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내가 퇴임한 그해, 그러니까 학교라는 세상으로 치면 2010학년도 1학기에 나는 난생처음 한가했습니다.
교사들은 여전히 바빴지요? 바쁘지 않을 리 없습니다.
대한민국 교사들은 언제나, 아이들의 그 예쁜 눈을 들여다볼, 혹은 그 표정을 잠깐 일별할 여유도 없이 매 순간 바쁘니까. 바쁘지 않으면 이상해서 마침내 바쁜 게 미덕이 되었지요? 기이한 미덕.
그 기간에 나는 나 혼자인 나의 세상에서 이런저런 생각이나 하며 지냈습니다.
그렇게 지내는 게 어쩌면 그렇게도 어색하던지......
내가 이래도 되나? 괜찮을까? 순간 순간 걱정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며 어처구니없어했습니다.
J.
그땐 자주 생각하고 뭔가 안타까워하기도 하고 궁금해하고 그랬습니다.
'지쳤나?'
'무슨 일 있나?'
그런 생각 하고 또 하고,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러다가 2010년 2학기, 2011년, 2012년...... 마침내 12년이 흘러서 2021년이 가고 있습니다. 내가 사라진 그 이듬해에 입학한 아이가 졸업하고 이듬해에 입학한 아이가 또 졸업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젠 그 세계가 전혀 궁금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J.
난 내가 애착을 가지고 나의 모든 걸 다 바친 그 세상에서, 나를 이용하려는 사람들만 보이던 그 시간이 다 지나니까 내가 스스로 애틋한 마음으로 교육에 대해 이야기해줄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났구나, 교육에 대한 나의 끝없는 애착을 안타깝게 여긴 누군가가 선물처럼 나타났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나의 열정, 나의 사랑, 나의 모든 걸 이야기해줄 사람...
행복했습니다.
끈처럼 이어지는 선물 같은 사람.....
그러나 그렇게 허전한 세월이 가고 또 가고 마침내 2021년이 가고 있습니다.
나의 교육관을 이어 줄 사람? 쑥스럽고 주제넘은 그 생각을 하지 않게 된 건 사실은 오래됐습니다.
지나간 시간은 다시 올 리 없고,
내 세월의, 나를 자주 지치게 하던, 다시 하라면 할 수도 없을 것 같은, 그 수많은 일들이 이제는 한없이 그리워져서
늘 너무나 바쁘다는 사람들이 행복해 보이긴 하지만 그건 어떤 삶을 살아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뿐입니다.
다 지나간 걸 나는 후련해하게 되었습니다.
그 강조차 건너며 나는 나에게 남은 시간이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J.
잘 지내시기 바랍니다.
이젠 대한민국 교사의 이니셜이 되어도 좋을 J.....
추신 : 내가 그대를 잊기 전에 그대가 먼저 나를 잊은 것은 다행입니다. 내가 미안해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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