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23

이슬방울에 햇살이 지나는 순간 #1 여직원 두엇이 앉아 있는 강당 출입구 안내 데스크를 지나자 길을 안내하는 학생이 단정하게 서 있었다. 이런 일은 필요가 없는데도 굳이(생각도 없이) 관례에 따르고 있다는 생각을 하며 걷는다. 안내해주지 않아도 그 길로 갈 수밖에 없는 복도를 지나자 잘 차려입어서 더욱 아름다운 L위원장이 꽃다발과 무슨 두루마리 같은 걸 가지고 분주히 나오고 있었다. 나를 맞이하려고 그렇게 나오는 건 보나 마나이고 내가 알은체 했는데도 '저렇게 허접한 차림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그냥 지나쳐 가고 있었다. #2 이동하라는 발령을 받고 나서 그동안 근무한 곳의 주변을 살펴보며 그곳 경치가 아름답다는 걸 발견한다. 울긋불긋 단풍이 들기도 한 풍경에 감탄하며 나중에 정선하기로 하고 여기저기 멋진 사진이 될 듯한 곳들을.. 2017. 12. 10.
흐트러진 시계 바늘 명패가 보이지 않았다. '회복'이면 좋겠다. 다음은『現代文學』 7월호. 조해진 단편소설 「눈 속의 사람」 첫 대문이다. 30분 뒤에 출발하는 태백행 버스표 두 장을 사서 손목시계를 내려다보는데 이곳 고속버스터미널 대합실에서 막연히 여진을 기다렸던 7년 전의 겨울이 떠올랐다. 그때 내 시계엔 숫자와 눈금이 없었다. 나에게 아무것도 없었던 시절이었다. 돌연!……. '아, 그래! 그런 꿈을 여러 차례 꾸었지!' 손목시계의 바늘들이 모두 빠지고 흐트러져서 그것들을 제자리에 꽂으려고 애쓰는 꿈. 대충 맞추었는가 싶어 하면 와르르 다시 무너지거나 제 시각을 가르치지 못하거나……. 아예 영 맞추어지지 않을 때도 있었지……. 그 꿈들을 잊고 지낸 것이다. 마음이 자꾸 흐트러지던 나날이었을 것이다. 그런 세월이 지나간 .. 2016. 9. 1.
"이거 네가 그렸지?" "이거 네가 그렸지?" Ⅰ "이거 네가 그렸지?" 어머니는 그렇게 물을 것입니다. 저승에서 나를 기다립니다. 벌써 44년째입니다. 48세의 초겨울, 노란 하늘을 날아 그곳으로 갔으니까 기다리다가 지쳤을 것입니다. 어머니는 생전에도 나 때문에 지쳤고, 죽어서도 나 때문에 지쳐야 하는 운명입.. 2016. 7. 4.
2015년, 아쉬움과 미련에 관한 꿈들 2015.10.10(새벽) 교실 정리 교실을 정리하고 앉아 있었다. 서너 개의 수반에서 식물들이 제법 잘 자라고 있고, 그 중 하나의 수반에는 기묘하게 생긴 무가 가로놓여 있었다. 그러다가 서울역 휴게실 같은 곳에서 대학 동기들 대여섯 명이 한담을 나누는 장면으로 바뀌었는데, 커다란 화분의 초록잎이 사람의 손길이 가까이 가면 홍색으로 변하는 걸 신기해하고 있었다. 나도 손을 대어보며 '이 식물은 흡사 사람처럼 부끄러워하는구나' 생각하였다. 꿈에서 깨어나며 '최근에는 교실을 정리하는 꿈을 자주 꾼다.'고 생각했다. 2015.11.3.0:15 "엄마, 엄마!" 정체가 불분명한 두어 명으로부터 어떤 압박을 받고 있었다. "아직 마스크도 벗지 않았잖냐?"고 항변하며 그 마스크를 벗는데 안경이 걸려 함께 벗겨졌다.. 2015. 12. 31.
2015년, 방황과 탐색의 꿈들 2015.7.21(화) 전문성? 협회 간부와 직원 몇 명이 환영하면서 자료의 검토 결과를 보여주었다. 그들이 바꾼 용어는 화이트로 지워 공백이 되어 있었다. 정갈하게 다루긴 했어도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비교할 수 없는 자료였다. 짐작하기로는 K사 원로 L이 검토한 것 같았다. 자료관에 들어갔더니 예전에 내가 주관하여 만든 자료들도 상당한 양이 보관되어 있는데 한두 가지가 아니어서 한꺼번에 챙겨 보기에는 무리였다. 데이터를 과학적으르 분석하는 방법을 배우지 않고 늘 건성으로 정리하고 만 자신을 한탄스러워했다. 협회측이 보여주는 그 자료를 하나하나 분석하다가 잠이 깨었다. 늦잠이었다. 2015.7.22(수) 형상 몰아내기 벽쪽으로 커텐에 가려져 있는 무슨 형상을 보았다. 불상처럼 생겼지만 화려한 치장을 .. 2015. 12. 3.
