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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레비-스트로스 《야생의 사고》

by 답설재 2024. 6. 9.

레비-스트로스 《야생의 사고》

안정남 옮김, 한길사 2013

 

 

윗쪽 사진은 이 책 화보에 실린 '도마뱀 모양의 막대기'(폴리네시아) : 도마뱀은 질병과 죽음을 나타낸다. 신이 도마뱀을 보낼 때 아픈 부위를 꽉 물어버리라고 하므로 이것은 생명을 나타내기도 한다.

 

 

 

《슬픈 열대》가 세상 곳곳의 오지를 찾아다니며 쓴 책으로, 내 동기들은 장관도 하고 그러면서 잘 사는데 나는 이 꼴로 이렇게 돌아다닌다며 한탄한 부분을 보고 나자, 읽던 책을 들고 한참을 생각하거나 더러 눈물을 글썽거리며 읽었다면, 이 책《야생의 사고》는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나도 철학부터 공부하거나 레비-스트로스의 자취가 남은 곳을 찾아가 문화인류학을 전공하고 싶은 마음을 갖게 한 책이었다.

 

 

동식물의 종(種)이나 변종(變種)에 대하여는 세밀하게 분류하여 명칭을 부여할 줄 알면서도 '나무'라든지 '동물'이라든지 하는 개념들을 표현하는 용어는 구비하지 못한 언어들이 있다. 이러한 언어를 무시하는 풍조는 오래되었다. 이러한 예들은 원시인들이 추상적 사고에 무능함을 속단하는 불합리한 가설을 증명하는 데 이용되기도 한다. 반면에 추상적 관념어의 풍부함이 문명화된 사회의 독점물이 아님을 밝혀주는 다른 예들은 경시되어 왔다. 북미 서북부에 사는 인디언들 사이에 널리 쓰이는 '치누크어'를 한 예로 들어보면, 그들의 모든 소유물이나 특질들은 거의가 추상적 언어로 표현되고 있다. 보아스는 "이러한 표현방법은 내가 알고 있는 다른 어느 언어에서보다도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 악인이 그 가엾은 아이를 죽였다'라는 말이 치누크어에서는 그 사나이의 악이 그 아이의 가엾음을 죽였다'라고 표현된다. 그런가 하면 '그 여자는 너무 작은 바구니를 사용했다'라는 표현은 '그 여자는 양지꽃의 뿌리들을 조개 바구니의 협소함 속에 넣었다'라고 표현된다.

 

이렇게 시작된다.

물론 차근차근 그 근거를 이야기해 준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사실상 개념의 한계 설정이란 언어마다 다르다. 프랑스 백과전서에서 '명사'라는 항목의 필자가 이미 18세기에 정확히 관찰한 바와 같이 추상적 언어의 사용은 그것이 지적 능력의 수준을 나타내는 것이라기보다는 그 민족사회 속의 특정 집단이 지니고 있는 관심의 차이에서 온다.

 

어느 문명사회에서나 사람들은 그들의 사고 방향이 객관성을 띠고 있다고 과대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미개인들은 단지 생리적·경제적 요구에 의해서만 움직일 뿐이라는 편견을 우리는 갖고 있지만 미개인 역시 같은 방식으로 우리를 평가하며 그들의 지적 욕구가 우리의 그것보다 훨씬 조화로운 것이라 생각한다.

 

사례도 얼마든지 보라는 듯 제시되고 있다(예).

 

필리핀 하누노족의 빈랑나무 열매 씹기 같은 아주 간단한 풍습만 하더라도 네 가지 '애리커' 열매와 이에 필요한 여덟 가지 첨가물, 그리고 다섯 가지 비틀과 이에 필요한 다섯 가지 첨가물에 대한 지식을 필요로 한다.

 

 

마지막 장 마지막 부분은 다음과 같다.

 

야생의 사고가 취급할 수 있는 특성은 물론 과학자가 연구대상으로 하는 특성과 같지 않다. 자연계는 한쪽은 가장 구체적인, 다른 쪽은 가장 추상적인 양극단에서 접근할 수 있다. 바꾸어 말하면 감각적 특성의 각도와 형식적 특성의 각도이다. 그러나 이 두 개의 일은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그리고 관점에 갑작스런 변동이 없는 한 당연히 합류하여 하나가 되었어야 했다. 이것으로 알게 되는 것은 이 두 개의 길은 시간과 공간에서 상호 무관한 가운데 두 개의 변별적인 동등한 차원의 실증 과학을 만들어내었다는 점이다. 한쪽은 감각적 질서에 기반을 두고 신석기시대에 개화하여 문명의 여러 기술(농업, 목축, 제도, 직포, 식물(食物)의 보존과 조리법 등)을 이룩하게 하였고 지금도 이 수단에 의하여 인간의 기본적 욕구를 충족시켜 준 과학이고, 또 다른 쪽은 인식의 수준에서 출발하여 현대 과학을 꽃피운 또 하나의 과학이다.

(...)

가장 현대적인 모습의 과학 정신은 야생의 사고가 예견해왔던 대로 야생의 사고와의 만남을 통해서 야생의 사고의 원리를 정당화하고 그 원리를 회복하는 데 공헌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터득할 때 인간은 야생의 사고의 정신을 충실히 지킬 수 있을 것이다.

1961. 6. 12~10.16

 

처음과 끝만 옮겨 쓰니까 이렇지, 내게는 결코 간단치 않은 책이었다.

 

제1장 구체의 과학

제2장 토템적 분류의 논리

제3장 변환체계

제4장 토템과 카스트

제5장 범주, 원소, 종, 수

제6장 보편화와 특수화

제7장 종으로서의 개체

제8장 되찾은 시간

제9장 역사와 변증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