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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이서수(소설) 「몸과 비밀들」

by 답설재 2024. 6. 13.

   이서수 「몸과 비밀들

《현대문학》2024년 6월호

 

 

 

 

 

 

처음엔 요영의 말이 어떤 의도를 담고 있는지 몰랐습니다. 그로부터 두 달 뒤 요영의 집에 초대받아 내밀한 고백을 들었을 때에야 비로소 깨달았지요. 요영은 성별을 구별하는 태도에 큰 반발심을 갖고 있었어요. 저는 그런 생각을 갖고 이 사회에서 살아가려면 상당히 불편하겠다고 대꾸했지만, 샤워를 마치고 돌아와 요영의 곁에 누웠을 땐 성별을 구별하지 않더라도 살아가는 데 별다른 지장이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모두가 똑같은 옷을 입고 있다면 종류를 생각해볼 것도 없이 그저 '옷'을 입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게 느껴질 거라고 상상했지요. 제 말에 요영은 고개를 저었습니다.

옷이 없는 상황에 더 가까워. 모두가 옷을 입고 있지 않아서 어떤 종류의 옷인지 생각해볼 필요도 없는 상황.

……그렇구나.

생각에 잠겨 있던 요영이 한숨을 내쉬더니 혼잣말하듯 작게 말했습니다.

타인이 나를 이해했다고 여기는 건 나만의 상상일 뿐이겠지.

내가 오해했다는 의미야?

키키가 상상한 풍경이 내가 바라보는 풍경과 같을지 알 수가 없다는 뜻이야. 슬픈 일이지.

그건 슬픈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 우리가 떠올리는 풍경이 저마다 다르다는 게 나는 좋아. 그만큼의 우주가 생겨나는 거잖아.

그런가? 하지만 내가 원하는 우주는 한 가지 모습으로 정해져 있어. 인간을 포함해서 모든 동물을 차별 없이 대하는 세상. 그런 곳에서 살고 싶어. 키키도 처음 날 봤을 때 성별이 가장 궁금했지?

나는 그랬지만, 그런 걸 궁금해하지 않는 사람도 어딘가 있을 거야.

그저 인간으로 보는?

그저 동물로 보는. 모두가 동물일 뿐인.

 

 

성별의 구별을 이야기하는 이 소설이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현대문학》6월호에서 보고 조금 옮겨 썼습니다. 이 작가가 《현대문학》에 발표한 소설을 세 번째로 보았습니다. 「몸과 여자들」(2022년 3월), 「여성의 몸 보기」(2023년 3월), 그리고 「몸과 비밀들」(2024년 6월).

 

"타인이 나를 이해했다고 여기는 건 나만의 상상일 뿐이겠지."

"키키가 상상한 풍경이 내가 바라보는 풍경과 같을지 알 수가 없다는 뜻이야. 슬픈 일이지."

"그런가? 하지만 내가 원하는 우주는 한 가지 모습으로 정해져 있어. 인간을 포함해서 모든 동물을 차별 없이 대하는 세상. 그런 곳에서 살고 싶어. 키키도 처음 날 봤을 때 성별이 가장 궁금했지?"

 

요영이라는 인물의 저 말들도 다시 들여다보았습니다.

 

혹이나 싶어서 덧붙이는 건, 이런 소설을 보고 나를 가르치려 든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가르치려 드는 것과 다름을 보여주는 건 다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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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수  2014년 『동아일보』 등단. 소설집 『젊은 근희의 행진』. 중편소설 『몸과 여자들』. 장편소설 『마은의 가게』『헬프 미 시스터』등. 〈젊은작가상〉〈이효석문학상〉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