 달라.가로등이 없어.너무 적적해.개울 건너편 나지막한 집 보안등만 밤새 반딧불처럼 깜빡여.나만 불을 밝혀두면 온갖 벌레들이 다 모여들겠지. 내가 모르는 짐승 두어 마리가 저 집 뭐 하는지 가보자고 할 수도 있겠지. 나는 그건 싫어. 걱정스러워. 그렇게 잠들면 반쯤 열어놓은 블라인드 사이로 들어온 달빛.. 2024. 5. 29.
이 영어쌤 줄 공책에 검은색 사인펜만 가지고 만들었네!글씨도 다채롭고 스펙도 잘 나타내고 자신감도 보여주고...화지(畵紙)도 없고 색연필도 없고 줄공책과 사인펜 한 자루밖에 없었을까? 혹 일부러 그랬나?아파트 각 동(棟) 출입구마다 붙였다면 몇 장이나 만들었을까? 복사는 한 걸까?아 전단지 제작에 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였겠지?어떤 성품을 지녔을까?정말로 잘 가르칠 수 있을까?  2019년 2월 25일에 붙였던 전단지니까 그새 5년이 지났다.과외는 성공적이었을까?지금은 어디서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2024. 5. 28.
오늘의 운세, 고마운 덕담 디지털에 약한 나는, 데스크톱으로 보는 세상과 핸드폰을 써서 보는 세상이 서로 다르다. '이걸 핸드폰에서는 어떻게 찾지?' 싶은 것이 있고, '데스크톱에는 이런 게 안 뜨던데...' 싶어도 굳이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는다. 물어볼 데도 없다. 되는대로 지내면 된다. 아침에 데스크톱을 열면, 두 가지 사이트 중 한 곳에서는 '오늘의 운세'를 읽는다. 내 생년월일은 엉터리여서(음력을 양력인양, 더구나 한 해 늦게 태어난 것으로 신고해서) 그게 누구의 운세인지 모르지만, 그래서 남의 것을 내 것인 양 해서 좀 미안하긴 하지만 나는 그 '오늘의 운세'를 내 것으로 삼기로 했다. 누가 "당신은 당신의 것이나 봐!" 하면 나는 서럽거나 억울할 것이다(인터넷 사이트 개설 때 주민등록상의 생년월일을 적어 넣지 않으면 아.. 2024. 5. 27.
바라트 아난드 《콘텐츠의 미래》 2(온라인 학습) 바라트 아난드 《콘텐츠의 미래》김인수 옮김, 리더스북 2017      CHAPTER 29 (발췌) HBX, 전략에서 도입까지교실학습과 온라인 학습의 결합이열어갈 교육 신세계  답을 구하기 전에 단순하지만 중요한 질문을 하라 우리는 모든 대화를 관통하는 중요한 두 가지 질문을 잊지 않았다. 누구를 대상으로 할 것인가? 그리고 이길 방법은 무엇인가? "교육을 민주화하라", "세계를 평평하게 하라", "신기술을 포용하라"처럼 온라인을 둘러싼 좋은 말들에 현혹되기 쉽다. 이런 말들이 장점을 지니고 있다는 것, 그리고 동기를 부여한다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다. (...) 하지만 개인의 결정을 이끌어주는 데 있어서는 그리 유용한 역할을 하지 못한다.우리에게 여전히 중요한 것은 전략에 관한 기본 질문이었다. 학습자.. 2024. 5. 26.
바라트 아난드 《콘텐츠의 미래》 바라트 아난드 《콘텐츠의 미래》김인수 옮김, 리더스북 2017       우리가 하는 일이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일과 점점 연계성이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연관되어 있지만 보이지 않는 기회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 현재 우리의 활동 무대 너머를 바라봐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하는 일이 우리가 있는 곳에 의해 어떻게 영향받는지 깨달아야 한다.('시작하는 글'에서) 오늘날 사용자들은 거의 돈 한 푼 들이지 않고도 다른 사람들과 상호 교류할 수 있다. 바로 이것이 디지털 기술의 핵심이다. 파일 공유 서비스, 소셜 네트워크, 마이크로블로그, 뉴스피드, 비디오 업로딩, 인스턴트 메시징, 애플리케이션 공유, 바이얼 광고, 교육 플랫폼 등이 이에 속한다.누구나 콘텐츠를 공급하고 배포할 수 있다.('이 책을 읽기 전에'.. 2024. 5. 25.
유희경 「이야기」 "조용히, 심지어 아름답게 무성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야기"조용히, 심지어 아름답게 무성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유희경 그해 여름엔 참 놀라운 일들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딱따구리와 함께 보낸 장마 기간을 잊을 수 없다 빨간 머리의 딱따구리는, 적어도 내 방에서만큼은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책장에 구멍을 내거나 구멍을 내는 소리로 나를 깨우지도 않았다 나는 더러 그가 딱따구리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했다 하지만 그는 너무나 딱따구리였다 시내 큰 서점에 가서 사 온 커다랗고 비싼 조류도감에도 한 치 다를 바 없는 그의 모습이 세밀하게 그려져 있었으니까 딱따구리가 때론 포유류의 머리를 공격해 뇌를 파먹기도 한다는 경고를 그 책에서 읽었다 아닌 게 아니라 그가 머무는 동안 나는 희미하고 끈질긴 두통에 시달렸다 그럴 때마다 머리의 이쪽저쪽을 만져보면서 딱따구리.. 2024. 5. 23.
