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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S사무관

by 답설재 2017. 11. 30.

이광복 "노을"

 

 

 

1

 

일주일에 두 번쯤 경춘선 열차를 탑니다. 하행선 좌석은 가능하다면 6D, 짝수 창 측은 모자 같은 가벼운 물건을 걸어둘 수도 있고 밖을 블라인드를 내리지 않고 밖을 내다볼 수도 있습니다.2

 

간간히 신문 인사란에서 한두 번 그 이름을 본 듯도 하지만, 실제로 만나기로는 이십여 년만인 S 사무관은 5B에 앉아 있었습니다. 맞은편 한 줄 앞 통로 쪽이므로 그의 오른쪽 뒷모습을 마음 놓고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같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건 대개 1년 간이지만 1년을 함께하면 그 얼굴이나 이름, 혹은 무슨 이미지 같은 평생 잊을 수 없는 무엇이 있기 마련인데 '아이들(?)'은 꼭 "저 기억하시겠어요?" 어쩌고 하며 미심쩍어하거나 호들갑을 떱니다. 내가 바보이기나 노망이라도 났다고 소문이나 난 것처럼……. 모를 리가 있습니까? 1년이나 함께했는데……. 그 1년간 온갖 일들이 벌어졌는데……. 내가 이런저런 일들과 제 이름, 얼굴까지 깡그리 다 잊어버렸으면 좋을 사람이 대부분이겠지만……. 그럴 때 나는 분명히 고의가 아닌 것 같으면 "얘 좀 봐! 내가 어떻게……." 하지만, 정말로 '얘 좀 봐라' 싶거나 그쪽이 술에 취했거나 호기심으로 일단 연락하긴 했지만 그들의 기대와 달리 아직 살아 있는 나를 끔찍하게 여겨서 다시는 연락하지 않을 것 같은 상대에게는 "글쎄…… 알 것도 같고 자칫하면 헛다리 짚을 것 같기도 하고……" 어쩌고 하면서 죽진 않았지만 결국 노망이 났거나 바보가 된 것처럼 시작하기도 합니다.

 

 

2

 

자칫하면 얘기가 딴 길로 가겠습니다. ▶내가 그와 함께 근무한 기간은 딱 6개월 간이지만 5B에 앉은 그는 S 사무관이 분명했다는 것, ▶서먹서먹해서 '저쪽도 나를 알아보는 건 아니겠지' 편한대로 짐작하고 고개를 돌리는 경우도 있지만 사람은 그 누구라도 딱 보는 순간 그게 나라는 걸 적어도 나만큼은 알아챈다는 것, ▶다행히(!) 그날 그 열차 안에서는 그가 내 앞자리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 자리를 찾아 앉으며 두리번거리다가 나를 발견하지만 않았다면 나는 그를 알아보았지만 그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을 가능성이 컸을 것이라는 얘기를 하려는 것입니다.

 

S 사무관! 그 곱슬머리가 그렇고, 좀 날렵해 보이는 체구와 얇고 탄탄해 보이는 얼굴 근육도 그렇고, 전체적으로 단정한 느낌을 주는 모습, 이를테면 갈색 테 안경, 줄무늬 남방, 감색 정장, 엷은 황토색 코트, 갈색 구두…… 아무리 오른쪽 뒷모습이라 해도 내가 관찰할 수 있었던 모든 점에서 그는 S 사무관이었습니다.

심지어 수능시험을 며칠 앞둔 모범 입시생이 책에 몰두하고 있는 것처럼 , 자칫하면 누가 자신의 그 책을 낚아채기라도 할 것처럼 역사에 관한 무슨 책을 감싸 안고 들여다보는 모습조차 분명했습니다.

