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브리엘 루아 《전지전능한 할머니가 죽었다》
이소영 옮김, 이덴슬리벨 2012
할머니는 시골에서 혼자 살고 있다. 사 남매를 둔 할머니의 자손은 여러 명이다. 이제 그 아이들 이름도 잊었고, 그 손주들은 지나는 길에 들러 단 5분도 머물지 않고 바람처럼 떠나버린다.
여섯 살 외손녀 크리스틴이 어머니의 부탁으로 마지못해 할머니 댁에 머물게 되어 따분해하자, 할머니는 집 안에 있는 물건들을 찾아 레이스 달린 원피스를 입고 멋진 모자에 여행 가방을 갖추어 곧 여행을 떠날 공주 차림의 인형을 만드는데, 그 모습을 지켜본 크리스틴은 못하는 게 없을 할머니를 좋아하게 된다.
"우린 늘 우리가 바라던 일에서 벌을 받기 마련이지. 난 삶이 편안하고 질서가 제대로 잡히기만을, 그래서 애들이 치마폭에 매달려 시도 때도 없이 칭얼거리는 일이 더는 없기만을 간절히 바랐단다. 그래, 일분이라도 나만의 시간이 나길 바란 게야. 그런데 이젠 내 시간이 백 년이나 생겼구나!"
"인생이란 그런 게야. 그게 뭔지 굳이 알고 싶다면 - 나는 할머니가 누구한테 말하는지 더 이상 알 수 없었다 - '해도 해도 끝이 안 보이는 집안일'이 쌓이고 쌓인 산더미라고 해야겠지. 다행히도 처음부터 보이지는 않지만 말이다. 안 그러면 모험에 뛰어들지도 않겠지. 그러고 나서는 진저리를 치게 되는 거야. (...)"
그 할머니의 죽음이 아름답게 그려진다.
엄마는 우리한테 뭘 이해하라는 말이었을까? 아송프시옹 강은 그때도 여전히 흐르고 있었는데! 나는 그 강의 자태를 그려보았다. 엄마가 말한 것처럼, 순간순간 빠르게 흐르다 갑자기 속도를 늦추어 작은 만을 굽이돌며 유유히 흘러가는 아름답고 변덕스러운 강의 자태를. 하지만 다른 것들도 이해해야 했다. 솔직함과 용기, 사물을 꿰뚫어 보는 듯한 시선 같은 예전에 할머니가 보여 주던 그 모습은 대체 어디로 갔는지를 말이다. 할머니는 어떻게 그런 걸 잃어버릴 수가 있을까?
가브리엘 루아는 삶을 아름답게 묘사하는 재능을 발휘한 작가이긴 하지만, 죽음은 그리기에 따라 한없이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어린 소녀 크리스틴이 매니토바 평원 끝에 한적하게 자리 잡은 할머니 댁에서 지낸 일(「전지전능한 할머니가 죽었다」), 이웃에 사는 할아버지와 친구가 되어 함께 떠난 위니펙 호수 구경(「노인과 아이」), 위니펙 주의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꿈에도 그리던 이삿짐 운송업자의 수레를 타고 다녀온 일(「이사」), 추억과 꿈의 공간 알타몬트를 그리워하는 엄마와의 여행(「알타몬트를 지나는 길」) 등 갖가지 여행을 소재로 한 네 편의 중편소설이 서정적인 그림처럼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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