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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작은어금니'의 인내

by 답설재 2017. 10. 31.

 

 

 

 

 

 

 

아내는 나를 엄살이 심한 인간으로 규정했습니다. 어디가 아프다고 하면 일단 걱정은 하지만 차도가 보이면 곧 "걸핏하면 엄살을 피운다"고 핀잔을 주었습니다.

그 핀잔을 듣기가 거북하고 자존심이 상해서 웬만하면 몰래 약을 먹기도 하고 좀 참아보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또 이가 아프고 시리기 시작한 건 지난 추석 때부터였습니다. 당연히 그게 처음은 아니었습니다. 상하좌우의 큰어금니 두 개 중 한 개씩은 오래전에 제거해버렸습니다.

그렇게 하고 나니까 좀 섭섭해서 의사에게 질문했었습니다. "이제 어떻게 하죠?"

그 의사는 의아하다는 듯 되물었습니다. "뭘 어떻게 합니까?"

('뭐 이런 양반을 봤나!') 나도 되물었습니다. "임플란트를 한다든지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어서요."

의사가 또 되물었습니다. "어금니가 하나씩 없으니까 많이 불편합니까?"('혹 "죽을 것 같습니까?' 하고 묻고 싶었던 건 아닐까?')

"아니, 뭐 특별히 불편한 건 없고 사탕을 먹으면 이리저리 달그락거리며 돌아다녀서 당황스럽기는 하지만 식사 같은 걸 하는 데는 크게 불편하거나 그렇진 않습니다."

"그러면 그냥 지내셔도 좋을 듯한데……. 사탕은 먹지 않아도 되고……."('곧 죽을 건데 치아까지 잘 챙기고 싶어요?' 묻고 싶은 건 아니었을까?')

"전에 동네 치과에서는 그냥 두면 그 옆의 치아가 쓰러진다고 하던데……."

"그거야 그렇게 눕지 말고 일어서라고 하면 되지 않겠어요?"

"? ……!"

"인프란트를 하면 병원 측에서는 돈을 더 많이 벌고 좋을 텐데요?" 하려다가 그건 주제넘은 참견일 것 같아서 그만두었습니다.

 

그동안 그 의사는 한 개씩 남은 큰어금니가 말썽을 부리면 당장 제거해버리자고 하다가 그 통증이 다시 가라앉아 내가 미련을 보이면 그럼 몇 달 더 쓰라고 유예기간을 주곤 했는데 이번에는 위 왼쪽 작은어금니 두 개가 합동으로 시리고 아프게 된 것이었습니다.

나는 큰어금니 문제도 아직 해결되지 않았으므로 작은어금니 문제는 일단 덮어두기로 '개인적인' 판단을 해버렸고 시리거나 말거나 아프거나 말거나 내색을 하지 않고 지내는 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자연히 그 통증 때문에 저절로 인상을 쓰게 되는 일이 잦게 되고 아내는 더러 그렇게 찌푸린 인상을 발견하는 경우가 없지 않았습니다. "왜 그래요?"

그럴 때마다 별 건 아니고 늘 말썽을 피우던 치아가 아주 사소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는 식으로 대답했습니다. "이가 좀 아프네."

 

그러던 어느 날, 아내는 내 대신 결단을 내렸습니다.

1. 병원 가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2.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일단 고칠 건 고쳐서 살아야 한다.

3. 연금이 동결되어 경제적으로 난처하긴 하지만 다른 비용을 절약하기로 하고 이번에 아주 다 빼버리더라도 끝장을 내야 한다.

 

마침내 치과에 가서 작은어금니 문제를 꺼냈고 새로운 의사를 소개받았습니다. 이번에는 보존과 의사였습니다.

눈을 감고 입을 벌린 채 한참을 참은 끝에 일단 오늘은 끝났다며 물었습니다. "아팠습니까?"

'그까짓 걸 뭐' 싶어서 당장 호기롭게 대답했습니다. "아닙니다!"

"그렇겠지요. 신경이 다 죽어버려서 마취를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죽은 신경을 그냥 확 다 긁어내버렸습니다."

"!……." 순간 참 시원한 일이구나 싶었습니다.

의사는 일주일 후에 신경관 충전을 하게 되고, 또 일이 주쯤 후에는 치아 구멍을 메우겠다고 했습니다.

 

일은 이렇게 번져 가는 것이고, 멀쩡한 치아는 거의 없으므로 이놈의 치아 때문에 그 병원을 앞으로 몇십 번을 드나들어야 할 것인지, 다른 병 때문에 가는 횟수를 줄일 수도 없는 일이니 살아간다는 게 뭔지…….

한 가지 증명이라고나 할까, 아내에게 보여준 것은 나도 그렇게 엄살이 심한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 그것밖에 시원한 일은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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