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달픈 인생길'
이렇게 써놓고 어이없게도 일단 미소를 짓는다.
하기야 삶이란 결국 거의 슬픔으로 요약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며칠 전 한 선배의 부음을 들었는데 한번 모이고자 한다는 연락을 하면 늘 호의적이던 평소의 그분을 생각하니까 슬픔이 밀려왔다.
1월 22일 계묘년 설날 첫새벽에는 두 자루의 꿈을 꾸었다.
그믐날 저녁에는 '설날에라도 좋은 꿈을 꾸었으면' 싶어했는데 헛일이었다.
먼저 꾼 꿈은 절벽 같은 산을 오르내리는 꿈이었다.
애써서, 천신만고로 오르내리다가 '이건 꿈이라도 너무나 힘들구나!' 하며 깎아지른듯한 산마루에서 들판을 내려다보며 힘겨워하고 있었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겠다고 했을 때 기가 막히고 마음이 비통한 것은 비록 아난다 등 제자들만은 아니어서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탄식했다는데, 무례하게도 그때 사람들의 심정을 나타낸 시가 생각났다.
그 시가 내 심정에 어울린다는 의미는 천만 아니지만 생각났으니까 일단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馬鳴菩薩造 北涼天竺三藏曇無讖 역 "시로 쓴 부처님의 생애 《佛所行讚》정왜 우리말 역, 도서출판 도반).
25 - 32
탐욕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과 하늘들은
모두 다 크게 두려워하였나니
마치 사람이 넓은 못에서 놀다가
길이 험하여 마을까지 이르지 못하였을 때
다만 거기까지 가지 못할까 두려워
마음은 두렵고 몸은 바쁜 것과 같았다.
(......)
나는 더 이상 그 꿈속에 있기가 싫었다. 그렇게 절벽 아래를 내려다보는 지점에서 이 꿈을 마치자는 결정을 내리고 잠시 눈을 떠서 다시 그 꿈을 되돌아보았고, 되돌아보는 것조차 힘들어 돌아누워서 다시 잠 속으로 들어갔다.
두 번째 꿈은 졸업식 전날의 교실이었다.
그놈들은 내가 54년 전에 처음 만난 놈들이었으니 지금은 대략 쳐도 다 65세 이상이겠는데 하필이면 그놈들이 등장한 것이었다.
내일이 졸업식인데 나는 아직 진도를 다 나가지 못했고, 좀 가벼운 교과지만 몇 장 덜 가르친 과목이 있는데다가 지금 수업 중인 국어로 말할 것 같으면 한 주제 하고도 반은 남아 있었다.
그런데도 짓궂은 두어 녀석은 일부러 그러는 것처럼 자꾸 수업을 방해하고 있었다.
내가 나서서 해결해 주고 이제 수업을 해볼까 싶으면 또 무슨 핑계를 대고 일어서고 또 일어서고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겨우 "좀 앉아봐라, 이놈들아!" 그 한 마디뿐이었다.
'아, 고달픈 인생이여!'
나는 지금도 절벽처럼 가파른 산이나 오르내리고 이미 65세가 넘은 놈들 졸업시킬 생각에나 머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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