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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J, 마침내 2021학년도가 지나갑니다

by 답설재 2021. 12. 23.

 

 

J.

내가 퇴임한 그해, 그러니까 학교라는 세상으로 치면 2010학년도 1학기에 나는 난생처음 한가했습니다.

교사들은 여전히 바빴지요? 바쁘지 않을 리 없습니다.

대한민국 교사들은 언제나, 아이들의 그 예쁜 눈을 들여다볼, 혹은 그 표정을 잠깐 일별할 여유도 없이 매 순간 바쁘니까. 바쁘지 않으면 이상해서 마침내 바쁜 게 미덕이 되었지요? 기이한 미덕.

그 기간에 나는 나 혼자인 나의 세상에서 이런저런 생각이나 하며 지냈습니다.

그렇게 지내는 게 어쩌면 그렇게도 어색하던지......

내가 이래도 되나? 괜찮을까? 순간 순간 걱정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며 어처구니없어했습니다.

 

J.

그땐 자주 생각하고 뭔가 안타까워하기도 하고 궁금해하고 그랬습니다.

'지쳤나?'

'무슨 일 있나?'

그런 생각 하고 또 하고,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러다가 2010년 2학기, 2011년, 2012년...... 마침내 12년이 흘러서 2021년이 가고 있습니다. 내가 사라진 그 이듬해에 입학한 아이가 졸업하고 이듬해에 입학한 아이가 또 졸업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젠 그 세계가 전혀 궁금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J.

난 내가 애착을 가지고 나의 모든 걸 다 바친 그 세상에서, 나를 이용하려는 사람들만 보이던 그 시간이 다 지나니까 내가 스스로 애틋한 마음으로 교육에 대해 이야기해줄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났구나, 교육에 대한 나의 끝없는 애착을 안타깝게 여긴 누군가가 선물처럼 나타났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나의 열정, 나의 사랑, 나의 모든 걸 이야기해줄 사람...

행복했습니다.

끈처럼 이어지는 선물 같은 사람.....

 

그러나 그렇게 허전한 세월이 가고 또 가고 마침내 2021년이 가고 있습니다.

나의 교육관을 이어 줄 사람? 쑥스럽고 주제넘은 그 생각을 하지 않게 된 건 사실은 오래됐습니다.

지나간 시간은 다시 올 리 없고,

내 세월의, 나를 자주 지치게 하던, 다시 하라면 할 수도 없을 것 같은, 그 수많은 일들이 이제는 한없이 그리워져서

늘 너무나 바쁘다는 사람들이 행복해 보이긴 하지만 그건 어떤 삶을 살아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뿐입니다.

다 지나간 걸 나는 후련해하게 되었습니다.

그 강조차 건너며 나는 나에게 남은 시간이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J.

잘 지내시기 바랍니다.

이젠 대한민국 교사의 이니셜이 되어도 좋을 J.....

 

 

추신 : 내가 그대를 잊기 전에 그대가 먼저 나를 잊은 것은 다행입니다. 내가 미안해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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