 

 

3

 

그와 내가 함께 근무한 그 6개월은 떠올리기도 싫지만 그렇게 싫은 그 이유가 그에게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단지 그 파트의 분위기가 싫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 개인적으로는 미안해지는데 나는 단 한 번도 그에게 미안하다는 내색을 하지도 못했습니다. 더구나 우리는 만나자마자 곧 특수한 업무를 맡게 되었는데 그것 가지고도 그리 원활한 관계를 유지하지 못했습니다. 그건 장관이 자신의 정책보좌관에게 초중등 학생들이 읽어야 할 도서목록을 만들라는 것이었는데 그 업무를 그 보좌관과 S 사무관 나, 셋이서 맡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일은 우리나라에서는 여간해서는 이룰 수 없는, 앞으로도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은, 어쩌면 무모한 시도였지만,3 다시 생각하면 사업의 성공 여부를 떠나 참 획기적인 일이어서 실패를 한다 하더라도 한번 혼신을 다해볼 만한 일이었는데 우선 그 일을 맡은 우리는 셋 다 견해가 뚜렷해서 서로 간에 고분고분한 점이 하나도 없는 사이라는 것부터 확실했습니다.

보좌관은 보좌관이어서, 사무관은 사무관이어서, 교육연구사는 일반행정직이 아니라 자존감에 찬 전문직이어서 서로간에 "나는 당신의 수하가 아니다!"라는 식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들 둘은 그렇다 치고 내가 잘못이었습니다. 내가 중간에서 이쪽에도 "예!" 저쪽에도 "예!" 했더라면 우선 서로 간에 원활한 관계가 유지되었을 것 아닌가 싶은 것입니다. 교육연구사는 일반행정직으로 치면 잘해봐야 6급일 것이니 그랬다고 해도 흉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건 굳이 내가 연구사 시절이었기 때문에 그렇다는 건 아닙니다. 설사 1급이 하는 일부터 그 어떤 업무든 맡을 수 있는 장학관이 되어 있었다 하더라도 모든 건 내 마음에 달려 있었다는 뜻입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곧 그 부서에서 다른 부서로 옮겼기 때문에 그 일이 이루어지지 않은 이유를 전혀 모른 채 지냈습니다. 보좌관도 사무관도 나도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이었으니 그 일을 잘 이루어냈더라면 얼마나 좋을지 지금 생각해도 애석한 일이지만 셋 다 찬물에 기름 돌듯 하는 걸 누가 눈치채서 인사이동이 이루어졌는지 다른 이유 때문인지 그것도 몰랐고 나는 그에 대한 관심조차 없었습니다.

 

 

4

 

그 S 사무관은 어느 기관에서 퇴임을 할 때는 아마도 부이사관은 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지금 이렇게 앉아 그 춘천행 열차 안에서 "S 사무관님! 그때 제가 건방지게 굴어서 미안합니다." 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렇게 하지 못하고 내가 내려야 할 역에서 일어서 걸어 나오며 나는 그가 앉은 좌석을 뒤돌아보지도 않았습니다.

 

S 사무관에 대한 나의 처신은 결국 오늘 이 시각까지는 이렇게 되었습니다.

뒤를 돌아보고 S 사무관이 분명하다는 것이라도 확인했어야 할까요?

아니겠지요? 사과를 할 마음이 없으면 그가 S 사무관이면 어떻고 아니면 또 어떻겠습니까?

내려야 할 역에 도착하기 전에 확인하고 사과하고 손이라도 한번 잡아봤어야 할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또 생각합니다. 그렇게 다음에 또 그 열차에서 만난다 해도 선뜻 그렇게 할 것인지는 의문입니다.

 

 

 

...........................................

1. 옛 문교부 편수국 수학과 편수관 역임, 전 단국대학교 수학과 교수.
2. 뒷자리나 앞자리의 창문을 열 수 있는 자리에 여성이 앉으면 아늑함을 즐기고 싶은지 일쑤 가림막을 내려 차창 너머 풍경을 차단해 버립니다.
3. 누군가 장관에게 '어린왕자'만 해도 번역본이 50종은 될 것이라고 했더니 장관은 그럼 그 50종을 다 목록에 넣으면 될 것 아니냐고 했습니다. 그렇게 말한 우리는 그 작업이 무모하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대답한 장관은 기필코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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