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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이슬방울에 햇살이 지나는 순간

by 답설재 2017. 12. 10.



 

#1

 

 

여직원 두엇이 앉아 있는 강당 출입구 안내 데스크를 지나자 길을 안내하는 학생이 단정하게 서 있었다. 이런 일은 필요가 없는데도 굳이(생각도 없이) 관례에 따르고 있다는 생각을 하며 걷는다. 안내해주지 않아도 그 길로 갈 수밖에 없는 복도를 지나자 잘 차려입어서 더욱 아름다운 L위원장이 꽃다발과 무슨 두루마리 같은 걸 가지고 분주히 나오고 있었다. 나를 맞이하려고 그렇게 나오는 건 보나 마나이고 내가 알은체 했는데도 '저렇게 허접한 차림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그냥 지나쳐 가고 있었다.

 

 

 

#2

 

 

이동하라는 발령을 받고 나서 그동안 근무한 곳의 주변을 살펴보며 그곳 경치가 아름답다는 걸 발견한다. 울긋불긋 단풍이 들기도 한 풍경에 감탄하며 나중에 정선하기로 하고 여기저기 멋진 사진이 될 듯한 곳들을 스마트폰에 담았다.

 

마지막으로 한 허접한 방에 들어가자 몇몇 남자 직원이 각자 책상에 앉아 기념품을 정리하고 있었다. 내 행사니까 나도 좀 챙겨 가져가고 싶다고 하고 박스를 뒤적여보았더니 무슨 선거운동 도구처럼 내 이름이 크게 적힌 옷가지도 보였다. 욕심이 나서 챙긴 물건은 좋은 것은 아니었고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것들이었다. 돌아 나오며 인사를 해도 그들은 본 체 만 체였다.

 

머썩해져서 동행을 할, 사실은 이미 고인이 된 선배 구 교장선생님을 찾아보았다(고인이 된지 벌써 십 년이 가깝다. 교과서 원고를 많이 썼고 '이렇게도 산다'는 수필집을 남겼다). 어느 가게에 들어가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3

 

 

이슬방울에 햇살이 지날 때처럼 빛나는 순간들이 더러 있었다.

 

새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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