2015년, 불안하고 초조했던 날들의 꿈 2015.1.1(목). 새벽. 아직도 학교 그리고 계획 이야기 멋진 양수용 책상 앞에 교감인듯 한 이가 서 있다. 연간계획을 검토하고 있는 그에게 수정에 필요한 의견을 이야기했다. 나는 교사 신분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권위가 좀 있는 입장이어서 그도 내 제안을 거부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 계획서는 일반적, 전통적인 모양새와 달리 표 안에 다시 사진과 도표들도 들어 있었는데, 그건 내가 그렇게 조치해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렇지만 내가 그런 것들을 다시 검토할 예정이고 내용에 대해서도 전체적으로 또 살펴보겠다고 하자, 그는 "예, 예, 알았습니다―." 하고 건성으로 대답했다. 그 태도로 보아 "당신이 하겠다면 어쩔 수 없지만, 꼭 그렇게 해야 하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내가 실없.. 2015. 4. 1.
2014년의 꿈들 꿈, 2014 거장의 『꿈의 해석』은 그만두고, 그냥 소소한 얘기입니다. 꿈은 늘 좀 불안하면서도 때로는 어처구니가 없거나 황당하다는 느낌을 줍니다. '어째서 내가 이런 꿈을 꾸는 거지?' 그렇지만 그 대신 나 혼자만 감상할 수 있는 영화 같은, 그런 재미를 제공해 주는 것이 꿈이기도 합니다. 잠을 자면 으레 꾸게 되는데, 깨어나서 '꿈을 꾸었구나' 할 수 있는 것은 운 좋게도 꿈의 어느 부분이 '캡처'된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말하자면 꿈은 늘 꾸는 것이지만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안타깝게도 대부분 영영 잊어버리게 되고, '꿈을 꾸었구나' 할 때 생각나는 그 장면은 소설이나 위인전의 중간 중간에 곁들여진 삽화 정도이지 전체는 아니어서 꿈 전체가 긴 소설이라면 기억해낼 수 있는 장면은 그 소설, 위인전의.. 2015. 2. 17.
로토 이야기 로토 이야기 "책만 읽으면 뭐가 나오냐?", 그 이야기를 하면서 돈을 더 갖고 싶은 욕심이 없다고 했지만, 사실은 돈이 왕창 생기면 좋겠습니다. '왕창'? 그게 얼만가 하면, 로토 역대 최고 배당금이 95억원이었다는데, 그것 가지고도 부족합니다. 아내는 복권을 살 때마다 "이게 당첨만 되면 .. 2013. 9. 20.
고운기 「코피」 코피 고운기 여자가 오줌을 누되 꼭 이렇게 싸란답니다 마을 뒷산에 올라가 한번 퍼지르면 온 동네가 잠길 정도 물론 이것은 꿈속의 이야기입니다 고려 태조 왕건의 증조할머니는 진의인데 언니가 꾼, 온 동네 잠기는 오줌 꿈을 샀다는군요 여기까지 듣다 보니 어라, 이건 김유신 동생 보희와 문희 이야기 아닌가 생각하실 분 많으시겠으나 그것은 삼국유사에 실렸고 이것은 고려사에 나오는데 꿈 판 다음 날 귀한 손님 맞으라는 아버지 말씀에 언니는 문지방을 넘다 발이 걸려 넘어져 코피가 주루룩 얘야 재수 없다 동생 들여보내라 이 대목이 아주 다르지요 언니는 가장 운 나쁜 여자 언니는 하필 거기서 넘어지고 하필 코가 깨져 피를 흘렸단 말입니까 크건 작건 제 것이어서 제 복 담긴 꿈이라면 팔지 마시라고 또 한 번 심심한 옛날.. 2013. 2. 28.
마지막 날 밤의 꿈 나는 '교무실'의 뒷쪽 구석, 별도로 마련된 책상에 앉아 있었습니다. 교사들은 회의실이나 세미나실에서처럼 앉은 것이 아니라 옛날식 저 '지시·명령 전달형' 회의실에서 회의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며 두른두른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부산한 분위기가 가라앉자, 누군가 올해 새로 임명될 부장교사와 담임교사들을 호명했습니다. 순간적으로 '저 호명이 끝나면 내가 임명장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그게 아니었습니다. 저 앞쪽으로 얼핏 새로 온 교장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교장, 교감, 교무부장은 모두 남성인 것 같았습니다. 이제 제가 할일이 끝났다는 걸 알아차렸습니다.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교무실 밖으로 나왔습니다. 교무실 문간에는 그곳에 벗어놓았을 제 신발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교무보조업무를 맡은 이를 .. 2010. 3. 5.
옛 제자 학교 뒤로는 구릉이 펼쳐져 있고, 구릉의 대부분은 꽃밭과 풀밭, '사색의 길'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넓게 펼쳐진 그 구릉의 관리를 위해 아이들이 동원되는 일은 없습니다. 꽃밭과 풀밭은 웬만하면 그냥 두어도 해마다 꽃을 피우고 잘 어우러지기 때문입니다. 그 넓은 구릉을 교사 '파란편지'가 혼자서 다 관리합니다. '파란편지'가 특히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는 부분은 꽃밭이나 풀밭, '사색의 길'이 아니고 관목림과 자작나무숲, 저 아래 평지로 이어지는 코스모스꽃밭 같은 특별한 곳들입니다. 꽃밭이나 풀밭, '사색의 길'에는 관심이 전혀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사색의 길'만 해도 그렇습니다. 교장 선생님께서 "아이들이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아니냐?"고 따졌을 때, '파란편지'는 그 비난에는 대꾸도 하지 않다가 ".. 2010. 2.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