자네, 무슨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나 슈바이처에 대해서 국민학교 다닐 때부터 지금까지 잊지 않고 있는 건 아프리카 어딘가에서 병든 사람들을 치료해 주고 노벨평화상을 받았다는 것이었는데 지금까지도 그 단편적 지식은 양(量)으로나 질(質)로나 초라한 그 수준에 그대로 머물고 있다. 하다못해 인터넷 검색창에 "슈바이처"라고 넣어보면 뭔가 좀 읽을 수 있었을 것인데 어떻게 살아온 것인지 나는 그동안 동네 맛집은 자주 찾으면서도 슈바이처에 대해서는 그런 착안을 해 볼 생각이 아예 없었다. ☜ 알베르트 슈바이처(출처 : 나무위키)   슈바이처는 산업시대의 인간을 부자유하고, 집중력이 없으며, 불완전하고, "인간성을 상실한 존재"가 될 위험에 처해 있다고 규정하고, 많은 사람이 스스로 생각할 힘을 잃고 소속된 집단의 세력에 자신을 내맡긴 채 살아가고 있.. 2024. 5. 21.
바꾼다고? 싫어! 좋은 거라도 싫어! 나는 교사 시절부터 교과서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교육부에 들어가 일할 때에는 그 관심을 증폭되어 몸이 다 망가지도록 일했다.그렇게 해서 지병을 갖게 되었고, 퇴임은 내겐 그 고초의 시작이 되었고, 심할 때는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구나' 싶었다. 오늘 낮에도 문득 옛일을 떠올리다가 '아, 그건 우리나라 역사상 내가 처음 도입한 거지'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런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나는 이제 모든 걸 생각하기도 싫어졌다. 무슨 일이든 하던 대로 하면 저항이 없다. 작은 일이라도 바꾸자고 하면 거의 모든 사람이 부정적으로 받아들인다. 귀찮고, 잘못되면 책임 때문에 걱정스럽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꾸려면 웬만한 일은 아예 지시하듯 해버려야 하고 저질러 놓고 보자는 식으로 추진해야 .. 2024. 5. 20.
우리가 떠난 후에도 제자리에 남아 거실 창으로 이쪽을 바라보는 저 나지막한 산은 규모는 그저 그래도 겨울이나 여름이나 기상은 믿음직합니다.새잎이 돋아난 연둣빛이 수줍은 듯 곱던 날들이 엊그제였던 것 같은데 어느새 녹음에 싸여 저기 어디쯤 들어가 있으면 누가 무슨 수로 찾을 수 있을까 싶고, 몇몇 산짐승이나 새들, 온갖 벌레들이 한동안 마음 놓고 지낼 듯해서 더 푸르러라, 아주 뒤덮어버려라, 응원을 보내게 됩니다.우리 인간들이 걸핏하면 괴롭히지 않습니까?매연도 그렇지만 저렇게 좋은 산을 야금야금 파먹어버립니다. 이래저래 가만두질 않습니다. 하루하루의 변화가 그들에게는 결코 이로울 게 없는데도 자연은 웬만하면 그 상처를 스스로 덮어버리고 우리가 잘라버리지 않는 한 언제나 저 자리를 지키면서 저 싱그러움, 푸르름으로 눈길을 끌어주고, 내가 그.. 2024. 5. 17.
김연덕 「산과 바이올린과 피아노」 산과 바이올린과 피아노  김연덕  산속에 묻혀 있던 우리 집에서 언니는 한밤중에도 비이올린을 켜곤 했다 언니 방 방문에는 검은색 니트를 입은 카라얀 포스터가 붙어 있었고 나는 언니가 활을 꺼내 송진을 문지를 때마다 그 지휘자 옆으로 사라져버릴까 내가 모르는 부드러운 흑백의 세계로 언니가 사랑하는 외국으로 빨려 들어갈까 무서웠다 언니 방 바깥으로는 창문과 너무 가까이 뻗어 자란 나무가 있었는데 언니가 높은음을 켤 때마다 잔가지는 이곳으로 들어오기라도 할 것처럼 그리고 들어오기만 하면 기진한 채 가만히 누워 있기라도 할 것처럼 조금씩만 떨리곤 했다 가지 몇 개가 어둡게 움직이며 만들어내는 그림자에 어린 나는 활 몇 개가 동시에 움직이고 있는 것 같은 어지러움을 거칠고 고집스러운 흑백의 사랑을 느꼈다 비가 오.. 2024. 5.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